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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지경제 신간(新刊) 베껴읽기] <굿바이, 이재명> 장영하

입력 2022-01-0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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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그냥 읽고만 넘기려 했다. 집권당의 유력 대선 후보와 척을 진 사람들이 쓴 책이기에 아무래도 주관이 크게 개입되었다고 생각한 때문이다. 하지만 출간과 동시에 책이 품절되고, 여당이 판매 가처분 신청까지 하는 것을 보고 마음을 바꾸었다. 최대한 사견을 빼고, 저자가 전하려 한 최소한의 메시지 정도는 객관적으로 전달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 측이 주고 받았다는 통화 내용과 문자들을 보면서 “어떻게 하면 형제들이 이렇게까지 갈라질 수 있을까” 안타까움이 컸다. 판사 출신으로 성남에서 변호사 활동을 하고 있는 저자는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의 성남 시장 당선을 돕기도 했다고 한다.


* 남편의 명예회복을 위해 -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의 친 형인 이재선(작고) 씨의 부인, 즉 이 후보 형수인 박인복 씨는 이 책의 출간을 도운 이유에 관해 “남편의 억울함의 진실을 알리고 싶었다”고 서문에서 적었다. 4년 전에 남편이 정신병자로 몰려 불행하게 삶을 마감했고, 그 일로 인해 실추된 가족들 모두의 명예가 회복되길 소망한다고 했다.

* 의문의 성남시 ‘모라토리엄’ - 2010년 7월 12일. 이재명 성남시장은 취임 10여 일 만에 갑자기 성남시 모라토리엄을 선언했다. 국토부가 판교특별회계에서 빌려 쓴 5200억 원의 정산을 요구해와 어쩔 수 없다는 설명이었다. 모라토리엄이란 갚을 능력이 없으니 만기도래한 채무를 갚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 국토부가 성남시에 보낸 문서 어디에도 돈을 갚으라는 내용은 없었다. 저자는 이것이 ‘이재명식 쇼잉(보여주기)’의 시작이었다고 말한다. 이목을 끌었던 성남시 청사 매각 발언도 애초에 부지 자체가 협의매수된, 즉 수용한 땅이었기에 매각 자체가 불가능했다고 전한다. 저자는 “시민과 언론의 관심을 끌면 그만이라는 그만의 판단이었을 것”이라고 적었다.

* 비극의 시작, 형 이재선의 비판 글 - 이재명 후보의 친형 이재선은 회계사였다. 1995년 성남시민모임 출범 때는 동생과 발기인으로 함께 참여하는 등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이 시장이 모라토리엄을 선언한 것을 비판하며 2010년 8월 13일 성남시 홈페이지에 올린 ‘왜 성남시장이 되었는지요?’라는 글이 비극의 발단이 되었다. 그는 ‘시장 취임 후 행보가 정치인의 행보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시장은 국회의원과 다르다. 행정가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 주어야 한다’, ‘100만 명이 넘는 시민의 장이라면 개혁을 해야 하는데, 적당히 임기를 마치려 한다면 무엇을 하려고 시장이 되었나’, ‘시장이 되기 전에 그토록 비판하던 일을 그대로 한다’라고 비판했다. 협박 전화가 빗발쳤고, 이 시장 아내인 김혜경도 “우리한테 하신만큼 그대로 갚아드리겠습니다”라고 전화해 왔다고 한다. 파급이 생각보다 커진 것이 부담스러웠던 이재선은 결국 글을 모두 내리고 이후 1년 반 가량 더 이상 홈 페이지에 글을 올리지 않았다고 한다.

* 처음에 대장동 개발을 반대했던 이재명 - 이 책에는 문제의 대장동 관련 얘기가 나온다. 저자는 이재명 시장이 시장되기 전과 후 대장동에 대한 관점이 180도 달라졌다고 비판한다. 2005년 분당도시환경지키기운동본부 준비위원장 시절에 이 시장은 “대장동 등 많은 곳에서 개발의 이름으로 기획되고 있는 녹지훼손을 막고 시가지내 과밀개발을 억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2012년 유동규 성남시설관리공단 기획본부장은 매일경제 인터뷰에는 그와 정 반대 입장을 밝혔다. 도시환경 파괴라며 극구 반대했다가 뒤늦게 유동규를 내세워 개발에 나선 것이라고 저자는 비판했다. 대장동 개발을 시작하면서 성남시는 “5000억원의 개발이익 효과를 냈다”며 플래카드를 걸고 대대적으로 홍보까지 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당시엔 성남시가 5000억원 개발이익의 근거도 내놓지 못했다고 부연 설명했다.

* 문제의 ‘2012년 5월 28일’ - 이재선은 당시 이 시장의 수행비서 백 모씨에게서 이런 저런 이유로 협박에 시달렸다고 한다. 동생 이재명 내외에게 언어폭력을 중단시켜 달라고 전화 부탁을 하려 했으나 모두 전화를 받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이재선은 어머니 집으로 찾아가 부탁하게 된다. 어머니를 통해 동생과 어렵게 통화하게 된 형은 어머니에게 까지 자신을 정신병자라고 말하는 동생에게 화가 나 “오늘 너희 집하고 우리 집, 엄마네 불 싸지른다. 당장 안오면”이라고 말했다. 동생에게 했던 이 말이 나중에 엄마를 협박하는 폐륜의 말로 둔갑하게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날 밤, 이재선의 처는 뜻하지 않은 이재명의 전화를 받게 된다. “형이 조울증, 관계망상증, 과대망상증, 피해망상증 등이 겹쳐 중증상태다.” 진심으로 걱정하는 말이 아니라, 비꼬고 조롱하듯 한 말투였다고 생각했단다.

