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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티브 시니어] 한국 화장실 변천사

<시니어 칼럼>

입력 2023-09-21 13:22 | 신문게재 2023-09-22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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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일 증명사진
정운일 명예기자

1970년대 혼수품으로 명기 요강을 가지고 시집을 갔다. 그만큼 화장실은 대문 밖에 있고 취약했다는 이야기다.


오늘날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은 호텔 같다고 말한다. 세계관광객들이 기분 좋게 볼일을 보고 엄지손가락 내밀며 한국 화장실 최고라고 극찬한다. 어릴 때 화장실을 돌이켜 보면 놀라운 변화다.

필자는 수원시 장안구 화장실 문화공원이에 들려 화장실의 변천사를 살펴보았다. 변을 보는 조형물이 익살스러워 웃음이 절로 나온다.

심재덕 전 수원시장은 화장실 문화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킨 분으로 세계화장실협회 창립을 기념해서 30여 년간 살던 집을 허물고 변기 모양의 집을 지어 해우재라고 했다. 해우재는 사찰의 해우소에서 비롯됐다.

해우재는 2007년 기네스북 한국기록원으로부터 가장 큰 화장실 조형물이라는 기록을 인정받아 국내외 주요 언론으로부터 주목받았다. 심재덕 사후 유족이 그의 뜻을 받들어 2009년 수원시에 기증했다. 수원시는 그 뜻을 기리기 위해 리모델링을 거쳐 수원시 화장실 문화 전시관으로 재탄생했다.

우리나라 농촌 화장실은 커다란 돌멩이 두 개를 양쪽에 놓고 대소변에 재를 뿌려서 처리하고, 소변도 오줌통에 받아서 거름으로 사용했다. 변을 보고 새끼줄에 문지르거나 다듬어진 막대로 닦았다고 한다.

도시에서도 바닥에 통을 묻은 후 송판이나 나무로 거치대를 설치해 대소변을 보고, 통이 차면 인부가 요금을 받고 퍼가는 날에는 온 동네가 냄새가 진동했다. 1961년 새마을운동으로 지붕개량, 길 넓히기, 변소개량, 부엌 개량이 시작됐다. 특히 변소개량은 마당 가까이에 시멘트벽돌로 쌓고 환기 굴뚝을 세웠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서울 거리에서 냄새가 풍기면 외국 손님들을 맞이하기 어렵다고 해서 수세식 화장실을 설치하기 시작해 많은 성과를 거뒀다.

역사적으로 백제 무왕 시대 왕궁리 공중화장실 터와 토기로 만든 용변기가 출토돼 당시 상황을 알 수 있다.

신라 귀족 여인이 노둣돌에 앉아 흐르는 물에 변을 본 것이 최초의 수세식 화장실이다.

우리 조상들은 뒷간에 귀신(측신)이 있다고 믿어 안채나 사랑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두고 밤늦게 화장실에 가는 것을 두려워했다. 뒷간에서 병을 얻거나 사고가 나는 것은 측신의 장난 때문이라고 믿고 고사를 지낼 때 뒷간을 빼놓지 않았다.

1970년대 명기 요강은 혼수품 중에서 첫째였다.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화장실 문화가 발전하여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화장실을 갖게 돼 자랑스럽다.

 

정운일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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