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위치 : > 비바100 > Leisure(여가) >

[브릿지경제 신간(新刊) 베껴읽기] <지구를 구할 여자들> 카트리네 마르살

입력 2022-11-19 09:00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인스타그램
  • 밴드
  • 프린트
1
이 책의 부제는 ‘유쾌한 페미니스트의 과학기술사 뒤집어 보기’다. 인류 과학기술의 역사에서 여성이 역할을 한 사례들을 매우 디테일 하게 정리했다. 바퀴 달린 여행 가방부터 쇼핑 카트, 전기 자동차, 현대식 보행기 등 인류의 삶을 편하게 만들어 준 발명품에 숨어 있는 여성의 노력과 성과를 담았다. 더불어 남성 중심의 노동시장 구조에서 소외되고 있는 여성의 일자리 문제 등 빠르게 디지털화되어 가는 사회 속에서 겪는 여성들의 깊은 고민이 함께 담겨 있다.



* 가방에 ‘바퀴’ 다는데 무려 5000년 - 버나드 섀도우는 가족과 함께 가방 산업에 종사하는 40대 남자였다. US 러기지의 부사장이던 그는 가족과 함께 휴가를 보내고 오던 중 공항에서 직원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바퀴달린 팰릿을 이용해 무거운 기계를 옮기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는 곧 옷장의 바퀴 4개를 떼어 여행가방에 고정해 보았다. 그가 발명 특허를 낸 것은 1972년이었다. 바퀴 가방 아이디어를 상업화해 성공한 첫 인물이었다. 슬로베니아 남부에서 발견된 인류 최초의 바퀴가 5000년만에 실용화된 것이다. 섀도우는 미국의 많은 백화점에 이 제품을 소개했지만 처음에는 모두 거절당했다. 여행 가방은 들고 다니는 것이지, 끌고 다니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내 백화점 체인 ‘메이시스’의 부사장 제리 레비의 눈에 띄었고 이제 바퀴 없는 여행 가방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하지만 바퀴 달린 여행 가방 특허는 이미 존재했다. 존 앨런 메이라는 여성이 새도우보다 약 40년 앞서 그런 가방을 팔려고 했다. 하지만 그때도 이 여행 가방은 하나도 팔리지 않았다.

* 여행 가방에도 ‘젠더’ 이슈가 있었다 - 저자는 여행 가방이 시장 저항에 부딪힌 것은 ‘젠더’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바퀴 달린 여행가방의 진가를 못 알아 본 것은 당시 ‘남성성’과 맞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진정한 남자는 가방을 직접 든다’라는 무척이나 자의적인 개념이 자리잡았던 것이다. 이런 유치한 생각에 전 세계 산업을 뒤집을 상품의 잠재력을 알아보지 못한 셈이다. 바퀴 달린 여행가방에는 ‘기동성’이라는 여성의 꿈이 담겨 있었다. 여성이 남성 호위 없이 여행하는 게 당연시된 것이다. 하지만 새도우의 초기 모델에도 문제가 있었다. 길이가 긴 쪽 한편에만 바퀴가 달려 불안정했다. 1980년대 초반에야 덴마크 가방 회사 ‘카발렛’이 길이가 짧은 쪽에 바퀴를 달아 문제를 해결했고, 이후 가방 산업의 거인인 ‘샘소나이트’가 원래의 바퀴 위치를 고수한 덕에 이 형태가 표준이 되었다. 그러다 1987년에 미국의 항공기 조종사 로버트 플라스가 현대식 기내용 가방을 발명했다. 그는 섀도우의 가방을 옆으로 돌리고 크기를 줄임으로써 마침내 가방 산업에 혁명을 일으켰다.

