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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더컬처] 뮤지컬 ‘와일드 그레이’ 정휘 “이게 사랑이야? 그럼 사랑이란 무엇일까…그 질문이면 충분해요”

입력 2023-08-1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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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와일드 그레이’ 알프레드 더글라스 역의 정휘(사진=이철준 기자)

 

“저는 ‘와일드 그레이’가 좋은데 보는 사람들은 뭐가 좋을까 그런 생각을 해봤어요. 플레이어로서 느끼는 것과 관객들이 느끼는 건 조금 다를 것 같은데 그걸 전 잘 모르잖아요. 저는 ‘와일드 그레이’를 하면서 받았던 질문이 그거였어요. 이게 사랑이야?”

뮤지컬 ‘와일드 그레이’(9월 3일까지 대학로아트원씨어터 1관)에서 알프레드 더글라스(Alfred Douglas), 일명 보시(Bosie)라 불리는 인물을 연기하는 정휘는 ‘사랑’을 강조했다.

뮤지컬 ‘와일드 그레이’는 뮤지컬 ‘난쟁이들’의 이지현 작가, ‘라흐마니노프’ ‘루드윅: 베토벤 더 피아노’ 등의 피아니스트이며 ‘미드나잇’ ‘오디너리데이즈’ ‘왕복서간’ 등의 작곡가이자 음악감독 이범재, ‘킹아더’ ‘검은사제들’ ‘록키호러쇼’ ‘호프’ ‘마마돈크라이’ 등의 오루피나 연출 등이 꾸려 2021년 초연됐고 두 번째 시즌이 공연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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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와일드 그레이’ 알프레드 더글라스 역의 정휘(사진제공=뉴프로덕션)

 

아름다움을 쫓는 유미주의 대표 인물로 ‘심연으로부터’ ‘살로메’ 등의 시인이자 극작가이며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을 쓴 소설가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 정민·박민성·김경수, 시즌합류·관람배우·가나다 순)와 그의 몰락을 부른 퀸즈베리 사건에 관련된 실존인물 알프레드 더글라스(정휘·김리현·윤석호·정재환) 그리고 와일드의 첫 동성 연인이자 현재의 사업파트너 로버트 로스(Robert Ross, 안지환·기세중·김지훈)의 이야기다.

“어쩌면 이 셋은 세상에서 인정하지 않은 사람들이었어요. 특히 보시(알프레드 더글라스)의 사랑 표현방식은 원론적이지도, 정상적이지도 않죠. 오스카 와일드는 아내와 아이 등 가족이 있고 전 애인과 현재 애인도 있어요. 로스도 그래요. 헤어졌지만 그렇질 못했죠.”

정휘의 설명처럼 극 중 오스카 와일드(이하 와일드)는 유명 작가로 여전히 전 연인 로버트 로스(이하 로스)와 비즈니스 파트너다. 그런 와일드가 아름다운 귀족 청년 알프레드 더글라스(이하 보시)를 만나 사랑에 빠지면서 세 사람의 기묘한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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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와일드 그레이’ 알프레드 더글라스 역의 정휘(사진=이철준 기자)

“저게 무슨 사랑이야? 저건 사랑이 아냐! 반문할 수도 있는 캐릭터들이죠. 그럼에도 저는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이게 사랑이 아니면 뭘까 고민하게 되는 작품인 것 같아요. 정상적이진 않지만 이들이 했던 게 사랑이 아니면 무엇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됐거든요. 그런 지점에서 저한테는 정말 좋은 작품이에요. 여전히 답을 내리진 못했지만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하고 질문을 던지거든요. 제 나이가 허락하는 한 계속 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 작품인 것 같아요.”



◇일주일에 한번 “아쉽지만 그만큼 더 열심히!”

 

“이런저런 사정으로 일주일에 한번 밖에 공연을 못하고 있지만 그만큼 더 열심히 하고 있어요. ‘와일드 그레이’를 한번 하고 나면 기운이 다 빠져버릴 정도죠. 그래선지 늘 재밌고 매번 새롭게 느껴져요. 무언가를 되게 열심히 하면 살아 있는 느낌을 받는데 요즘이 그래요.”