* 의혹의 올가미들 - 다음 날 형은 동생에게서 여러 건의 문자를 받는다. “전문가들이 형님 쓴 글들을 보고 조울증 피해망상증이 겹쳐 있는 중증이라고 합니다. 남의 일인 척 하고 정신과에 상담 한번 해 보세요. 불가능하겠지만요 ㅠㅠ”라는 내용이었다. 그 즈음 이재선은 알고 지내던 기자로부터 실제로 이 시장이 자신을 정신병원에 가두려는 음모가 진행되고 있다는 얘기를 듣게 된다. 전화통화와 문자 메시지들도 결국 자신을 정신병자로 엮을 증거나 꼬투리를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고 생각하게 된다. 어떡하든 이재선의 약을 올려 흥분시켜서는 욕설과 실언을 유도하고자 한 것이라고 저자는 해석했다. 실제로 이 시장이 증거가 부족해 증거를 만들기 위해 했던 일이라고 스스로 밝혔다고 전한다. 이 시장의 처도 조카에게 “여태까지 니네 아빠 강제 입원, 내가 말렸거든. 니네 작은 아빠 하는 거. 알았어?”라며 자신도 모르게 실토했다고 한다.

* 어머니 폭행의 진실은… - 2012년 7월 15일 저녁에 이 시장은 형에게 전화를 걸어 “형이 어머니를 폭행했다”며 심한 욕설을 쏟아냈다고 한다. 그날 밤 경찰이 이재선을 존속폭행 현행범으로 경찰서로 연행해 간다. 그 즉시 주변에선 이재선이 완전히 미쳐서 어머니와 이재명, 여동생을 칼로 찔러 3명 모두 2주 진단을 받았다는 얘기가 돌았다고 한다. 이재선 측은 함께 있던 막내 남동생이 먼저 달려들기에 몸싸움을 한 일은 있지만 폭행 운운은 말도 안된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이 시장은 형을 경찰에 고발했고, 가족 세 사람도 상해진단서를 발급받아 경찰에 제출했다. 결국 이 건으로 이재선은 약식명령을 받는다. 하지만 상대를 고소하지는 않았다. 경찰서 소환 이틀 후 성남시 일부 거리에는 ‘홀로 된 팔순 노모에게 폭언과 폭행을 자행한 공인회계사 이재선의 패륜적인 행동을 규탄한다’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동생은 이후로도 형에게 어머니 폭행을 문제 삼는 문자를 계속 보냈다고 한다. 이재선은 생전에 “다른 것은 몰라도 어머니에 대한 누명은 참기 힘들었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 스스로 정신병원으로 간 형 - 이재선은 어머니와 형제들이 자신의 정신건강을 문제 삼자 스스로 정신감정을 받겠다고 나섰다. 검사 결과는 ‘유의미한 정신과적 장애 및 정서적 어려움을 나타내고 있지 않은 상태로 판단된다’였다.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느낌에 그는 인터넷에 자신과 동생에 관한 글을 보면서 더더욱 마음에 큰 상처를 받게 된다. 자기 내외가 이재명을 음해해 성남시장을 못하게 하려고 난리치고, 어머니를 죽이려 했고, 비리를 저질렀으며, 교수 청탁을 했다는 등의 글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재선은 2013년 3월 16일 오후 졸음운전으로 큰 교통사고를 내게 된다. 전치 12주의 중상으로, 1년 반이나 치료를 받아야 했다. 심한 외상후 스트레스에 그는 여동생이 죽었음에도 장례식장을 찾지 못했다. 이를 질타하는 동생 이재명의 문자를 받게 되고 그는 결국 양극성 정동장애, 현존 정신병적 증상이 없는 조증‘ 진단을 받고 전문의 권유대로 입원치료를 하게 된다. 죽지 않기 위해 스스로 가족들과 결정해 선택이었다고 한다.

* 끝내 화해하지 못한 형제 - 술 담배를 전혀 않던 이재선은 억울함과 스트레스 탓이었는지 폐암 4기라는 진단을 받게 된다. 약 3개월 동안 이어진 투병생활 중에 이재선은 병원으로 찾아온 성남의 누나와 화해한다. 그때까지 반대 편에서 동생을 힘들게 한 것에 누나는 사과를 했고 동생은 누나를 용서했다고 한다. 사이가 틀어질 대로 틀어진 이 시장은 끝내 병문안은 물론 전화도 없었다고 한다. 오히려 이재선 내외를 고소해 조사받게 하는 일까지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형은 동생과 끝내 화해하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다. 동생은 조문 때 기자들을 대동하고 나타났고, 유족들은 조문을 거부했다. 뉴스에는 이런 제목의 기사들이 쏟아졌다. ‘이재명, 형 이재선과 화해하고 싶다 바람 못 이뤄… 빈소서 문전박대’.


조진래 기자 jjr2015@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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