* 더 많이 담아 팔 수 있었던 ‘쇼핑 카트’ - ‘캐리어’는 현대적 대중관광이 시작된 19세기 말에 처음 등장했다. 혁신적 기술은 가방 맨 위에 달린 손잡이였다. 가방을 한 손으로 들게 된 것이다. 1940년대 영국 신문에서도 바퀴를 가방에 적용한 제품 광고를 찾아볼 수 있지만, 정확히는 ‘휴대용 짐꾼’이라는 도구였다. 바퀴 달린 이 장치를 끈으로 여행 가방에 매달아 가방을 굴릴 수 있었다. 당시에도 여성만이 여행가방을 굴린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섀도우보다 훨씬 이전에 바퀴달린 여행 가방이 제작되었으나 영국 여성을 위한 저렴한 틈새 상품이었고 인기를 끌지 못했다. 여성과 짐의 문제를 깊이 고민하던 실번 골드먼은 1930년대에 자신의 식료품 가게에서 식료품을 사는 사람 대부분이 여성이라는 데 주목했다. 특히 그들이 장바구니에 담기는 만큼만 상품을 산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그는 새도우보다 40년 앞서 바퀴를 떠올렸고 세계 최초의 쇼핑 카트를 개발해 자기 가게에 도입했다. 하지만 많은 남성은 이를 개인적 모욕으로 받아들였다. 여전히 카트를 미는 것이 ‘힘 센 남자’답지 못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 자동차 최초의 장거리 운전자는 여성 - 1888년 8월 베르타 벤츠는 10대 두 아들과 함께 새벽에 창고에서 남편 카를 벤츠가 만든 ‘말 없는 마차’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그리곤 자신의 어머니가 사는 포르츠하임까지 90km를 번갈아 운전했다. 이것이 4행정 가솔린 엔진과 실린더가 한 개 달린 세계 최초의 자동차였고, 그녀는 세계에서 가장 먼저 자동차를 장거리 운행한 사람으로 기록됐다. 로마제국이 여성의 마차 이용을 금지함으로써 교통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때부터 여성은 향락적이며 따라서 차량을 운전할 능력이 없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으나 그녀가 그런 편견을 깬 것이다. 이 차는 출력이 0.75마력 정도였지만 시속 16km의 속도로 달렸다. 도중에 제동장치가 닳아버리는 바람에 신발공에게 부탁해 급히 제동장치에 가죽을 덧댐으로써 세계 최초의 브레이크 패드까지 발명하게 된다. 벤츠는 독일보다 프랑스에서 더 인기가 많았다. 이후 뮌헨에서 열린 독일제국 기술박람회에서 돌풍을 일으켰고 이후 상업적 생산이 본격화된다.

* 전기차는 애초부터 숙녀용? - 자동차 주문 제작 당시만 해도 3분의 1 차량이 전기를 이용했다. 미국은 그 비율이 더 높았다. 휘발유 자동차는 시동 걸기도 힘들고 소음도 컸다. 때문에 휘발유차는 모험가 남성의 차로 인식되었고, 운전석에서 시동을 걸 수 있고 조용하고 관리도 쉬운 전기차가 더 여성에게 맞는 차라는 인식이 커졌다. 시간이 흐르면서 휘발유차가 속도를 따라잡았고, 전기차는 더 느리고 안정적인 선택지가 되었다. 1990년 즈음에는 전기차보다 휘발유차가 더 빨리 가속되고 브레이크도 더 안전했다. 전기차는 배터리 문제로 그리 멀리까지 달리지 못했다. 그래서 더더욱 여성에게 적합하다고 여겨졌다. 획기적인 ‘모델 T’로 자동차 대중화를 연 자동차 왕 헨리 포드도 아내에게 전기차를 사 줄 정도였다. 갈수록 전기차는 여성을 염두에 두고 개발되었다. 천장이 달린 최초의 자동차도 전기차였다. 비를 피하고 머리 모양을 온전히 유지하고 싶어하는 여성들의 욕구를 만족시켰다. 그래서 ‘숙녀용 차’라고 불렸다. 일론 머스크가 전기차를 대중화하기 전까지 전기차는 더 이상 남자다워지지 않았다.