2021년 초연에 이어 재연에서도 보시로 무대에 오르고 있는 정휘는 “초연을 준비하면서 와일드의 ‘심연으로부터’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 등을 읽고 해석에 대해 고민하고 분석하고 파고들면서 더 깊게 빠져들었다”며 “그만큼 애정을 많이 쏟았던 작품이고 숨겨놓은 것도, 계속 공부할 것들도 많아서 찾아가는 재미를 느끼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보시를 표현하면서 가장 신경을 썼던 부분은 어려서부터의 교육을 통해 몸에 밴 영국 귀족들만의 문화, 그들만의 품위와 예의, 일반인들과는 다르다고 느끼는 약간의 우월감 등이었어요. 천박하거나 돈 많고 싸가지 없는 인물로 보이고 싶진 않아서 영국 귀족사회, 그 역사적 배경과 생활, 문화 등을 좀 많이 연구했던 것 같아요. 그들만의 우아한 모먼트들이 공연에서 보여지길 바랐죠.”

평범한 이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의 극한을 오가는 인물이지만 정휘는 “공감이 안되진 않았다”며 “처음 대본을 봤을 때도 사회성이 결여되고 자기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사람이지만 그 모습들이 조금 안쓰럽고 불쌍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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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와일드 그레이’ 공연장면. 알프레드 더글라스 역의 정휘(왼쪽)와 오스카 와일드 정민(사진제공=뉴프로덕션)

“사랑받지 못한 결핍으로 인해 악을 쓰며 소리를 질러요.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수단으로 강하게 나가는 건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의 특성 같아요. 영국 귀족, 그 중 최고인 퀸즈베리 가문이라는 환경들이 차곡차곡 쌓여 좀 더 극대화된 거죠.”

이어 정휘는 “사회적 잣대로만 보면 셋 중 좋은 사람은 없다. 그렇지만 개개인의 드라마를 봤을 때는 셋 다 안타깝다”며 “그 안타까움의 종류가 조금 다를 뿐”이라고 덧붙였다. 

 

“그 중 알프레드 더글라스는 스스로가 자신을 파괴하고 갉아먹어요. 건강하게 헤쳐 나가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고 외부의 눈도 신경 써야 하는 귀족집안 사람이고…사실 그가 집안에서 받은 건 학대잖아요. 그로 인한 결여와 결핍이 너무 커요. 그런 복잡한 감정들을 만들어내는 인물이라는 생각에 대본을 처음 봤을 때부터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배우로서 표현해보고 싶었고 너무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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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와일드 그레이’ 알프레드 더글라스 역의 정휘(사진=이철준 기자)

  

그리곤 “초연 때는 마음을 맞춰가며 다 같이 분석하고 만들면서 생기는 시너지가 즐거웠다면 이번엔 좀 더 상대방에 집중하고 싶었다”며 “무대 위에서 보시로서 하는 행동들에 상대방이 그때그때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모먼트들이 굉장히 즐겁다”고 말을 보탰다.

“초연 때보다 알프레드 더글라스라는 인물을 제가 훨씬 더 많이 품게 되더라고요. 초연 때는 좀더 신경질적이고 급박하게 감정들이 변하고 참고 있는 걸 폭발시켰다면 지금은 좀더 내면에 있는 것들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달까요. 왜 폭발했는지, 폭발하기까지의 과정들이 제 안에 좀더 채워진 느낌이에요.”

그래서 보시가 “더 안타깝다”는 정휘는 “폭발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차이가 좀더 깊어진 것도 같다. 이 친구가 왜 그렇게 힘들어 하고 바락거리는지에 좀더 이입하고 공감하 다보니 그 괴로움이 더 깊게 다가온다”고 부연했다. 

 

“그러다 보니 감각들이 조금 더 다이내믹해지고 표현이 좀 더 입체적이 되는 것 같아요.”


◇현실과 이상 사이 “우리 모두 그렇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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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와일드 그레이’ 알프레드 더글라스 역의 정휘(사진=이철준 기자)

“보시도 와일드의 관객으로만 남고 싶진 않았을 것 같아요. 그와 함께 예술의 세계로 뛰어들고 싶었고 와일드로 인해 삶도 좀 편안하고 싶었을 거예요. 정말 좋아하는 사람, 와일드와 함께 함으로서 더 이상 불안하고 겁에 질리는 뭔가를 마음 한편에 품고 사는 삶이 아니라 평안하게, 예술적인 교감을 나누며 살고 싶었을 거예요.”


극 중 보시는 함께 예술을 하고 싶어 하지만 와일드는 그를 “단 하나뿐인 관객”이라고 정의한다. 반면 로스는 와일드의 관객이고 싶어 하지만 예술 동업자로 남아야만 한다. 서로가 원하는 자리에 있는 서로를 질투하고 연민하는 보시와 로스의 관계 역시 기묘하기는 매한가지다.

