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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그 끝에서 햇빛처럼 반짝이는 쇼팽의 ‘녹턴’을 만났다, 피아니스트 백건우

[人더컬처] 2017년 베토벤 소나타 전곡 사이클에 이어 쇼팽 '녹턴' 전곡 6년 만의 신보, 피아니스트 백건우,피아노 리사이틀 ‘백건우&쇼팽’ 전국 투어
4월 2일 러시아 국립 스베틀라노프 심포니와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 협연

입력 2019-03-12 07:00 | 신문게재 2019-03-12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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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건우
피아니스트 백건우(사진제공=빈체로)

 

“베토벤의 소리는 작든 크든 모든 음에 힘이 있어야 해요. 멜로디, 하모니, 리듬이 모두 살아 율동하는 소리죠. 반면 쇼팽은 조화를 이루면서 필요한 음이 위로 떠오르게 하고 나머지는 그걸 뒷받침해주는 소리예요. 만들어나가는 과정과 방법이 굉장히 대조적이죠.”

2017년 베토벤 소나타(Beethoven‘s Sonatas) 전곡 사이클에 집중했던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쇼팽(Shopin)의 ‘녹턴’(Nocturnes, 야상곡) 전곡을 연주해 6년만의 정규앨범으로 꾸렸다. ‘녹턴’은 쇼팽이 17세기부터 사망 직전까지 생각날 때마다 써내려가던 일기와 더불어 작곡했던 곡으로 알려진다.

“‘야상곡’에는 참 많은 것이 들어있어요. 쇼팽이 외로웠던 건 사실 같아요. 조국을 떠났고 몸도 아팠고 러브스토리도 성공적인 편은 아니었으니까요. 금전적으로도 여유롭지 않았고 조국은 전쟁을 치르고 있었죠.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여러 가지 쓰라림을 음악에서 많이 표현하는 것 같아요.” 

 

백건우
피아니스트 백건우(사진제공=빈체로)

그리곤 “때로는 쇼팽도 소리를 막 지를 때가 있다. ‘야상곡’이라고 다 조용한 건 아니다”라며 “어떤 곡은 속에서부터 울분이 터지는 것을 느낄 수 있고 자기가 가질 수 없는 아름다움을 추구할 때도 있다. 쇼팽은 ‘녹턴’에서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각자 들으면서 상상하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쇼팽의 ‘녹턴’이 말을 걸어오다

“쇼팽의 ‘야상곡’에 대해 설명이 필요할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항상 뭔가 새로운 것이 눈에 보여 몇십년 동안 작업을 끊임 없이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녹턴’은 줄리어드 시절부터 연주했던 곡이죠. 참 훌륭한 곡인데 ‘내가 아직까지 이해하지 못하는구나’ 할 때가 많았어요. 언젠가는 이곡을 제대로 연주해야겠다 늘 숙제로 남았었죠. 지금와서 이곡이 나한테 다가오면서 곡과 저의 대화가 시작된 것 같아요.”

그의 표현처럼 쇼팽의 ‘녹턴’과 그의 대화가 시작된 건 서울에서의 두 번째 베토벤 소나타 전곡 리사이틀을 마친 2017년 가을 무렵이었다. 스튜디오에 있던 쇼팽의 ‘녹턴’ 악보를 보며 “굉장히 새롭다는 생각과 더불어 새로운 ‘야상곡’을 만들 수도 있겠구나 라는 기대가 들었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그렇게 ‘녹턴’을 다시 보기 시작한 백건우는 언제나 그렇듯 습관처럼 쇼팽의 모든 곡들을 훑으며 ‘쇼팽이라는 작곡가의 음악세계를 가장 잘 표현할 수 곡’에 대한 연구에 몰두했다.

“쇼팽을 대변하는 곡이 무엇인가를 연구하며 하나하나 제하다 보니 그 끝에 ‘야상곡’이 있었어요. 쇼팽은 대중들을 위하기 보다 자신과 대화를 하듯 연주했어요. 큰 홀에서 연주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 작은 살롱 같은 데서, 친구들 앞에서 자신의 곡을 연주하고 진실된 대화를 나누는 걸 좋아했죠. 당시 쇼팽 연주를 들은 사람에 따르면 어떤 때는 너무 조용해서 잘 안들릴 정도로 피아노를 쳤지만 감동은 너무나 컸다고 하더라고요.”