* 첫 상업적 전기차 만든 ‘캐딜락’ - 헨리 릴런드는 1900년대 초반 럭셔리 휘발유차인 캐딜락 모터 컴퍼니의 CEO였다. 그는 어느 날 절친인 바이런 카터와 차를 타고 가다가 길에서 휘발유차 시동을 걸지 못하는 여성을 도와주게 된다. 하지만 크랭크가 거꾸로 돌면서 턱을 치는 바람에 친구는 사망하게 된다. 릴런드는 이에 크랭크 없이 운전석에서 안전하게 시동을 걸 수 있는 전기차 시동장치 개발에 성공한다. 1912년 마침내 캐달락은 세계 최초로 전기 시동장치와 전등을 정착한 전기차 모델 3.0을 선보였다. 새 시동 장치는 계기판이나 바닥의 버튼 또는 페달로 작동할 수 있었다. 캐딜락은 모든 모델에 전기 시동장치를 도입했고 많은 회사들이 뒤를 따랐다. 당시 엔지니어였던 찰스 F. 케터링이 발전기 기능을 겸한 전기 시동장치를 개발한 덕분이었다. 휘발유차의 이점과 전기차의 편안함이 더해진 이 모델을 계기로 휘발유차에는 전기장치가 점점 더 많아졌다. 이런 변화는 운전을 상류층의 사치스러운 취미에서 평범한 사람들의 활동으로 탈바꿈시켰다. 남성과 여성의 경계를 재설정하면서 모두를 위한 새로운 시장이 만들어 졌다.

* 여성에게 움직임의 자유를 안겨준 ‘라텍스 거들’ - 에이브럼 스파넬은 라텍스 제품을 생산하고 있었다. 여성의 몸을 모래시계 형태로 조여주는 ‘라텍스 거들’은 여성의 몸을 날씬하게 만들어 줄 뿐아니라 몸을 굽혀 신발 끈을 묶을 수 있게도 해 주어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1941년 12월 일본군이 고무 주산지인 영국령 말라야를 침공하자 미국이 합성고무 생산을 늘리기 시작했고, 스파넬은 미 해병대에 구명정과 미 공군용 헬멧을 제조하기에 이른다. 이후 그는 자신의 회사 ILC에서 거들을 생산하던 조직을 ‘플라이텍스’로 바꾸고 거들과 브래지어를 생산해 더 큰 성공을 거둔다. 플레이텍스는 여성 속옷과 동의어가 되었다. 미국과 소련의 달 탐사 경쟁이 본격화하면서 이번에는 우주복 개발사업에 뛰어든다. 달의 밝은 쪽 온도는 섭씨 120도, 어두운 쪽은 영하 170도까지 떨어지기에 특수한 옷이 필요했다. NASA의 경쟁 입찰에서 ILC는 여성 재봉사들이 손으로 직접 기워 만든 부드러운 우주복으로 최종 사업자에 선정됐다. 우주복 한 벌을 만들려면 4000개의 천을 21겹으로 겹쳐야 했고, 특히 우주복에 핀을 꽂으면 아무리 작은 구멍이라도 치명적이었기에 ILC의 우주복은 기적과 같았다. 나사는 지금도 재봉사를 고용하고 있다고 한다.

* 세계 최초의 컴퓨터 프로그래머는 ‘여성’ - 컴퓨터는 당초에 여성에게 적합하다고 여겨진 극소수의 과학 관련 직업 중 하나였다. 처음부터 지위가 무척 낮은 직업이었다. 8~10시간 동안 자리에 앉아 같은 계산을 반복해야 했다. 19세기가 시작할 무렵까지는 젊은 남성들의 전유물이었으나 이내 고용주들은 남성 대신 여성을 고용하면 절반으로 비용을 절약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대단한 지성이 필요하지도 않다고 여겼다. 1900년대에 점점 더 많은 여상이 주직에 나서면서 컴퓨터 산업은 더욱 여성 중심적으로 변해 갔다. 암호 해독 같은 일은 앨런 튜닝 같은 천재적인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다 2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 폴란드 수학자 마리안 레예프스키가 독일의 ‘에니그마 암호’를 푸는 데 성공한다. 전쟁 때 거대한 암호 해독기를 작동하는 사람도 주로 여성이었다. 이들 엔지니어는 결국 세계 최초로 프로그래밍 가능한 전자 컴퓨터를 개발했고. 이들은 세계 최초의 프로그래머가 되었다. 그후로도 오랫동안 프로그래밍은 지시를 따를 능력만 있으면 되는 직업으로 여겨졌다. 그것 역시 여성이 잘하는 일이었고, 사회는 그런 ‘저숙련’ 노동을 하는 여성들에게 임금을 적게 주어도 된다고 생각했다.

