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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덕의 문화경] 뉴스는 영화가 아니다

입력 2015-08-06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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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가 한상덕

오래전 고등학교 시절의 이야기다. 국어시간에 ‘님의 침묵’에서의 님은 조국보다는 저자인 만해 한용운의 첫사랑일 확률이 높다고 발표했다가 엄청 혼이 난 경험이 있다.

 

내 딴엔 진지한 고민이었는데도 국어선생님은 장난으로 받아들였고 과장해서 표현하면 매국노를 대하는 듯 했다. 

 

이후 나는 시를 접할 때 애국심이나 교훈을 찾는 게 숙제처럼 됐다. 

 

시뿐만이 아니라 영화를 볼 때도 그랬고 덕분에 문화평론이 업이 됐는지는 모르겠다.

영화 ‘슈퍼맨’을 현실에서 모방하거나 영화 ‘타워링’의 화제 장면을 실제라고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관객이 박수를 보내는 까닭은 빌딩 사이를 날아다니는 슈퍼맨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잿더미 속의 아이를 구하는 소방관에 자신을 투사하기 때문이다. 

 

가상의 세계를 실제처럼 여기고 영화 속의 인물에 동화되기에 관극이 이루어지는 거다. 허구가 진짜처럼 보이지 않으면 3류 영화가 된다.

대신에 극장 밖에 나오면 영화의 리얼리티는 자동적으로 소멸된다. 

 

영화 속의 악당은 허구의 인물이 되고 화려한 자동차 추격 신은 영화적 장치에 불과하게 된다. 

 

교훈을 얻든 말든 극히 개인적인 사유에 속하고 전쟁물이든 역사물이든 사실로 받아들이길 강제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영화를 보는 것이 개인적인 행위이듯 느낌 또한 개인의 영역에 속한다.

페이크 다큐멘터리는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빌려 허구의 상황을 실제 상황처럼 가공한 영화다. 현실을 그대로 담아내는 ‘다큐멘터리(Documentary)’에 ‘가짜의’라는 이질적인 뜻을 가진 단어 ‘페이크(fake)’를 붙여 만들어진 용어이다.

MBN ‘기막힌 이야기 실제상황’, TV조선 ‘이것은 실화다’, 채널A ‘충격 실화극 싸인’은 영화에서만 가능한 페이크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빌렸다. 

 

전문가가 출연해 사건을 해설하고 출연자를 뿌옇게 모자이크 처리한 것은 그런 이유가 있어서다. 

 

인공조명을 최대한 배제해 자연조명을 이용하고, 소형 카메라를 활용한 핸드 헬드(hand held)기법을 노출시키고, 상황을 실감나게 전달하기 위해 인터뷰를 삽입했다. 다큐가 지닌 사실감으로 시청자들의 몰입감을 높이기 위해서다.

 

‘실제 일어난 사건사고’라는 인식을 통해 신뢰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청자들의 마음은 불편하기 그지없다. 어디까지 진실인지가 궁금하고 갖가지 범죄적 진실들이 두렵기만 하다. ‘교사 성폭행’, ‘국회의원 성폭행’, ‘세모자 성폭행’과 같은 추잡스러운 현실이 가상의 프로그램을 능가하는 탓도 있다. 

 

그리고 시청자들은 “본 프로그램은 허구로 재구성된 모큐드라마입니다. 등장인물, 장소, 상황은 모두 가상이며….”라는 채널A ‘충격 실화극 싸인’의 자막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방송 전문가들에게도 생소한 ‘모큐드라마’라는 용어 또한 시청자들의 이해를 돕기보다는 우롱하는 측면이 더 강해 보인다.

시청자들의 입장은 이렇다.

 

예컨대 롯데그룹의 진흙탕 싸움을 중계 방송하듯 연일 보도하는 까닭을 알지 못한다. 

 

막장드라마의 소재로도 이미 익숙해진 재벌가의 속사정이 아니던가. 듣고 보는 것만으로도 짜증이 나는 판에 전문가의 해설 같지 않은 해설이 추가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뉴스란 사람들이 알기를 원하고 필요로 하는 것이다. 

 

심층 취재 없이 되풀이되는 뉴스와 주례사보다 못한 해설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뉴스가 아니다. 

 

또 별의별 흉측한 사건을 영화인 듯 다큐인 듯 헷갈려하며 시청하고 싶은 사람도 없을 것이다. 

 

사형수가 사용하던 의자를 집안에 두고 싶지 않듯 나쁜 뉴스는 이제 그만. 

 

공익적 책임을 지지 못하겠다면 횟수라도 제한했으면 좋겠다. 

 

힘센 범죄자의 얕은꾀는 끝까지 추적해야겠지만 말이다.

 

 

문화평론가 한상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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