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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AI로봇은 지휘자가 될 수 있을까? 그 가능성을 가늠하는 국립국악관현악단 ‘부재’(不在)

[Culture Board] 국내 첫 AI로봇 지휘자 나선 국립국악관현악단

입력 2023-06-28 18:30 | 신문게재 2023-06-29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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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악관현악단 ‘부재’로 인간 지휘자 최수열과 AI로봇 지휘자 에버6가 한 무대에 오른다(사진제공=국립극장)

 

“첨단 기술이 날로 발전하면서 로봇, 인공지능(AI) 등 기술이 인간의 역할을 대체하게 될 것인지에 대한 이슈가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이번 공연 역시 이러한 고민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술 영역에서 로봇이 대체할 수 있는 역할이 있을지에 대한 상상으로 시작했지만 한명의 예술가로서는 한편 기술이 대체할 수 없는 절대 불가침의 영역이 예술에는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로봇은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를 대신할 수 있을까. 2008년 일본 혼다사의 아시모(Asimo), 2017년 스위스의 협동 로봇 유미(Yumi), 2018년과 2020년 일본에서 선보인 2세대 AI 휴머노이드 로봇 알터2와 알터3에 이어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AI로봇이 지휘자로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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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악관현악단 ‘부재’로 인간 지휘자 최수열과 AI로봇 지휘자 에버6가 한 무대에 오른다(사진제공=국립극장)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아쟁 연주자이기도 한 여미순 예술감독 직무대리의 말처럼 ‘부재’(不在, 6월 30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는 “박자만 정확하다면 지휘자 없는 오케스트라가 가능할까라는 호기심에서 이어진 로봇이 지휘를 할 수 있을까라는 상상”의 실현이자 고민의 결과물이다. 

연주자에게는 가장 중요하면서도 너무나 당연한 지휘자의 존재와 역할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한 ‘부재’에서는 한국생산기술연구원에서 개발한 안드로이드 로봇 에버6와 지휘자 최수열이 따로 혹은 함께 무대에 올라 관현악단을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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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악관현악단 ‘부재’ 무대에 오를 최수열 지휘자(사진제공=국립극장)

에버6는 국립국악관현악단의 레퍼토리 중 비얌바수렌 샤라브 작곡의 ‘깨어난 초원’과 만다흐빌레그 비르바의 ‘말발굽소리’를, 최수열 지휘자는 황병기의 가야금 협주곡 ‘침향무’, 김성국 작곡의 ‘영원한 왕국’을 지휘한다. 

 

에버6가 지휘할 ‘깨어난 초원’과 ‘말발굽소리’는 몽고 대초원을 달리는 말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밝고 경쾌한 곡들로 반복적인 움직임을 빠른 속도로 정확하게 수행하는 에버6의 특성에 맞춘 선곡이다.  

 

눈에 띄는 실험은 국립국악관현악단이 손일훈 작곡가에게 위촉한 신작 ‘감’이다. 정해진 시나리오와 악보 없이 연주자들의 감에 따라 진행되는 즉흥곡으로 최수열 지휘자는 연주자들과의 교감을 통해 음악을 만들어내고 에버6는 일정한 속도와 박자로 패턴 지휘를 담당하며 인디케이터의 역할을 수행한다.

 

개발을 담당한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이동욱 박사의 설명처럼 에버6는 “프로그램된 대로 시연하는 로봇”으로 “공연 전 프로그램을 결정하고 짜여진 대로 동작을 한다.” 챗GPT, 빅데이터 등을 활용한 생성형 AI(인공지능)가 아니라 정예지 로봇학습지휘자의 ‘모션 캡처’가 적용된다. 에버6는 정예지 로봇학습지휘자의 모셥캡처 동작을 6개월간 학습하고 그의 관절에 맞게 모션 리타깃팅(데이터변환)해 동작구현이 가능해졌다.

 

공연에 앞서 26일 진행된 연습실 공개 현장에 모습을 드러낸 에버6의 장점은 지휘자와 연주자들이 입을 모으는 “정확한 박자감”이다. 더불어 에버6는 듣지 못하는 로봇으로 어떤 타협이나 흔들림 없이 정확한 박자감만을 표현한다. 

 

이는 감정, 그날의 컨디션, 고유의 호흡 등에 따라 미묘하게 달라지는 연주자들과의 교감을 어렵게 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이날 연습 현장에서도 최수열 지휘자가 밝혔듯 “위험한 순간들”이 포착되기도 했다. 이에 국내 최초의 AI로봇 지휘자 에버6는 아직까지 “음악가들에게는 트레이너 역할” 정도의 가능성에 머무르고 있다. 


국립국악관현악단
국립국악관현악단(사진제공=국립극장)

 

지휘자는 무대 위에서 지휘봉만을 흔들어대는 사람이 아니다. 적지 않은 시간을 들여 악단의 소리를 듣고 저마다의 장점을 극대화하면서도 하모니를 만들어낸다. 제안과 설득을 통해 악단이 만들어내는 음악이 나아갈 방향과 비전을 제시해 공유한다. 각 연주자들의 호흡과 개성을 존중하면서도 나아갈 방향에 맞춰 악단을 아우르고 이끄는 역할 또한 지휘자의 몫이다.  


그런 측면에서 에버6는 아직까지 그의 지휘 동작을 위해 인간 지휘자가 더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하고 그에 맞는 음악을 선곡하거나 새로운 곡을 위촉해야하는, 지휘 동작을 구현하는 ‘퍼포머’에 가깝다.

그간 기술은 인간 편의 혹은 인류의 진화, 사회의 발전을 위해 최첨단화돼 왔다. 혹은 혁신적인 예술을 탄생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에버6는 아직까지 인간 지휘자를 대체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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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악관현악단 ‘부재’로 인간 지휘자 최수열과 AI로봇 지휘자 에버6가 한 무대에 오른다(사진제공=국립극장)

 

‘부재’가 로봇을 위해 인간이 불편함을 감수해야하는 프로젝트로 비춰질 수도 있다. 혁신적인 예술의 탄생 조짐도 아직까지는 읽히지 않는다. 그럼에도 ‘부재’는 함께 만드는 예술가들에게도, 관람객들에게도 색다른 경험을 제공하는 무대다.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 직무대리를 하고 있지만 스스로 예술가이기도 한 여미순 아쟁 연주자는 “로봇 지휘자가 아니었다면 손일훈 작곡가의 ‘감’ 같은 곡은 (국립국악관현악단이 연주)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무한 상상력에서 무한한 창의적인 곡이 나올 수 있다”고 에버6 프로젝트의 가치를 짚었다. 

기술은 예술이 될 수 있을까, 인간과 기술의 공존은 가능할까, 기술이 인간의 자리를 대체했을 때 인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부재’는 그렇게 기술발전으로 생성되는 수많은 질문들, 기술과 인간 그리고 예술이 협력하는 올바른 방향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고민과 과정의 일부다.

‘이 실험 하나로 로봇이 인간을 대체할 수 없다는 판단이나 우월의식은 섣부르다’ 그리고 ‘지휘자의 부재가 인류의 존재 가치를 부정하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도록 치열한 고민은 계속 돼야 한다’는 묵직한 깨달음은 덤이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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