* 실리콘밸리가 영국에 없는 이유 - 1960년대 중반 쯤부터 프로그래밍 산업이 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곧 남성들이 컴퓨터에 관심을 갖게 장려하는 제도가 공식화된다. 이미 프로그래밍 방법을 알던 여성들은 자기 상사가 될 젊은 남성들을 교육하는 일을 맡게 된다. 승진 기회가 주어지지 않게 되자 여성들은 이 산업에서 우르르 떠나기 시작했다. 영국의 젊은 사업가 스태퍼니 셜리는 이를 사업기회로 삼아 1964년에 여성 프로그래머에게 재택 근무 기회를 주는 ‘프리랜스 프로그래머’를 세워 기업용 소프트웨어를 만들기 시작한다. 1990년 상장 때 이 회사 기업가치는 23억 파운드에 달했다. 젊은 남성들은 컴퓨터 작업에 별 관심이 없었다. 영국 정부도 젊은 남성에게 대한 투자를 늘렸다. 1980년대 중반부터 컴퓨터 종사 여성은 전 세계적으로 감소하기 시작했다. 프로그래밍은 남성 중심의 지위 높은 고임금 분야로 변했다. 2017년 한 구글 엔지니어는 “여성은 원래 IT업계와 적합하지 않다”는 메모를 작성했다가 해고되는 등 이 분야의 여성 편견은 여전하다. 저자는 “기술과 여성이 양 극단에 있다는 오해를 하고 있다”고 일침 한다.

* 현대식 보행기, 여성에 불리한 금융 여건 - 아이나 비팔크는 스웨덴 간호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안된 21살에 소아마비에 걸렸다. 간호사 대신 병원의 정형외과 병동에서 상담사로 일하게 된 그녀는 41세 되던 해 디자이너인 군나르 에크만에게 ‘바퀴 달린 보행 보조기’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한다. 바퀴 네 개와 손잡이, 브레이크, 그리고 물건 올릴 선반과 함께 접어 차에 실을 수 있게 해 달라고 주문했다. 첫 현대식 보행기였다. 그전에도 유사한 보행 보조기 특허가 여럿 있었지만 그녀의 발명품은 전 세계 수많은 노인들에게 전에 없던 새로운 자유를 안겨주었다. 현재 전 세계 보행 보조기 시장 규모는 약 22억 달러에 이른다. 그는 보행기로 벌어들인 돈을 스페인 코스타의 한 스웨덴 교회에 기부했다. 특허도 내지 않았다. 현 시세로 약 750파운드의 돈과 특정 제조사의 판매량에 2%의 로열티를 받기로 했다. 저자는 “지금까지도 금융 시스템은 조직적으로 여성의 아이디어를 배제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현재 여성 사업체의 약 80%가 필요한 신용 대출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영원한 신용경색’ 속에 살고 있다고 주장했다.

* 극단적으로 기울어진 운동장 - 많은 여성이 미용실과 카페. 탁아소 같은 덜 진지하다고 여겨지는 사업을 시작하면서 종종 우선순위에서 밀려난다. 큰 돈이 필요한 경우 더더욱 그렇다. 투자나 보증 받는 사람은 보통 여성이 아니며, 만약 여성이라도 백인이 대부분이다. 과거 고래잡이는 투자 위험은 크지만 수익성이 꽤 높았다. 막대한 이익이 날 가능성을 보고 태어난 사업이 바로 벤처 캐피탈이었다. 현대에 와서는 실리콘밸리가 그 전형이다. 테크 사업가와 벤처 투자자 간 동맹은 오늘날 디지털 경제의 핵심이 되어 세상을 바꿔 놓았다. 투자자들은 페이스북 같은 무시무시한 성장 잠재력을 원한다. 하지만 오늘날 영국에서는 벤처 캐피탈 자금의 1% 미만이 여성 창업 스타트업으로 흘러 든다. 2019년 스웨덴의 벤처 캐피탈에서도 1%가 겨우 넘는 금액이 여성 창업회사에 투자되었다. 유럽연합의 다른 국가들에서도 창업자가 모두 남성인 테크 기업이 벤처 캐피탈 자금의 93%를 가져간다. 미국에서는 벤처 자금의 3% 미만이 여성 창업 기업에 돌아간다. 미국에 있는 사업체 중 거의 40%가 여성 소유라는 점을 고려하면 매우 충격적이다.

