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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한국의 디스패치와는 '격'이 틀려!

[Culture Board] 웨스 앤더슨 감독의 천재성이 빛나는 '프렌치 디스패치'

입력 2021-11-17 18:30 | 신문게재 2021-11-18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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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렌치디스패치
이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은 단 한줄의 기사도 쓰지 않으면서 각 저널리스트들에 등장하는 저 배우다. (사진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영화 ‘프렌치 디스패치’는 결말을 알려주고 시작한다.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잡지의 편집장이 죽는다는 것. 그는 유복한 집안의 아들이었고 제멋대로지만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필진들을 쥐락펴락하는 괴짜 중 괴짜다. 예민하고 즉흥적인 저널리스트들은 여행과 정치, 음식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인자로 불리는 이들이다. 관객들은 그가 심장마비로 죽는다는 걸 알면서 마지막 원고의 내용들을 따라 화면으로 그야말로 ‘빨려’ 들어간다.

 ‘문라이즈 킹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등으로 독보적인 비주얼리스트로 이름을 알린 웨스 앤더슨 감독은 남다른 배우 사단을 구축하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빌 머레이, 틸다 스윈튼을 필두로 프랜시스 맥도맨드, 에드워드 노튼, 윌렘 데포, 애드리언 브로디가 가세하더니 레아 세이두, 티모시 샬라메, 시얼샤 로넌, 베니시오 델 토로까지 가세했다.

매 장면 ‘이 배우가 여기서 나와?’라고 놀라고 ‘이렇게까지 망가진(벗는)다고?’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흡사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에 출연함으로써 자신만의 길티 플레저(죄책감을 느끼면서도 즐기는 행동)를 분출하듯 거리낌없다. 마약에 찌든 콜걸, 살인마, 전설적인 갱, 수감자와 사랑을 나누는 교도관까지 그들의 필모그래피에서 결코 연기하지 않았던 캐릭터 사이를 마음껏 유영한다. 

영화의 배경은 20세기 프랑스의 한 가상 도시다. 편집장이 자신의 사망 후 잡지를 폐간한다는 유언을 남긴 걸 알고 이들은 울음 대신 타고난 글쟁이로서 기꺼이 폐간호를 만든다. ‘프렌치 디스패치’는 단락으로 나뉘는데 첫 번째는 정신병으로 살인을 저지르고 감옥에 수감된 천재 화가(베네치오 델 토로)의 이야기다. 두 번째는 청춘의 나르시즘에 빠져 학생운동을 펼치는 청년(티모시 샬라메)과 중년 정치부 기자(프랜시스 맥도맨드) 이야기다. 세 번째는 최고의 요리사를 취재하기 위해 나섰다 납치 사건에 휘말린 요리 비평가의 경험을 흑백화면과 애니메이션을 오가며 완성 시킨다. 무엇보다 ‘프렌치 디스패치’는 장르는 영화지만 한편의 잡지를 읽는 듯하다. 프레임은 영화지만 눈으로 활자를 읽듯 장황하고 당황스럽다. 

프렌치디스패치1
영화를 다 보고 찾아보면 더 재미진 ‘프렌치 디스패치’의 포스터. (사진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각 배우들은 자신의 모국어와 영어를 번갈아 쓰는가 하면 실사와 애니메이션을 적절히 오간다. 블랙 코미디를 표방하면서도 매 장면 시적이며 아름다룬 색채가 화면 가득 펼쳐진다. 리듬감 넘치는 세트 구성을 보노라면 영화가 아닌 한편의 연극을 보는 듯도 하다. 관객들은 그저 웨스 앤더슨 감독이 촘촘히 짜 놓은 그물에 온몸을 던지기만 하면 된다. 영화는 개처럼 으르렁거리는 천재 화가가 남긴 에로틱한 작품과 평등을 위해 싸우다 아이러니 하게 안테나가 무너져 익사한 젊은 피, 경찰서장의 아들을 구하기 위해 기꺼이 독을 먹는 요리사 등을 통해 과거의 낭만과 현재의 비루함을 적절히 섞는다.

‘프렌치 디스패치’는 여성의 음모, 유두, 남성의 몸을 대놓고 훑지만 경박스럽지 않다. 흑인 동성애자, 동양인 요리사가 등장해 “나는 이방인” “길 못 찾는 게이”라며 대놓고 자신을 디스하지만 그것마저 팬시하게 처리한다. 심오한 대사는 아니지만 인생을 살면서 한두번쯤 겪었을 상실감마저 끌어안는다. 

이 영화는 웨스 앤더슨 감독이 작정하고 만든 자신만의 놀이터다. 매 신 발랄하고 유쾌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프렌치 디스패치’는 올해 칸 프리미어 후 9분간의 기립박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가기도 전인 컴컴한 영화관을 나서는 문화가 익숙한 한국의 극장문화를 깰 영화임이 분명하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화면을 흐르는 그림들마저 또 한명의 주인공 역할을 톡톡히 하므로 결코 자리를 떠선 안된다. 18일 개봉.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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