“보시와 로스의 삶의 가치관, 예술적인 생각 등의 딱 가운데에 와일드가 있는 것 같아요. 보시는 너무 공격적이면서 어떤 것도 신경 쓰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라면 로스는 보수적인 사람이에요. 와일드의 현실은 로스를 따라야 하지만 마음은 보시에 있는 거죠. 항상 와일드 곁에 있는 둘은 실제 관계일 수도 있고 와일드의 현실적인 삶과 예술가로서 원하는 이상적인 본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어 정휘는 “현실을 사는 것과 원하는 것, 되게 다른 둘이 항상 곁에 있는 상황은 우리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며 “그래서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고 덧붙였다.

“우리도 하고 싶은 일과 해야하는 일 사이에 늘 존재하잖아요. 도저히 포기할 수 없을 정도로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해야할 일을 하면서도 마음은 거기에 가 있죠. 보시도 사랑하는 와일드와 두려움 없는 삶을 원했지만 결국 (와일드의 ‘막중한 풍기문란’ 죄를 가늠하는) 재판장에 나타나지 않잖아요. 끝까지 와일드와 함께 하지 못한 게 오히려 자신을 지키는 행동이었던 셈이죠.”

더불어 “모두가 신념을 지키면서 살기는 어렵다. 특히 보시는 신념 보다는 순간순간 살아남기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하는 사람”이라며 “할 수 있다고 했지만 막상 닥치니 살아온 환경, 귀족이라는 신분, 그로 인한 성격 등이 본능적으로 그걸(현실을) 놓을 수 없게 했을 것”이라고 말을 보탰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도망쳤지만 끝까지 함께 하자는 보시의 마음도 진심이었을 거라고 저는 생각해요. 계획된 행동이 아니라 보시에게는 최선의 선택이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건 보시 뿐 아니라 귀족이었던 로스, 유명 작가로 성공한 와일드도 마찬가지죠. 셋 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오가다 보니 얽히고설킨 관계가 돼 버렸어요. 그래서 셋 다 안타깝고 우리 삶을 잘 반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신랄한 비판과 분노, 후회와 원망…결국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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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와일드 그레이’ 알프레드 더글라스 역의 정휘(사진=이철준 기자)

 

“극 중 와일드는 한없이 보시를 사랑하고 그 사랑을 표현하죠. 하지만 연애할 때는 누구나 그렇잖아요. 끊임없이 사랑을 확인받고 싶어 하죠. 어떤 사람에게 집중하고 있을 때는 그 사람의 아주 작은 행동이나 말에도 되게 예민해지곤 하잖아요. ‘내가 뭘 잘못했나’ ‘방금 전까지 나를 사랑한다고 했는데 변한건가’…그런 생각들이 저(보시)는 되게 극대화돼 표현되는 거죠.”

극 중 와일드는 보시와 로스를 다른 방식으로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로스는 여전히 와일드 곁에 머물며 ‘희망고문’에 시달리고 때때로 보시를 도발한다. 이에 그렇지 않아도 두려움과 결핍에 잠식당한 보시는 불안을 떨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이 사람들의 환경과 배경, 성격 등이 극대화돼 극적으로 보여져서 그렇지 실제 세 사람의 삶도 그러지 않았을까 싶어요. (와일드, 보시, 로스) 이 사람들만의 특별한 문제 같지 않아요. 많은 사람들이 표현을 그렇게 하지 않을 뿐이지 연인이 싸우고 헤어지는 이유가 그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실제로 오스카 와일드가, 당시에는 금기였고 불법이었던 동성애로 추정되는 ‘막중한 풍기문란’이라는 죄명으로 감옥에 수감돼 알프레드 더글라스에게 쓴 글들을 엮은 ‘심연으로부터’는 그에 대한 신랄한 분노와 비판으로 가득 차 있다.

“정말 욕밖에 없어요. 진짜 너는 최악이다,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냐, 너 나한테 이런 말도 했고 이런 못된 짓도 했다…그걸 다 적어놨어요. 읽으면서 정말 놀랐죠. 그런데 더 놀라운 건 그 글에 보시에 대한 사랑이 정말 뚝뚝 흐른다는 거예요. 첫장부터 좋은 말들 없이 후회와 원망으로 가득 찼지만 그럼에도 당신을 놓을 수 없어, 이건 당신을 위해 쓴 글이라는 뉘앙스가 느껴졌죠. 너무 신기했어요. 그의 필력이 놀라웠고 그래서 와일드가 유명한 작가구나 싶었죠. 두 사람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랑으로 지금까지 빠지지 않고 꼽히는 이유 같기도 해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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