* 인플루언서 등의 ‘화려한 노동’ - 스무살의 카일리 제너는 세 가지 색조의 립스틱과 립스틱 키트로 대박을 치고 회사를 6억 달러에 매각했다. 2018년 포브스는 그녀를 세계 최연소 자수성가형 억만장자로 선정했다. 2010년대는 소셜 미디어로 여성이 지배하는 경제를 탄생시켰다. 그 10년 동안 전문 블로거와 엄마 사업가, 인플루언서, 인스타그램 스타들이 여성의 사업적 성공을 이뤘다. 많은 여성이 ‘프로슈머’가 되어 자기 회사를 차렸다. 인플루언서와 인스타그램 사용자들이 프로슈머였다. 여기에 기술 발전으로 집에서 회사를 설립운영하는 게 쉬워져 여성 사업가가 더 늘어났다. 저자는 여전히 애플이나 구글 같은 주요 테크 기업들의 여성 직원 수는 충격적일 만큼 적지만, 그래도 많은 경제가 점점 더 소비 중심으로 바뀌면서 여성화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화려한 노동(Glamour labour)’은 2010년대에 여성 인플루언서들이 개척한 노동 유형을 가리키는 용어가 되었다. 화장과 스타일링, 운동, 눈썹 문신, 그 외 신체적 자아를 가상의 자아와 어울리게 만들려는 노력이 이러한 노동에 속한다. 소비자 권력도 생겨났다. 여성이 실제로 소유한 최초의 경제권력 중 하나였다.

* 체스는 이겨도 청소는 못하는 인공지능(AI) - 인간을 닮은 기계를 발명하려 할 때 인간의 신체는 종종 무시된다. 문제는 우리의 ‘젠더’ 관념에서 비롯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대개 정신을 남성적인 것으로, 신체를 여성적인 것으로 상정한다는 것이다. 1997년 체스 챔피언 카스파로프를 패배시켰던 IBM의 슈퍼컴퓨터 ‘딥 블루’의 가격은 무려 1000만 달러였다. 지금은 그런 앱을 스마트폰에서 다운받는다. 기계에게 고등수학과 체스를 가르치기는 무척 쉽지만 운동은 어렵다. AI는 사고능력은 훌륭하지만 손가락을 움직이는데 서툴다. 인간은 20만 년 동안 예측 불가능한 환경을 본능적으로 쉽게 처리해 가며 생존해 왔다. 기계에는 이런 이점이 없다. 공장 일은 로봇이 인간에게서 가장 쉽게 빼앗을 수 있는 일이었다. 이제 기계가 복잡한 의학적 진단을 내릴 수 있을 만큼 큰 발전이 이뤄졌지만, 로봇은 여전히 일상적인 일을 제대로 못한다. 저자는 생각하는 기계를 만들 때 우리는 그 기계를 남자에 맞춰 만들었다며, 인공지능 분야에서 여성이 더 많았더라면 많은 것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말한다. 오로지 이성적인 사고만이 세계를 돌아가게 한다고 믿는 잘못된 젠더 관념이 문제였다는 것이다.

* ‘제2의 기계 시대’에는 젠더 이슈를 - 우리는 제2의 기계 시대를 살고 있다. 이 시대는 트럭 운전사와 패스트푸드 점원 뿐아니라 변리사나 경영 컨설턴트까지 사라지게 만들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경제는 세 집단으로 나뉠 예정이다. 엘리트 집단은 이미 엄청난 부자들로 기술 발전의 결과 덕문에 더욱 부유해질 것이다. 그 밑의 집단은 엘리트들에게 다양한 개인 서비스를 팔면서 생계를 꾸리는 사람들이다. 마지막은 로봇에게 일자리를 빼앗긴 사람들이다. 유발 하라리는 이 집단을 ‘쓸모 없는 계층’이라고 했다. 저자는 “제2의 기계 시대는 지금까지 본 적 없는 규모의 대량 실업을 일으킬 것”이라며 여성의 관점에서 이 시대를 봐야 할 이유라고 말한다. 사회의 기술적 변화를 제대로 다루지 않으면 수많은 삶이 파괴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로봇이 노동시장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 주제로 컨퍼런스가 열리지만, 보통 젠더 이슈는 끼지 못한다. 젠더 관념이 노동 시장 조직방식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데도. 저자는 “여성과 남성이 하는 일이 다른 것이 오늘날 경제의 작동 방식”이라며 “오늘날 여성은 주로 여성과 일하고 남성은 남성과 주로 일한다고 지적한다. 일반적으로 여성은 서비스 부문에서 남성은 주로 제조부문에서 일하는데 이것이 2020년의 코로나 펜데믹으로 여성이 심각하고 빠르게 타격을 입은 이유 중 하나라고 설명한다.

