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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엄마가 성폭행을 당했다… 당신의 선택은?

[Culture Board] 중년 여성의 미투를 다룬 김미조 감독의 첫 장편 '갈매기'

입력 2021-07-28 19:00 | 신문게재 2021-07-29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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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갈매기1
엄마의 희생으로 단란한 가족을 꾸려온 가족들의 연기는 생활연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주인공 정애화의 열연을 빛내주는 일등공신이다.(사진제공=영화사 진진)

 

한평생을 억척스럽게 가족만 생각하며 수산시장에서 일한 엄마 오복(정애화)이 성폭행을 당했다. 간밤에 오복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영화는 구체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영화 ‘갈매기’는 집이 아닌 공중목욕탕에서 남몰래 하혈의 흔적을 지우는 엄마의 모습을 통해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가해자는 이웃사촌처럼 지내온 동료 상인이다. 곧 결혼을 앞둔 딸은 그런 엄마를 원망하고 창피하게 여기고 남편 역시 “여자가 응했으니 당한 것”이라고 타박한다. 언제나 든든했던 큰딸은 엄마가 밤늦게까지 술자리에 있던 사실을 타박한다. 우애가 남달랐던 시장 동료들은 같은 여자이면서 한술 더 떠 “한강에 배 한번 지나간 것으로 치라”는 모진말도 서슴치 않는다.

영화 ‘갈매기’는 성폭행을 당한 후 그저 사과만을 원했던 한 중년 여성의 변화와 투쟁을 그린다. 처음으로 세상에 맞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과정은 사실적이고 적나라하다. 오복이 원한 건 그저 진심어린 사과였다. 반평생을 이웃으로 살아온 그를 가해자로 고소하기는 분명 쉽지 않았다. 가족과 동료들조차 저마다의 이해관계로 인해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도움이나 증언에 침묵한다.

영화 갈매기
자극적인 장면은 없지만 울림은 꽤 크다.15세관람가를 받은 영화 ‘갈매기’.(사진제공=영화사 진진)

 

영화는 중년 여성의 성폭행 사건을 통해 우리 사회가 가진 추악한 민낯을 까발린다. 슬프게도 ‘여적여’(여자의 적은 여자)인 상황이 반복되지만 이마저도 신예 김미조 감독의 단단한 연출력이 돋보인다. 실제 딸부잣집 막내딸로 때어난 그는 대사 사이의 긴 여백과 롱테이크 기법으로 여자라면 누구나 겪었을 순간을 탁월하게 짚어낸다.

 ‘갈매기’는 오복의 삶에 일어난 사건을 통해 재개발 이슈와 예단을 준비하는 신부 그리고 무능력한 가장에 대한 문제들을 등장시킨다. 김 감독은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데 “노량진 구 시장 신 시장 갈등, 서지현 검사의 미투,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사건 등을 참고했다”면서 “주인공의 고통만이 아니라 이런 일이 일어났을 때 어떻게 극복하고 삶을 이어나가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다”고 연출의도를 밝혔다.

오랜 기간 연극무대에서 활동하다 ‘갈매기’를 통해 첫 스크린 주연으로 나선 정애화는 언론시사회 직후 떨리는 목소리로 “억압받은 세대인 60대 오복을 연기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면서 “나는 성폭행을 당한 여자였고 내 의지를 찾겠다는 상상을 했을 때 그런 연기들이 편안하게 나왔다”고 말했다.

독립영화는 태생적인 한계가 분명있다. 하지만 적은 예산에서 의미있는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감독과 명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재미는 탁월하다. 그런 점에서 ‘갈매기’는 단연 ‘올해의 발견’이다.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부문 대상을 받았으며 함부르크영화제, 바르샤바국제영화제 등 전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 초청됐다. 28일 개봉.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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