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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지구를 너무 사랑한, 그대 이름은 '이터널스'

[Culture Board] 영화 '이터널스'
마블의 새로운 역사 포문열어

입력 2021-11-03 18:00 | 신문게재 2021-11-04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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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터널스’.(사진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큰 법이다. 지난 3일 개봉한 영화 ‘이터널스’는 ‘어벤져스’ 시리즈가 끝난 지구인들에게 선보이는 또 다른 세계관이다. 일단 마동석이 ‘돈 리’란 이름으로 할리우드에 입성한 영화라는 점에서 한국 관객들의 기대감은 하늘을 찌른다. X세대에게 스티브 유와 맞먹는, MZ세대들에게 ‘검은 머리 미국인’으로 불리는 그는 유창한 영어와 특유의 파괴력 지닌 액션으로 화면을 압도한다. 

영화는 인간을 번성시키라는 사명을 받고 7000년 전 지구에 파견된 열명의 존재들로 시작한다. 그 중 마동석은 외모에서 뿜어내는 엄청난 파괴력과 의외의 반전 매력으로 비중에 상관없이 할리우드에 안착한 모양새다. 적어도 방관과 배신, 거짓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가장 정의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인간을 도와주되 간섭하면 안된다는 사명을 띤 이들은 각자의 장점을 살려 지구인들과 수천년의 문명을 함께 한다. 불멸의 빌런 데비안츠에 맞서는 이터널스의 활약은 영화 중반까지 정의롭고 올곧다. 손가락을 한번 튕김으로써 지구를 포함한 전 우주의 생명 반을 앗아간 타노스 조차 가뿐히 죽일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이들은 결국 각자의 길을 가게 된 어벤져스 대신 기꺼이 세상을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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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 길가메시 역할을 맡은 마동석. (사진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문제는 수천년에 걸쳐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살아온 불멸의 히어로들이 사실은 신적인 능력과 별개로 너무나 인간적으로 변했다는 사실이다. 클로이 자오 감독은 바로 그 인류애와 다양성을 토대로 새로운 세계관을 구축했다. ‘이터널스’에 캐스팅된 다국적 배우들은 각각 장애인과 어린아이, 성소수자 혹은 치매가 연상되는 시스템 에러를 기꺼이 껴안은 모양새다.

지구에는 없는 완벽한 능력으로 신화로 전해져 온 ‘이터널스’도 서로 사랑하고 결혼한다. 그 안을 오가는 짝사랑과 질투, 어긋난 감정, 배신과 용서, 화해는 아무리 신이어도 결국 감정에 동요된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실수라고는 용납되지 않는 이들의 성장과정은 충분히 시선을 사로잡는다. 발리우드를 대표하는 국민배우, 긴 사내연애(?)를 끝낸 박물관 학자, 동성 연인과 가정을 이루고 아들을 키우고 사는 등 이들에게 불멸의 히어로 같은 강력함은 전무해 보인다. 바로 그 점이 ‘이터널스’를 보는 재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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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터널스’는 북미를 비롯해 한국에서 공개된 이후 호불호가 크게 엇갈리고 있기에 기대 만큼의 흥행을 거둘지는 미지수다.(사진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이들의 리더 에이젝(셀마 헤이엑)은 자신들이 생명이 없는 존재이자 셀레스티얼에 의해 만들어지고 프로그래밍 된 존재라는 비밀을 알고있는 장본인이다. 영화는 전형적인 백인 남성을 앞세웠던 스테레오 타입을 조롱이라도 하듯 태초의 리더와 그 뒤를 잊는 존재까지도 동양인 여성 배우로 꾸려 변화된 마블의 모습을 강조한다. 게다가 영화의 말미에는 인간이 되려고 자신의 능력을 포기하는 캐릭터까지 등장시켜 ‘존재의 이유’를 되묻는다. 이들은 인간을 돕기 위해 지구에 왔지만 도리어 그들에게 동화됨으로써 전지전능한 신의 능력을 상실한다.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라는 연애의 정석은 아이러니하게도 ‘이터널스’를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다.

‘이터널스’는 분명 기념비적인 영화다. 아무리 덜어낸다고 한 들 기저에 깔렸을 백인우월주의적인 상황이 상당히 희석된 모습이다. 더불어 예술적인 서사에 장기를 발휘해 온 클로이 자오 감독은 이를 살려 자연의 아름다움과 관계에 대한 관망을 잘 녹여냈다. 시대에 맞는 변화를 보여주기 위해 그에게 러브콜을 보낸 걸 보면 마블의 선구안은 분명 성공적이다. 

하지만 기존 MCU가 가진 기술적 현란함과 미국식 유머를 좋아했던 관객이라면 분명 지루할 부분이 상당하다. 직화 바베큐 그릴에 구운 육즙 가득한 스테이크를 먹던 사람이 하루 아침에 유기농 식단이 차려진 아침상을 받은 기분이랄까. 두개의 쿠키영상이 아니었다면 용서가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러닝타임 2시간 37분.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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