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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언젠간 내 이야기가 될 지도 모르는 영화! '말임씨를 부탁해'

[Culture Board] '말임씨를 부탁해', 노인문제에 대한 사실적인 연출 눈길

입력 2022-04-13 18:00 | 신문게재 2022-04-14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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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임씨
아마도 김영옥은 이 영화를 첫 주연작으로 기다려온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13일 개봉한 ‘말임씨를 부탁해’의 한 장면. (사진제공=씨네필운)

 

고령화 시대에 시기 적절한 영화다. 영화 ‘말임씨를 부탁해’는 동네 어딘가에서 본 할머니와 가족, 그 사이에 낀 요양보호사가 나온다. ‘가족 같은 남, 남 같은 가족’이란 단어에 한번이라도 공감해 봤다면 이 영화, 꽤 묵직하게 다가온다. 영화는 남에게 신세지기 싫어하는 85살의 엄마 말임(김영옥)과 그의 하나 밖에 없는 아들(김영민)의 갈등을 주축으로 한다.

외동아들인 입장에서 엄마를 모시지 못한다는 죄(?)로 한없이 눈치가 보인다. 사실 아들은 오랜 구직활동 중이다. 그의 아내이자 말임의 며느리는 은행에서 진상 고객을 전담하는 베테랑 워킹맘. 눈치 빠른 관객이라면 언제고 터질 고부 사이의 폭탄이 그려질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기대 없이 그냥 한술 떴다가 돌솥에 갓 지은 쌀밥을 만난 느낌이다. 그저 평범한 휴먼 드라마인 줄 알았는데 돌솥밥에서만 맛 볼 수 있는 쌀의 단맛을 가진 영화랄까. ‘말임씨를 부탁해’의 오프닝은 그야말로 우리 할머니 혹은 우리 엄마의 모습을 고스란히 스크린에 재현한다.

극 중 말임은 자기 할 말만 하고 전화를 끊는 이 시대 보통의 할머니다. 평생 남에게 신세지지 않고 살았고 지금도 그럴 생각이 없다. 하지만 아들 내외가 시간만 나면 들리는 통에 아픈 무릎으로 반찬과 밥을 준비하는 게 영 힘에 부친다. 말임에게는 10년을 같이 산 반려견이 있고 늘 자신에게 깍듯한 같은 세입자이자 이웃인 복덕방과 미용실이 있다. 이 또한 오래되고 낡은 건물이지만 자신 명의의 주택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다.

말임은 옥상에 널린 미용실 수건을 걷어주다 낙상을 하면서 팔이 부러지는 사고를 겪는다. 서울에 사는 아들은 일단 요양보호사 미선(박성연)을 수소문해 집에 상주시킨다. 살가운 걸 넘어 다소 뻔뻔해 보이는 미선은 꼿꼿한 말임과 시종일관 부딪힌다. 깜빡거리는 기억력과 건강식품 사기에 번번히 걸려드는 어리숙한 노인네들만 봐왔던지라 그 역시 말임과의 관계가 영 쉽지 않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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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중 미선 역할의 박성연이 보여주는 사실적인 연기는 ‘말임씨를 부탁해’를 보는 또다른 재미다. 이(사진제공=씨네필운)

 

아들 역시 마냥 마음이 편한 게 아니다. 엄마는 툭하면 수저가 사라지고 반찬이 없어졌다는 등의 이유를 대며 미선을 자르라고 한다. 요즘 그런걸 가져가는 사람이 어딨냐고 하소연을 하지만 실제 미선은 그런 작은 살림살이를 훔치며 살아가고 있다. 노인들을 상대로 벌이는 다단계에 대처하는 그의 대처법은 지금도 어딘가에서 살갑게 구는 누군가의 친절이 그리워 쌈짓돈을 탕진하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심정이 이해갈 정도다. 

무엇보다 데뷔 65년차에 스크린 주연을 맡은 김영옥은 대체 배우가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진정성 있는 연기를 선보인다. 아마도 소녀같은 김혜자가 했으면 겉돌았을 생활고 연기, 사실 연기의 대가 나문희와 고두심이 했다 해도 어울리지 않았을 외상 후 섬망증상, 세련된 윤여정이라면 당하지 않을 것만 같은 옥매트 사기 등 ‘김영옥이기에 아우르는 연기의 폭’이 상당하다.

영화는 노인 부양에 대한 현실적인 문제와 더불어 허점을 예리하게 짚어낸다. 말임은 국가보조금을 받기 위해 연기를 하라는 아들의 말을 들어주다가도 공짜 선물에 혹하는 노인의 심리를 이용한 복지사의 귀여운 거짓말에 여지없이 속아넘어간다. 동네에서 알아주는 부자는 아니지만 손 벌리지 않고 살 수 있는 말임의 모습은 그나마 좋은 케이스에 해당한다는 걸 관객들은 안다. 그에겐 자신을 대신해 싸워줄 아들과 깍쟁이 같아도 성격 좋은 며느리가 있다. 이웃들도 매사에 정갈한 말임을 큰어른으로 모시는 분위기다.

하지만 영화가 말하는 노년의 삶은 여전히 불안하고 외롭기 그지 없다. 만약 가족들 조차 선뜻 손을 내밀지 못하는 상황이 닥쳤을 때 그들의 삶은 누가 책임져야 할까. ‘말임씨를 부탁해’는 바로 그 질문에 대한 색다른 대안을 제시한다. 굴곡진 세월을 살아왔어도 결코 어른의 품격을 잃지 않으려는 수많은 말임씨가 있어서 가능한 ‘해피엔딩’이지만. 110분.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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