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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헛발질 정책·무기력한 사회… 한국경제, 일본병 옮을라!

[신간(新刊) 베껴읽기] 추락하는 일본, 우리가 알던 그 일본이 아니다

입력 2023-01-21 07:00 | 신문게재 2023-01-2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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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게티이미지)

 

1인당 국민소득 세계 28위, 국가경쟁력 순위 31위, 디지털 기술력 27위, 남녀평등지수 116위. 한 때 세계 3위 경제대국이었던 일본의 현주소다. 2000년 세계 1위였던 제조업 노동생산성은 어느 덧 20위 안팎까지 떨어졌다. 모든 면에서 국제경쟁력이 뒤쳐지고 있다. 우리가 알던 일본이 아니다. “그래도 일본은 일본”이라는 반론도 있지만, 과거의 영광을 회복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전문가들은 우리도 이런 ‘일본병’에 걸리지 않도록 모질게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 정영효의 <일본이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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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사이먼 쿠즈네츠는 “세계에는 네 종류의 국가가 있다. 선진국, 개발도상국, 일본, 아르헨티나”라고 말했다. 그만큼 일본은 ‘연구’가 필요한 나라다. 이 책은 국내 경제지 일본 특파원인 저자가, 그토록 칭송받던 일본의 장인정신 ‘모노즈쿠리’가 어느 새 혁신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고, 제조업 강국이란 타이틀까지 빼앗기며 급격히 나락에 빠진 일본의 실체를 소개한다.


2021년 일본의 GDP는 4조 9374억 달러로 2012년에 비해 10년 동안 21%나 줄었다. 아베노닉스로 인한 인위적 엔화 약세의 결과다. 일본정부가 국채 이자로 지불할 돈만 매년 8조 엔으로 일본 방위비(5조엔) 보다 많다. 2000조 엔이 넘는 가계 금융자산이 버팀목이라 믿지만, 2022년부터 일본 가계의 자본 도피 가능성이 현실화하고 있다. 해외로 유출된 소득이 11조 엔을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값싼 엔화를 팔고 달러를 사 미국 국채에 투자했다면 20%의 환차익에 금리차까지 얻을 수 있었음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저자는 엔화가 더 이상 안전자산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수입물가를 급등시켜 국내 물가가 오르는 ‘나쁜 엔 저’의 시대에 엔화는 ‘불안한 자산’이 되어 버렸다. 경상흑자와 엔 캐리 트레이드라는 양대 축이 무너지면서 엔화 구매력은 50년 전으로 후퇴했다. 실질실효환율은 세계 최저수준으로 떨어져 60개 주요 통화 중 56위로 통화가치가 추락했다. 투자 리스크를 떠안을 필요가 없는 고령자들은 돈이 남아돌지만, 젊은 세대는 투자할 돈이 없어 괴리가 커지고 있다. 오죽하면 “조부모가 가진 일본주식을 손주에게 비과세로 양도할 수 있게 허용한다”는 목소리가 나올까.

전문가들은 일본정부를 ‘20세기에 머문 정부’라고 힐난한다. 대규모 금융완화와 적극적인 재정정책, 과감한 성장전략 등 ‘3개의 화살’을 앞세웠던 아베노믹스가 일본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일본의 잠재성장률은 2005년 이후 20년 가까이 0%대에 머물러 있다. 낮은 생산성은 경제회복의 발목을 잡는다. 환율을 방어하려 금리를 올렸다간 재정 파탄을 야기할 수 있어, 일본만 전세계적인 금리 인상 대열에서 빠져 있다.

‘재팬 넘버 원’은 이제 옛 말이다. 한 때 매년 20조 엔의 경상흑자를 내던 일본이 이젠 적자 해가 잦아지고 있다. 2020년대 들어선 무역 부진을 해외자산 이자와 배당 소득이 메우는 구조로 바뀌었다. ‘엔 저=이익’ 공식이 완전히 깨지면서 산업 경쟁력은 추락했다. ‘잃어버린 50년’이 될 판이다. ‘쓸고퀄(쓸데없이 고 퀄러티)’을 고집하다 세계와의 경쟁에서 처지고 있다. 기업들은 유보금이 쌓여도 이익만 챙기고 연구개발 투자는 외면한다. 디지털 인프라에 대한 투자도 없다. 샤프에 이어 도시바까지, 일본의 자존심인 대표 기업들은 속속 해외로 팔려나가고 있다.

