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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존재… '엄마'는 그저 거들 뿐!

[Culture Board] 모성의 연대를 역사로 풀어낸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패러렐 마더스’

입력 2022-03-30 18:00 | 신문게재 2022-03-31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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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패러렐 마더스’(사진제공=㈜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영화 ‘패러렐 마더스’에는 다양한 모성이 나온다. 중년의 나이에 배우로서의 꿈을 키우는 엄마, 집안 대대로 싱글맘으로 아이를 키운 포토그래퍼, 동급생들의 집단강간으로 임신을 한 10대까지.  


이들 중 두 사람은 모녀라는 끈으로 이어져 있고 또 다른 둘은 첫 아이의 출산을 함께한 사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직역하자면 ‘평행모성’(Parallel Mothers)인 이 영화는 여자라는 이유로 겪는 출산의 고통과 기쁨 그리고 반복되는 피의 역사를 정면으로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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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패러렐 마더스’(사진제공=㈜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잘 나가는 사진작가인 야니스(페넬로페 크루즈)는 같은 병실에서 어린 산모인 아나(밀레나 스밋)를 만난다. 긴 진통 끝에 딸을 품에 안은 두 사람은 격렬한 경험을 함께한 동지답게 끈끈한 인연을 이어간다  일찌감치 갈라섰지만 부유한 부모 덕에 아쉬움이 없는 아나는 홀로 아이를 키우는 야니스를 보며 존경을 넘어 사랑을 느끼게 된다. 

 

‘내 어머니의 모든 것’ ‘귀향’ 등을 연출한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은 전작에서 보여준 독재정권의 상흔을 간과하지 않는다. 인간의 본능과 쾌락을 과감한 색감으로 표현하는 미장센은 여전하다. 스페인 내전 당시 십만 명이 넘는 사람이 아이와 놀다, 집에서 밥을 먹다 끌려가 땅 속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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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심장한 영화 ‘패러렐 마더스’의 포스터. 강렬한 색감과 직선의 스포트라이트가 내포하는 뜻은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다. (사진제공=㈜스튜디오 디에이치엘)

국내 관객들에게는 다소 생소할 수 있는 이 내전은 한국 근대사에서 제주도와 광주에서 일어난 비극을 생각하면 쉽다. 

 

제주 4.3사건과 5.18 광주 민주화운동에서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처럼 스페인에서는 10만명의 민간인들이 실종됐고 그 중 유해 발굴로 찾은 사람은 2만명이 채되지 않는다. 

 

야니스는 고향의 어딘가에 묻힌 조부의 뼈를 발굴하는 숙원을 가진 채 살아왔고 우연히 알게 된 인류학자 아르투로에게 의뢰한다.  


가정이 있는 남자였지만 서로 구속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진다. 알모도바르 감독이 카메라에 담은 베드신은 여전히 적나라하면서 찬란하다. 

색감, 여성 그리고 성에 대한 과감함은 감독의 작품에서 페넬로페 크루즈 다음으로 ‘얼굴없는 페르소나’니까 남미 특유의 아찔함을 기대해도 좋다.

영화의 중반 멜로가 스릴러로 흐르는 건 아르투로가 자신의 아이를 부인하면서부터다. 남자없이 살아온 자신의 할머니와 엄마처럼 당당한 싱글맘을 선택했지만 아버지의 존재를 부정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충격적이게도 야니스 역시 아이의 친모가 아니라고 밝혀진다. 누구의 아기인지도 모를 그때, 갑작스런 유아돌연사로 딸을 잃은 아나가 집에 찾아오면서 비극은 시작된다.

 

대부분의 관객들이 ‘왜 자신의 친딸을 찾지 않는지?’에 대한 답답함에 빠질 때마다 등장하는 건 아나의 엄마다. 숨은 공식처럼 언제나 ‘(돌아갈)엄마의 집’을 등장시켜 왔던 알모도바르 감독은 배우를 꿈꿨으나 임신으로 인해 그 꿈을 접은 테레사(아이타나 산체스 지욘)를 통해 희생적이고 전통적인 모성이 변화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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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국민배우 아이타나 산체스 지욘이 테레사 역할을 맡아 영화의 세련미를 한층 더한다. 사진제공=㈜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짧지만 강렬한 테레사와 야니스의 조우는 ‘일하는 엄마’로서의 공통점과 자신의 꿈을 위해 달려가는 한 인간의 욕망이 맞붙는 신이다. 출산이라는 공통점을 겪고 남자에게 배신 당한 아픔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직업을 누구보다 소중히 여기는 두 사람의 연대는 곧 아나의 변화로 이어진다.

 

‘패러렐 마더스’의 변화는 단연코 후반 20분이다. 두 여자 사이의 사랑과 배신, 진실과 거짓을 그린 멜로 스릴러가 역사로 흐르는 순간을 감독은 살아있는 사람들이 무덤에 누워있는 모습으로 마무리한다. 묻혀진 유골과 똑같은 모습으로 살아 숨쉬는 배우들의 모습을 보는 순간, 국적을 떠나 진한 눈물이 차오른다. 31일 개봉.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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