‘쇼팽의 녹턴 전곡’(Chopin The Complete Nocturnes)을 위해 파리에서 쇼팽에게 피아노를 배웠던 제자들에 의해 남아 있는 자료들을 훑기도 했다. 쇼팽이 어떤 부분을 어떻게 처리했고 어떤 소리를 냈는지, 피아노 칠 때의 모습은 어땠는지 등을 새삼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콘체르토, 발라드, 폴로네이즈 등 대곡들도 많지만 쇼팽이 하고 싶은 말은 ‘야상곡’에 있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어요. 개인적인 의견이고 지금 저의 마음 상태에 비춰진 거겠지만 쇼팽을 가장 가까이서 표현하고 싶어서 선택한 것이 ‘야상곡’입니다.”


◇백건우만의 템포와 순서에 따라
 

백건우
피아니스트 백건우(사진제공=빈체로)

 

다양한 악보를 비교하고 ‘녹턴’에 대해 쓰여진 글을 읽고 또 읽었다. 악보와 쇼팽의 음악세계 연구는 그로 하여금 음악에서 호흡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쇼팽의 악보는 악센트가 잘못 해석된 것들이 많아요. 쇼팽은 어떤 음에서 점점 수그러지는 형이에요. 숨쉬기 전에 음과 음을 연결하는 것이 열쇠죠. 연결돼야 생명력이 생겨나거든요. ‘녹턴’의 어떤 악보는 한숨으로 돼있기도 해요. 그런 걸 상상한 쇼팽이 놀랍기만 합니다.”

악보 연구와 더불어 쇼팽의 음악세계에 관한 책을 참고하면서 “쇼팽은 뛰어난 피아니스트”였으며 “굉장히 독특한 소리와 핑거링 테크닉의 소유자”였음을 새삼 깨닫기도 했다.

“특별히 피아노를 공부한 것도 아닌데 러시아, 비엔나, 유럽 등지를 돌며 연주했을 때 청중들 모두가 놀랐을 정도였죠. 자신만의 독특한 소리와 테크닉을 가진 피아니스트였던 것 같아요. 특히 레가토(음과 음 사이의 끊어짐이 느껴지지 않도록 연주하는 것)를 할 수 있는 핑거링 테크닉을 가졌던 것 같아요. 그 핑거링에 굉장히 고심이 많았죠.” 

 

백건우
피아니스트 백건우(사진제공=빈체로)

이어 “페달로 해결되는 게 있고 핑거링으로 해결해야 하는 부분이 있는데 하면 할수록 핑거링의 중요성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소리내는 것과 연결하는 것, 쇼팽에서 가장 중요한 건 화음을 어떻게 끌고 나가느냐죠. 쇼팽의 소리가 예쁜 이유는 피아노의 복잡한 음향 처리에서 나와요. 멜로디만 듣기 쉽지만 그 멜로디가 나오게끔 받쳐주는 왼손과 오른손 안에서도 묘하게 쇼팽만의 독특한 아름다움이 숨겨져 있죠. 그걸 찾아내는 것이 쉽진 않았지만 참 재밌는 작업이었어요.”

그렇게 백건우의 손끝에서 새로 탄생한 ‘녹턴’은 통상적으로 알려진 속도보다 늦춰진, 백건우 특유의 박자 감각이 녹아들었다.

“쇼팽의 ‘녹턴’은 참 예쁜 곡, 부담 없이 듣기 좋은 곡이라고 생각하기 쉽죠. 하지만 깊이 있는 곡이기도 해요.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속에 든 드라마를 느낄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그에 맞춰 (다소 느린) 템포를 잡았죠. 많은 것을 표현하기에는 그러한 템포가 필요해요.”

더불어 곡에 매겨진 번호순이 아닌 앨범의 흐름, 각 곡의 소리 등을 가늠해 배치됐다. 이에 대해 백건우는 “작곡가가 꼭 순서대로 연주하길 바라면서 곡을 쓰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몇곡을 한꺼번에 쓰기도 하지만 한곡 한곡에 충실하죠. 전곡을 연주한다고 1번부터 당시 출판이 안된 것까지 합쳐 21곡을 차례대로 칠 필요는 없어요. 곡에서 곡으로 넘어가는 흐름, 어떻게 하면 각 곡의 소리가 잘 들릴 것인지를 고민해 순서를 정했죠.”

이번 앨범은 지난해 통영의 스튜디오에서 녹음됐다. 그는 “외국 못지 않은 좋은 시설을 갖춘 곳”이라며 “악기와 음향, 경치가 좋은 곳에서 여유 있게 녹음할 수 있었다. 외국 못지 않은 한국 스튜디오에서 자신있게 녹음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고 털어놓았다.

