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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이병헌이라 쓰고 갓병헌이라 읽는다!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이병헌
무력감 딛고 리더된 얼떨떨함, 탁월하게 연기
"재난영화 아닌 인간을 탐구하는 블랙 코미디라 자부"

입력 2023-08-07 18:30 | 신문게재 2023-08-08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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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스팅 제안을 받기 전에는 그저 만화적인 설정이 흥미로웠다. 대지진으로 모든 것이 붕괴된 서울, 아파트 한채만 무너지지 않았다는 설정은 현실과 거리감이 있었다. 배우 이병헌에게 주어진 역할은 황궁 아파트 입주민 대표 영탁. 외부세력에 의해 1층에 난 불을 끄기 위해 온몸을 던진 뒤 주민들에 의해 만장일치로 완장을 찬 인물이다. 

 

그는 “인간성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이 영화에서는 누가 선 절대적인 선이고 절대적인 악인이라고 얘기할 수는 없다는 점이 끌렸다”고 말했다. 여러 가지 인간 군상들의 모습과 본능적인 갈등 그리고 자신이 연기한 캐릭터 외에도 너무 공감가는 인물들이 나오는 게 흥미로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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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콘크리트 유토피아’에 대해 “영화를 보고 나서 관객들이 ‘나는 어떤 캐릭터에 가장 가까운 사람일까?’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겼다.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이병헌은 영탁을 “소시민의 전형으로 보고 접근했다”고 말했다. 지진으로 가족들을 잃고 삶은 없어진 상태에서 주민들이 추앙해주고 대표로서 인정해주는 상황에서 ‘이게 뭐지?’라는 느낌을 생생하게 살리는 데 주력했다. 그는 “극 중 부녀회장 역할을 맡은 김선영이 ‘지금 상황은 모두 리셋된거야. 살인범이나 목사나 무슨 차이가 있어?라는 대사가 가장 와닿았다” 고백하며 “늘 분장팀과 감독님과 상의하며 캐릭터를 만들어 가지만 ‘콘크리트 유토피아’ 만큼은 일부러 M자형 이마가 하늘로 뻗힌 폭탄머리를 먼저 제안하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개인적으로 끌리는 영화를 꼽자면 늘 사람이 보이는 작품입니다. 영탁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권력의 맛을 느끼고 그게 기형적으로 커 가는 점이 흥미롭더라고요. 재난 상황이니 당연히 이발은 못했을 거고 웃겨 보여도 기괴한 느낌을 주는 헤어스타일을 하는 게 맞다고 봤어요. 저에게 없던 다른 모습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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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경비구역 JSA‘(2000)부터 ’달콤한 인생‘(2005)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 ’악마를 보았다‘(2010) ’광해, 왕이 된 남자‘(2012) 등 수많은 화제작으로 필모그라피를 빼곡하게 채운 이병헌. 그는 “연출에는 관심없다”는 말로 오롯이 배우로서의 숙명을 따르는 모습을 보였다.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콘크리트 유토피아’ 속 영탁은 탁월한 리더다. 주민들을 이끌고 생필품을 구한 뒤 기여도에 따라 차등 지급한다. 방범대를 꾸려 외부인들의 침입을 막고 늘 솔선수범한다. 하지만 “지금 밖은 지옥”이라며 겨우 살아 돌아온 이웃집 소녀 혜원(박지후)의 등장으로 묘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그는 엄마와 함께 매몰된 죽은 딸이 생각나는 존재지만 두 사람의 눈빛은 공포와 의심이 시시각각 엇갈린다.

“배우로서의 숙제는 늘 캐릭터에 얼마나 완벽하게 젖어드냐인데 이 영화는 특히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이런 재난이 나에게 주어지면 영탁하고는 여러 가지 면에서 참 다를 것 같거든요. 실제 성격은 그런 자리나 역할을 굉장히 피곤해하는 스타일입니다. 능력도 없거니와 어딘가에 나서는 것 자체를 못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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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생존 포스터.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함께 출연한 배우들은 선배 이병헌의 생존연기에 혀를 내둘렀다. 극 중 그의 오른팔이자 영화의 엔딩을 장식하는 박서준은 “블랙코미디로 시작했는데 스릴러로 만들어 버리는 연기를 코 앞에서 봤다”는 말로 존경심을 내비쳤다. 같은 소속사 후배이자 영화 속에서 가장 큰 비밀을 밝히는 박보영 역시 “그렇게 오랜 시간 연기를 하셨는데 아직도 새로운 얼굴을 보여주시더라”며 촬영 당시를 회상했다.

사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어두운 소재, 한 여름과 반대되는 계절이 나오는 탓에 올 여름 개봉작 ‘빅4’ 중 최약체로 평가됐다. 하지만 언론시사회 직후 반응은 뒤바뀐 상태다. ‘밀수’의 류승완 감독, ‘더 문’의 김용화 감독, ‘비공식작전’의 김성훈 감독이 보여준 익숙한 흥행단맛이 각각의 매력을 분출할 때 가장 경험이 적은 엄태화 감독의 연출력을 기대하는 시선은 많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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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당시에는 밝히지 않았지만 결혼 10년 만에 늦둥이 둘째가 생긴 사실을 밝힌 이병헌. 아내 이민정은 내년 출산 예정이다.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이에 이병헌은 “한국 사회에서 아파트가 갖는 의미가 남다른데 폐허가 된 후 생존자들의 모순과 부조리를 조화롭게 녹여낸 연출력이야말로 세계적으로 통할 키워드”라고 든든한 지지를 보냈다. 사실 엄태화 감독과 이병헌의 인연은 과거 박찬욱 감독의 2004년 옴니버스 영화 ‘쓰리, 몬스터’로 거슬러 올라간다. 극 중 영화 감독으로 출연했던 이병헌은 연출부 막내였던 엄태화 감독을 정확히 기억한다.

상황과 배역이 세트장에서 시작하기에 실제 스태프들이 모두 출연해야 했던 중요한 신에서 무려 30번의 NG가 났던 예민한 순간이었다. 초긴장 상태에서 겨우 오케이가 나는가 싶더니 당시 붐마이크 담당이었던 엄태화 감독이 반복된 촬영으로 마이크를 거꾸로 잡고 있는 바람에 31번의 NG가 나게됐다.

“평생 트라우마라고 하소연하더라고요. 지금도 악몽을 꾸면 그 순간이 나온다고. 감독으로서의 꿈? 늘 연출과 연기를 동시에 하는 동료들이 부럽습니다. 계획도 없지만 능력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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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헌이 연기하는 영탁은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가장 극적이고 예민하지만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공감할 캐릭터로 손색이 없다.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이병헌은 ‘콘크리트 유토피아’에 대해 “솔직히 이 영화를 재난 영화라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에 대한 작품”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는 윤수일이 부른 ‘아파트’가 흐르며 아파트 주민들이 단체로 흥겹게 춤을 추는 신을 강력 추천했다. 콘티에서 봤을 때도 ‘우와’하고 감탄을 터트렸지만 완성된 장면을 보고는 “엄태화 감독님의 차기작이 기대된다”는 수줍은 고백을 내놨다.

곧 촬영이 들어갈 ‘오징어 게임2’에 대해선 “아시다시피 보안을 워낙 따지는 넷플릭스라 밝히지 말라는 미션이 들어왔다”면서 “황동혁 감독님이 다시는 TV시리즈를 안하신다더니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해 냈다”는 말로 기대감을 높였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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