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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한국판 '인턴'… 부사장에서 '가장 나이 많은 연구원'으로

[나이를 잊은 사람들] 김한진 KTB투자증권 수석연구위원

입력 2015-11-3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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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개봉한 영화 ‘인턴’은 국내에서 356만명의 관객을 불러들이며 히트를 쳤다.

인턴이 세간의 관심을 모은 이유 중 하나는 소재에 있다. 전화번호부 회사에서 부사장으로 일하다 은퇴한 벤 휘태커(로버트 드 니로 분)는 시니어 인턴 프로그램으로 인턴 생활을 시작했다.

한국에서도 이런 사례가 있다. 현재 KTB투자증권의 투자전략팀장으로 일하고 있는 김한진(사진·56)씨다. 그는 여의도 증권가를 통틀어 가장 나이가 많은 연구원이다.

김 위원은 과거 리서치와 운용업무를 총괄하는 임원 자리까지 올랐다. 이후 운용사와 자문사 등을 거치며 부사장까지 역임했다.

평범한 신입사원으로 시작해 임원에 부사장까지 올랐던 그가 중소형사인 KTB투자증권의, 리서치센터장도 아닌 시니어 연구원으로 다시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현실의 벤 휘태커, 김한진 위원을 만나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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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은 리서치에서 끝내고 싶었다.”

김 위원은 지난 1986년 신영증권 조사부에서 연구원(애널리스트)으로 여의도 생활을 시작했다. 신영증권은 당시 중소형사였지만 대우증권 등과 함께 후일 애널리스트 사관학교로 불릴 정도로 업계에 이름난 연구원들을 많이 배출했다. 당시 신영증권은 신입을 뽑으면 무조건 조사부에 배치하고, 1년 가량 기업분석 등 다양한 교육을 시킨 뒤 지점 등 타 부서로 전출시켰다.

“다른 친구들은 당시에 지점도 가고 영업부로도 가고 그랬는데, 조사부가 좋다 보니 눌러 앉게 됐습니다”

이후 신영증권의 리서치센터장까지 맡은 뒤 새로운 도전을 위해 삼성자산운용, 피데스투자자문 등을 거친 그는 2013년 8월 KTB투자증권의 시니어 연구원으로 복귀했다. 연구원 일에서 떠난 지 꼭 7년만에 현장으로 돌아왔다.

“국내에서는 쉽지 않은 결정이라고 하지만 관리직만은 답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처음 연구원 업무를 시작할 때 너무 좋아서 정말 끝까지 연구원 일을 한번 해보자는 생각을 했었던 게 기억이 나더군요.”

해외에서는 오랜 경력을 가지고 센터장을 거친 후 다시 전문가로 활동하는 연구원들이 있다. 그들처럼 끝까지 연구원으로서 남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을 이루기 위해 돌아왔다는 설명이다.

부사장까지 거친 그가 평직원으로 돌아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할 일이 없어 그런 게 아니냐는 남들의 비난이 두려웠다. 그때 김 위원은 스스로 물었다. 나이가 적지 않은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리서치센터에서 몇 년이나 활동할 수 있을까, 지금 시점에서 하고 싶은 게 무엇인가, 내가 이 일을 해서 행복할 수 있을까…

“단 1년이라도, 아니 몇 달이라도 현직에서 리포트를 쓰며 분석하고 활동할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남의 시선은 신경 쓰지 말자고 마음 먹었고, 그때 마침 KTB투자증권과 연이 닿아 올 수 있게 됐죠.”

나이 들어 리서치센터로 돌아와 잘 할 수 있을지 걱정됐지만 연륜으로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분명 나이가 들면 고정관념도 생기고, 새로운 기술에 대한 적응 같은 부분에서는 젊은이들과 비교해 떨어질 수밖에 없죠. 이런 것들이 미래를 예측하는데 발목을 잡을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반대로 젊은이들은 경험이 적다 보니 시장이 크게 변하는 시기에 노련한 대응이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노장도 있고, 젊은 피도 있어 서로 부족한 점을 채워주고 멘토도 해줄 수 있는 잘 어우러진 팀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 리서치는 3D 업종? 마음먹기에 달렸다

한때 증권가의 꽃이라 불렸던 리서치센터의 연구원 직은 이제 3D 업종으로 여겨지고 있다. ‘베스트 애널리스트’로 유명세를 떨친 사람들마저 아예 증권가를 떠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김 위원은 결국 마음먹기라며 프로야구나 프로골프 등 스포츠 선수를 예로 들었다. 프로선수들의 경우 경기를 진행할 때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야 하고 체력소모도 크다. 이런 와중에 성적이 잘 안나오면 본인으로서도 답답하겠지만 팬들의 비난과도 맞서야 한다.

최상위권의 성적을 거두는 1%대의 선수라면 모르겠지만 대부분은 그런 고민 속에 힘들어할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만약 내가 지금 하는 경기를 사랑하는 선수라면 어떨까. 그냥 경기에 참가하는 것만으로도 기쁜데 돈까지 준다면 더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연구원도 똑같다고 봅니다. 본연의 일에 만족해야죠. 3D라는 단어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청소를 해도 행복하면 3D라고 할 순 없겠죠. 연구원 일이 적성에 맞지 않는데 단순히 호구지책으로 한다면 아무리 열심히 한다 해도 어렵고 힘든 일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 봅니다.”


◇ ‘색’빠진 리서치 문화… 아이디어로 돌파

옛날에는 각 증권사마다 다양성이 존재했다. 소위 말하는 ‘색’이 달랐는데 최근에는 모두 균질화된 것처럼 ‘엇비슷한’ 자료만 나온다.

“각 회사의 IR팀에서 같은 자료만 주다 보니 그 이상을 만들 수 없게 된거죠. 여기에 금융당국의 규제로 인해 쉽게 말하고 다닐 수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요즘은 정보를 구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거시경제를 담당하는 입장에서야 크게 문제되지 않지만 각 업종(섹터)를 담당하는 연구원들은 리포트를 내는 게 훨씬 어려워졌다.

“돌파구는 좀 더 창의적인 리포트를 만드는 데 있습니다. 남들과 다른 아이디어를 생각해 리포트를 만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듯합니다. 예를 들어 기술력이나 사업성 평가를 제대로 한다든가 말이죠.”

무한 경쟁시대에서 차별화로 돌파해야 한다고 김 위원은 강조했다.

“후배들에게 초심을 잊지 말라고 당부하고 싶습니다. 30년이 넘게 업계에서 일해오며 슬럼프에 빠진 때를 되돌아보면 항상 초심을 잃었을 때였죠. 교과서 같은 얘기지만, 내가 정말 고객 행복을 위해 일하는가, 아니면 내 개인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느냐, 여기서 후자로 기울었을 때 문제가 생기더군요. 이름이 조금 알려졌다고 당연하게 여기며 우쭐해지면 문제가 생깁니다. 항상 고객이 좋은 의사결정을 내고 수익을 낼 수 있도록 도우는 게 우리의 임무라 생각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면 리서치 업무도 잘 풀릴 수 있을 거라 봅니다.”

유병철 기자 ybsteel@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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