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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여성이라면… 남성이니까 '봐야 할' 영화 '박강아름 결혼하다'

[Culture Board] 다큐멘터리 '박강아름 결혼하다'가 던지는 가부장제도의 민낯
현대미술 전공한 감독의 그림 삽입된 또 하나의 아트영화

입력 2021-08-18 18:00 | 신문게재 2021-08-19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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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강아름1
프랑스로 건너간 부부는 박강아름이 돈벌이를 하고, 정성만이 가사와 육아를 맡아 다툼과 화해를 반복한다.‘박강아름 결혼하다’의 한 장면.(사진제공=영화사 진진)

 

영화의 제목을 바꿔야 할 것 같다. 18일 개봉한 ’박강아름 결혼하다’는 ‘상만, 박강아름과 결혼해주다’에 가깝다. 감독의 자전적이야기를 담은 이 다큐멘터리 영화는 오랜 기간 프랑스 유학을 준비 중이던 박강아름 감독이 당시 연애중이던 구남친이자 현남편인 상만과 함께 떠난 현지에서의 생활을 사실적으로 다룬다. 

그는 비혼주의자던 남편 상만을 만나 동거에 결혼까지 골인한다. 그의 확고한 비혼주의를 알고서는 집에 와 내내 울었을 정도로 실망했던 감독은 굴하지 않고 아예 프랑스에서 출산까지 감행(?)하는 결단력을 보여준다. 그렇게 영화는 가난한 유학생 부부의 좌충우돌 일상을 노필터로 그려낸다.

타지에서의 외로움과 가족이란 울타리에서 느끼는 안락함을 상상하면 오해다. 감독은 “종종 하루에 몇 번씩 결혼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죽도록 싸웠음을 담담히 고백한다. 그는 이곳에서 다른 커플들을 만나며 인류역사상 ‘사랑해서 결정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뭔가 손해 보는 느낌’의 제도를 신랄하게 탐구한다. 불어로 자유로운 소통이 가능한 박강아름은 경제권을 쥐고 독박육아와 살림을 도맡아하는 상만의 지원으로 계획한 공부를 해 나간다. 하지만 소설을 쓰며 주 3회 주방일을 하던 서울에서의 일상을 사랑하던 남편은 점차 우울증에 시달린다.

아내는 그에게 일주일에 단 한팀만 받는 공유주방을 제안하고 ‘외길식당’이란 이름의 식당을 자신의 부엌에 연다. 집밥이 그리운 유학생과 현지 연인들이 데이트 시 찾는 곳으로 입소문이 난 외길식당은 사실 하면 할수록 적자인 상황. 상만은 질 좋은 재료에 대한 욕심을 주체할 수 없고 박강아름 감독은 사람을 너무 좋아했기에 이윤이 남을 수가 없었다.

영화의 초반은 일하는 여성이자 한 아이의 엄마로 겪는 육체적 고통에 집중한다. 드라마 속의 입덧과 출산 후 행복해 하는 엄마들의 모습은 사실 미디어가 만들어낸 환상임을 82년생 감독은 온몸으로 겪는다. 막달 변비로 인해 치핵이 빠져 나오는 굴욕과 모유수유로 갈라지고 피가 맺힌 유두의 아픔을 그는 ‘박강아름 결혼하다’에 고스란히 담는다. 그리고 인터넷으로 만난 여성들의 연대와 지지로 초보엄마의 티를 벗는다.

박강아름
그림같은 해변에서 부부가 어떤 논쟁(?)을 벌였을지 영화는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는다.하지만 남편 상만이 강아지 배변 봉투를 처리하며 슬며시 웃은 모습은 이들의 끈끈한 연대를 재확인 시킨다.(사진제공=영화사 진진)

 

단순히 유학생이라는 신분을 넘어 이제는 ‘출산한 만학도’로 버전업한 감독은 원하는 미술학교에 입학한 바쁜 일상으로 영화의 중반부를 채운다. 출산율이 유럽 내에서도 비약적으로 높은 프랑스지만 그곳에서도 어린이집 대기가 길다는 점과 행정적으로 자국민조차 어려워하는 행정 시스템에 대한 쓴소리도 잊지 않는다. 상만은 결국 자신이 다니는 어학원에서 운영하는 병설 유치원에 딸을 등록하고 왕복 2시간을 함께하기로 결정한다.

사실 전통적 젠더 역할이 자연스레 뒤집힌 설정은 그저 겉모습에 불과하다. 영화에 등장하는 외길식당의 손님은 “혹시 이게 콘셉트냐?”고 조심스럽게 되물을 정도다. 한국보다 월등히 남성의 가사분담률이 높은 프랑스에서도 여전히 살림은 여자가 해야 된다는 보수적인 시선이 존재한다는 것.

이들의 바뀐 모습은 어떤 쾌감이나 울림보다 도리어 상만과 박강아름이라는 ‘사람’에 대해 집중하게 만드는 게 후반부의 매력이다. 남편은 여행차 떠난 덩케르크의 비오는 해변에서 바다를 가까이서 봐야겠다는 아내의 요구에 짜증을 숨기지 않는다.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자신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다고 툴툴대지만 결국 이들은 서로 나란히 유모차의 앞과 뒤를 나눠 들고 백사장을 건넌다. 남동생에게 더 집중하다 돌아가신 아버지와의 추억에 자신의 유학계획에 상만(남자)에 대한 배려는 없었음을 뒤섞는 박강아름의 패기는 또 어떤가.

페미니스트임을 자부하며 살았지만 자신에게 숨겨져 있던 가부장적인 가장의 면모를 깨닫게 만드는 체리방울토마토 사건의 결말은 그래서 더욱 사랑스럽다. 특히 감독이 직접 그린 애니메이션과 발랄한 OST는 적재적소에 삽입돼 ‘박강아름 결혼하다’를 보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더 나아가 이 영화는 최근 영화진흥위원회가 내린 ‘텐트폴 영화 제작비 50% 지원’에 대한 아쉬움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가진 자들의 아쉬움을 달래기보다  ‘박강아름 결혼하다’ 같은 프로젝트 50편을 발굴하는 것이 영화판을 살리는 것임을 그들은 깨달아야 한다.86분.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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