* AI가 일자리 빼앗는 미래를 막으려면 - 저자는 경제를 돌아가게 하는 것은 인류의 근력과 이성적 사고력 뿐만아니라 보이지 않는 ‘관계 경제’와 ‘돌봄 경제’ 같은 소프트한 부분이 많지만 사람들이 대부분 그것을 여성적인 것으로 여긴다고 꼬집는다. 그는 돌봄과 감정, 관계에 로봇이 서툴기에 인간이 특화할 수 있는 몇 안되는 분야가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그러면서 기계의 능력이 미치지 못할 세 분야를 예시한다. 인간이 망설임 없이 행하는 여러 신체 행위, 인간의 창의력, 그리고 감정 지능이 필요한 업무다. 그런 관점에서 간호사와 유치원 교사, 정신과 의사, 사회복지사를 대체할 기계는 조만간 등장하지 않을 것이라 예측했다. 또 여성 보다 남성 중심 산업이 로봇에게 일자리를 빼앗길 가능성이 더 높다며 두 가지 해법을 제시했다. 지금보다 훨씬 많은 여성이 남성 중심 산업의 일자리에 도전하는 것, 그리고 여러 직업을 평가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1차 기계 시대에 영국이 기술 혁명 방해꾼들을 무력으로 제거했다면, 2차 기계 시대에는 우리를 자유롭게 해주고 창조성과 인간관계를 북돋는데 더욱 전념할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는 기계를 과대평가하기 보다 자신을 너무 과소평가한 탓에 로봇이 일자리를 전부 훔쳐 갈 것이라고 너무 쉽게 믿었다고 비판한다. 그러면서 “어쩌면 로봇 신기술은 우리 인간성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더 인간적으로 만들어줄 잠재력이 있다”고 말한다.

* 여성을 무시 말아야 미래가 있다 - 16세기 말 유럽에서 기상 이변 피해의 책임을 묻는 ‘마녀사냥’이 있었다. 17세기 초까지 거의 100만 명이 처형을 당했다. 희생자는 대부분 가난하거나 남편을 여윈 여성들이었다. 저자는 기후변화가 지금도 가장 심각한 혁신이 문제이자 여러 젠더 관념과 얽힌 문제라고 지적한다. 실제로 기후 변화를 부정하는 남성 대다수가 기후 운동의 유명한 여성들을 경멸한다. 이는 ‘이성애자 백인 남성성’이라는 자신들의 브랜드가 지배하던 화석 연료 기반의 현대 산업 사회를 기후 운동이 위협하고 있다는 인식과 관련이 깊다. 이들은 화석연료가 사라지면 남성성도 같이 사라진다고 생각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는 “여전히 자연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우리의 여성성과 남성성 개념에 얽혀 있다”며 우리 삶의 방식을 발명하는 동시에 개혁할 것을 강조한다. 저자는 우리가 기술적 존재인 동시에 자연적 존재이며, 앞으로 이 두 가지를 통합하는 것이 우리 핵심 과제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특히 기술의 역사에 여성이 가진 도구를 포함하면, 여성 혹은 여성을 상징하는 것을 더 이상 무시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서사 전체가 달라지게 될 것이라고 확언한다. ‘발명의 어머니’가 돌아올 시간이라며, 여성성·남성성이라는 성별 고정관념 때문에 발명 자체가 늦어졌던 과오를 되풀이해선 안된다고 강조한다.


조진래 기자 jjr895488@naver.com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 인스타그램
  • 프린트

기획시리즈

  • 많이본뉴스
  • 최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