“첫 번째 숙제는 피아노 소리 표현하기였어요. ‘녹턴’의 소리는 무리하지 않고 울려요. 그 소리가 노래를 부를 수 있어야 하고 힘을 안줘도 빛을 발휘하는 소리여야 하죠. 그 소리를 표현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날씨가 흐려 피아노가 좀 침체된 상태였거든요. 그렇게 일주일 정도 지나 날이 개면서야 햇빛을 받은 것처럼 소리가 나기 시작했죠.”


◇‘백건우&쇼팽’과 ‘러시아 국립 스베틀라노프 심포니’와의 차이콥스키
 

러시아 국립 스베틀라노프 심포니
4월 2일 백건우와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협연할 러시아 국립 스베틀라노프 심포니(사진제공=빈체로)

 

그는 앨범 발매와 더불어 12일 서울 마포아트센터 플레이맥을 시작으로 군포, 여주, 과천, 광명, 부산, 춘천, 대구, 인천, 음성, 안산 등 전국을 돌며 백건우 피아노 리사이틀 ‘백건우&쇼팽’을 진행한다. 1993년부터 지방공연을 진행하고 있는 백건우는 “문화는 모든 사람의 권리”라고 주장했다.

“그 문화를 제공하는 것이 우리들의 의무예요. 제 꿈은 그런 문화생활을 어디서든지 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좋은 음악을 전달하는 것이 제 즐거움이고 책임이며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이 리사이틀에서 그는 쇼팽의 ‘녹턴’ 4·5·6·10·13·16번과 더불어 ‘즉흥곡’ 2번, ‘환상 폴로네이즈’, ‘왈츠’ 1·4·11번, ‘발라드’ 1번을 선사한다.

“‘야상곡’은 혼자 감상할 때 흐름이 참 좋은 곡이에요. 하지만 큰 홀에서 연주될 때는 장소와 시간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에 ‘야상곡’만 연주하는 건 청중들이 그 곡을 완벽하게 알고 한곡 한곡 음미할 수 있을 때 가능하죠.”

그는 프로그램 순서에 대해 “처음 오프닝으로 ‘즉흥곡’을 넣었다. 그 후로 ‘야상곡’ 2곡, ‘환상 폴로네이즈’ 순으로 연주한다. ‘환상 폴로네이즈’는 쇼팽 작품 중 가장 훌륭하면서도 해석이 가장 어려운 곡”이라며 “그 후 다시 ‘야상곡’ 두곡을 연주하고 분위기 전환을 위한 화려한 ‘왈츠’, 다시 ‘야상곡’ 두곡을 연주한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마지막은 ‘발라드’ 1번이 장식한다. 이 곡에 대해 백건우는 “제가 10대에 치던 곡으로 언젠가는 다시 제대로 쳐보고 싶었다”고 소개했다. 

 

백건우
피아니스트 백건우(사진제공=빈체로)

4월 2일에는 롯데콘서트홀에서 지휘자 아르망 티그라니얀(Arman Tigranyan)이 이끄는 러시아 국립 스베틀라노프 심포니(State Academic Symphony Orchestra of Russia ‘Evgeny Svetlanov’)와 차이콥스키(Tchaikovsky) 피아노 협주곡 1번을 협연한다. 


“차이콥스키를 다시 연주하면서 기분이 좋았어요. 그 곡이 또 새롭게 다가오더라고요. 몇십년을 대한 곡인데도 또 새로운 점을 발견하니 행복하죠.”

백건우는 앨범에 대해 “충실히 임했고 내가 생각했던 야상곡이 나왔다”면서도 “하지만 듣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다가갈 것”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어떤 마음으로 어떤 사람에게 이것이 전달돼야 한다는 조건은 없어요. 이 곡 자체가 답을 갖고 있으니까요. 들으면서 각자가 느끼는 바가 다 다를 겁니다. 음악은 작곡가가 쓰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에요. 연주자가 연주한다고, 청중이 듣는다고 끝나는 것도 아닙니다. 살아서 움직이는 생명체와 같아서 항상 존재하고 변하고 새로워지거든요.”

그리곤 늘 마음에 새기고 있다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 중 “우리 여기 앉아서 귓전으로 스며드는 음악 소리를 들어보자. 고요한 밤에는 아름다운 화음을 내는 게 제격이야”라는 구절을 언급했다.

“예부터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 울리는 문장이에요. ‘야상곡’과 너무도 잘 매치돼요. 어떻게 생각하면 야상곡을 듣게끔 마음의 자세를 만들어준다고 할까요. 몇 단어를 가지고 그렇게 아름답고 풍부한 표현을 하는, 훌륭한 예술가란 그런 것 같아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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