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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복지란 이름으로 '아이'를 빼앗겼다...영화 '리슨'

[Culture Board] 강제 입양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 눈길

입력 2021-12-08 19:00 | 신문게재 2021-12-09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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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홀컴퍼니(주)
복지국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는 벨라와 아이들.(사진제공=워터홀컴퍼니)

 

청각장애를 지닌 딸의 몸에 멍이 생겼다. 수막염으로 아픈 아들은 약을 먹어도 토하기만 한다. 이제 막 돌이 지난 막내의 양말은 항상 벗겨져있다. 아동복지의 입장에서 이들 삼형제는 학대받는 게 분명하다. 

영화 ‘리슨’은 지금도 영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강제입양을 소재로 한다. 가난하지만 행복한 벨라와 남편, 세 아이는 복지의 삼각지대에 살고 있다. 포루투갈에서 건너온 자신들과 달리 자식들만큼은 선진국인 영국에서 꿈을 펼치기를 원하는 부모의 마음은 이곳의 기준에 맞지 않는다.

아픈 아들을 병간호해야 하는 아버지는 일용직마저 잃는다. 가사 도우미인 엄마는 슈퍼에서 식료품을 훔쳐야 할 정도로 한달을 근근히 버틴다. 망가진 딸의 보청기를 정부지원을 받아 사려면 급여명세서를 제출하거나 보증인의 서류가 필요하다. 제대로 된 직장을 가지거나 대신 빚을 갚아줄 친인척이 없는 이방인에게는 너무나도 높은 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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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슨’은 제77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미래의 사자상,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했다.(사진제공=워터홀컴퍼니)

 

‘리슨’의 기저에는 지극히 사무적이고 엄격한 영국 복지에 대한 조롱이 깔려있다. 한국 관객들은 자신들을 검사하러 온 복지국 사람들을 지나치게 경계하는 부부의 모습이 의아할지 모른다.

 

벨라는 딸의 멍 자국을 보고 그냥 넘어가지 않을 복지국 사람들을 걱정한다. 아이들을 데리고 도망치자는 벨라에게 남편은 “어차피 또 잡혀”라는 말로 그동안 당했던 모욕과 탁상공론적인 제도를 가늠케 만든다.

 

‘리슨’의 전개는 흡사 폭풍같다. 갑자기 들이닥친 복지사들은 경찰을 대동한 상태고 아이들은 시설로 옮겨진다. 부모와 아이들은 72시간이 지나서야 면담이 허용되고 영어가 아닌 언어를 사용하면 바로 제지당한다. 아이들에게 수신호나 모국어로 혼동을 주면 안된다는 조항이 있기 때문이다. 

 

벨라는 수화가 아니면 제대로 된 대화를 할 수 없다고 읍소하지만 그마저도 묵살당한다. 영화는 복지라는 이름으로 보다 나은 가정으로 강제로 보내지는 아이들을 자세히 비추지는 않는다. 대신 그 주변인들을 통해 이 법이 가진 모호함과 잔인함을 파헤친다. 

 

벨라는 반쯤 실성해 절규하는데 그 모습을 보고 법원에서 ‘공격적임’이란 도장을 서류에 찍는 식이다. 졸지에 학대가정이 된 그들을 돕는 건 도리어 복지 현장에서 법의 허술함을 겪은 전직 복지사 뿐이다. ‘리슨’은 장애가 없는 큰아들 디에구와 아직 아기인 제시가 별다른 통보 없이 다른 가정으로 입양되는 모습을 통해 하나의 ‘상품’으로 취급되는 비극을 간과하지 않는다. 

 

이들의 양부모는 정부에서 더 많은 지원금을 받으며 살 수 있다. ‘복지의 선순환’이란 이름으로 1가구 4명까지 입양이 가능한 게 선진국 복지의 현실이다. 결국 장애를 가진 루만이 입양을 희망하는 곳이 없어 긴긴 터널을 지나 부모의 곁으로 돌아온다.

 

영화 ‘러브 액츄얼리’에서 콜린 퍼스와 언어를 넘어선 로맨스로 설렘을 안겨줬던 오렐리아 역의 루시아 모니즈의 연기는 영혼을 울린다. 모유가 흘러내리는 젖가슴을 닦아내지도 못한 채 아이들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연기투혼’이 어떤 건지 절로 깨닫게 된다. 

 

실제로 귀가 들리지 않는 아역 배우 메이지 슬라이의 눈빛은 언어만이 연기를 완성하지 않음을 증명한다. 헤어질 때 엄마의 휴대폰 번호를 외웠던 디에구와 어느 가정으로 갔는지 알 길이 없는 제시의 결말은 영화를 봐야만 알 수 있으니 필히 손수건을 준비하고 ‘리슨’을 봐야 한다. 9일 개봉.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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