저자는 “‘상승 욕구’가 사라진 것이 일본의 가장 큰 리스크”라고 말한다. 자신감은 물론, 꿈도 잃고 자기 주장도 없는 나라가 되었다고 꼬집는다. 15세 미만 인구가 12%에 달할 정도로 생산인구는 줄고 노동의 경제성장 기여도는 제로(0)에 가깝다. 기시다 내각이 ‘새로운 자유주의’를 내세워 적극적인 임금인상과 이에 따른 소비진작을 꾀하지만 불가항력이다. 우리처럼 비싼 최저임금에 견딜 수 있는 기업만 남게 되어, 기업의 생산성은 오를 지 몰라도 실업자가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저자는 한국과 일본의 공조 필요성을 지적한다. 한국에 대한 일본의 우월의식, 일본에 대한 한국의 반감과 콤플렉스가 한일 관계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지적한다. 미국과 중국의 틈바구니에서 두 나라가 단순한 경제협력 이상으로 간절하게 손잡지 않으면 안되는 때가 10~20년 앞으로 다가오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한일 원팀’이 되면 미국과 중국에 꿀리지 않는 선진국이 되고도 남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 노구치 유키오의 <일본이 선진국에서 탈락하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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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일본을 대표하는 경제 석학이자 일본경제론 전문가다. 그 역시 “아베노믹스가 일본을 가난하게 만들었다”고 일관되게 주장한다. ‘저렴한 일본’이라고 표현한다. 더 진짜 문제는 ‘낮은 임금’이라고 지적한다. 실질임금이 미국의 55.5%, 유럽 국가의 60~80% 수준이며, 심지어 한국보다도 낮다고 꼬집는다. 일본보다 임금이 낮은 나라는 옛 사회주의 국가들과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멕시코 칠레 정도 뿐이라고 말한다.


인위적인 엔 저 탓에 일본의 물가와 임금이 더 낮아졌다며 ‘멈춰버린 일본 경제’라고 비판한다. 1990년대 후반 이후 임금이 오르지 않아 1인당 GDP만 해도 과거 미국 수준에서 이제는 한국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질타한다. 정체된 일본에 비해 한국은 성장세라 언젠가는 일본이 추월당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20년 후 일본의 1인당 명목 GDP는 4만 1143달러인지만 한국은 8만 894달러로 2배까지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한다.

‘마약 같은 엔 저 효과’가 문제라며 “나라를 망치는 엔 저”라고까지 비판한다. 엔 저가 결국 두 가지 측면에서 일본을 가난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한다. 일본 상품의 구매력 하락이 직접 효과이며, 기업이 기술개발이나 비즈니스 모델의 전환을 게을리 하는 게 간접 효과라고 말한다. 일본이 임금을 올리려면 기술 개발로 생산성을 높여야 하는데, 엔 저라는 ‘마약’에 취해 개혁은 뒷전이다 보니 지금 같은 상황을 맞았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미국과 달리 일본에서는 ‘고도의 서비스 산업’이 발전하지 않아 임금이 오르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성장이 멈춘 1995년 무렵부터 막 태동하던 IT 혁명에 제 때 대응하지 못해 디지털화에 뒤쳐졌다고 평가한다. 그런데도 일본 정부는 ‘실현 불가능한’ 높은 성장률을 가정하며 국가 재정이나 공적연금제도가 떠안은 심각한 문제를 은폐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외국에서 배우려는 겸허한 태도도 잃어버린 것 같다고 일갈한다.

국내외 기관들은 일본의 실질성장률을 1% 수준으로 예측한다. 저자는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까지 얘기한다. 노동력과 자본축적, 기술진보율을 토대로 실질경제성장률을 계산해 보면 -0.4% 정도가 나온다고 전한다. 노동력 성장률 -0.9%, 자본축적 성장률 제로(0), 기술진보율 1% 정도가 적용된 전망치다. 여기에 고령화에 따른 재정 부담과 재분배의 후퇴, 생산성 하락 등이 일본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저자는 전 세계가 ‘자본 없는 자본주의’, 즉 데이터 자본주의로 대전환을 하고 있는데 일본만 낡은 자본주의에서 탈출하지 못했다고 꼬집는다. “30년 전 한 때 세계 최정상이던 일본이 ‘잠깐의 선진국’ 이후 아무 노력도 않은 결과가 지금의 일본”이라고 비판한다. “일본이 과연 G7 자격이 있느냐”고 따진다. 한국이 아시아 대표라 해도 일본은 할 말이 없을 것이라고 성토한다. 일본은 지금 선진국에서 떨어지기 일보직전인데, 위기감도 없다고 호통친다. 이대로 가면 2030년에는 1인당 GDP가 OECD 회원국 평균의 절반에도 못 미칠 수 있다고 통렬하게 비판한다.

정부의 역할이 그래서 더욱 중요하다. 그는 임금을 끌어올리기 위한 진지한 노력과 함께 기술혁신과 고도 서비스 산업 육성에 앞장설 것을 주문한다. 임금과 성장률이 높은 유망 산업을 보다 적극적으로 견인하라고 촉구한다. 성장견인형 산업 육성을 위해 ‘정책의 빈곤함’부터 타개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기득권 세력과 맞서 생산성을 높이는 규제완화에 사활을 걸라고 조언한다. 행정의 디지털화, 대학 기초연구 및 인재양성 지원 확대도 강조한다. 사실상 일본 전체의 시스템 재구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일하는 자들을 지지하는 정치세력’도 덧붙였다.

조진래 기자 jjr2015@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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