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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제 칼럼] 반(反)기업 정서는 ‘정서’의 문제인가

입력 2018-06-1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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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학
황인학 한국기업법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반기업 정서’라는 표현은 우리 주변의 경제 또는 사회 현상을 얼마나 적확하게 반영하는 용어일까?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면 알겠지만 이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2001년부터였다. 그 해 악센추어(Accenture) 보고서에서 한국인의 기업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사실이 알려진 후에 점차 사용되기 시작했다. 지금은 우리 국민의 기업가와 기업 활동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평가를 의미하는 용어로 언론뿐만 아니라 학술 논문에서 거리낌 없이 관용구처럼 쓰이고 있다.

잠시 화제를 돌리면, 기업가와 기업 활동에 대한 국민 일반의 인식과 태도는 그 나라의 기업가정신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들 중의 하나이다. 이 때문에 EC와 OECD에서는 각국의 기업가정신을 평가함에 있어서 기업가와 기업 활동에 대한 국민 일반의 인식과 태도를 주기적으로 조사해오고 있다. 그 결과를 보면 언제나 우리나라의 반기업 정서가 가장 높다. 글로벌 기업가정신개발원(GEDI)에서 해마다 조사, 발표하는 보고서에서도 결과는 마찬가지이다. 이처럼 누가 언제 조사를 해도 결과가 다르지 않자, 일부에서는 반기업 정서를 한국인의 경제관을 대표하는 특징으로 꼽는 경우도 있다.

경위야 어떻든 관용적으로는 반기업 정서라고 하지만 이는 정확한 용어가 아니다. 반기업 정서는 정서(情緖)보다는 인식(認識)과 판단(判斷)에 관한 문제이다. 정서와 인식은 확연히 다르다. 정서는 좋다거나 싫다거나 하는 감정의 작용이다. 인식은 사물을 분별하고 판단하여 알다는 뜻이고 감정의 작용 외에도 이념, 문화, 경험과 지식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반기업 정서는 인식의 문제를 감정이 문제의 전부인양 오도하기 때문에 적절한 용어라고 할 수 없다.

부정확한 용어를 사용하다 보면 때때로 상황 파악을 그르치는 경우가 있다. 우리나라 반기업 현상은 유난하기 때문에 당사자인 기업인들도 당연히 이 용어에 익숙하다. 이에 대해 기업인들은 기업이 사회와 국가발전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음에도 공(功)을 인정해주기는커녕 비판이 우세한 우리 현실에 안타까움과 억울함을 토로한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고, 배고픔은 참아도 배 아픔은 못 참는 정서와 문화의 특질을 원인으로 지목하면서 계몽운동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기도 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한편으로는 공허한 메아리처럼 들린다. 당사자인 기업인조차 부정확한 표현에 현혹되어 반기업 현상의 실체와 원인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활동(CSR)도 그렇다. 요즈음은 웬만한 중견기업도 CSR 부서를 두고 있다. 우리 회사가 돈만 열심히 버는 게 아니라 사회문제 해결에도 애 쓰는 ‘좋은 기업’이라는 평판을 얻고 싶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 CSR은 반기업 여론을 개선하는 유력한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러나 CSR의 실제 내용을 보면 회사 임직원의 봉사활동과 자선적 기부활동 등, 국민 정서에 기대어 환심을 사기 위한 사회공헌 사업이 대부분이다. 경제단체에서 펴낸 사회공헌백서에 의하면 우리나라 대기업의 GDP 대비 사회공헌활동 금액은 꾸준히 증가해왔다. 따라서 반기업 현상이 정말로 100% 정서의 문제였다면 CSR 활동이 증가한 만큼 감소해야 했다. 현실은 반대이다. 감소하기는커녕 반기업 여론의 수위가 턱 밑까지 차오르고 급기야는 시장경제질서의 근간마저 위협하는 상황이 되었다. 무엇이 문제일까?

기업인들이 진실로 반기업 현상이 개선되기를 원한다면 지금이라도 그 실체와 원인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에 걸맞은 대응전략을 강구, 실천해야 한다. 정서에 기대어 사회공헌활동에 주력하는 것은 비용 대비 효과가 낮다. 몇 가지 제언을 하면 첫째, 반기업 현상은 정서와는 별도로 지식의 문제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갈파해야 한다. 필자가 2016년「규제연구」 논문에서 밝힌 바와 같이 시장원리를 이해하고 경제 IQ가 높을수록 기업 및 기업인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이다. 예를 들면 가격이 교환가치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는 사람은 가격이 사용가치에 의해 결정된다거나 또는 투입 원가에 비례해서 결정되는 게 공정하다고 믿는 사람에 비해 반기업 인식이 낮다. 또한 우리나라는 주요 경쟁국에 비해 대기업 밀도는 낮고 중소기업 밀도는 높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일수록 친기업 성향을 보인다. 전체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 국민은 평균 학령은 높지만 그에 비해 경제 IQ는 낮은 편이다. 따라서 기왕에 CSR을 함에 있어서 기업들은 자사와 협력업체의 임직원, 더 나아가 사업장이 속해 있는 지역사회의 경제 IQ를 높이는 일에도 관심을 갖고 투자에 나서야 한다.

둘째, 준법 경영은 필수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ISO 19600(준법경영시스템), ISO 37001(뇌물방지경영시스템)을 도입해서 실천하는 것도 대안일 수 있다. 그러나 기업 활동의 신뢰를 높이려면 준법경영은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세간의 이목을 끄는 중요한 경영의사결정은 준법(遵法)을 넘어 합당성(合當性)까지 감안해서 신중하게 결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2017년 에델만 신뢰도 지표(Edelman trust barometer)에서 우리나라 국민이 기업을 신뢰한다는 응답은 29%에 불과하며 비교대상 국가 중 최저 수준이다. 기업 불신은 기업인이 자초한 측면이 있다. 예컨대 경영권 승계나 소유지배구조 재편 과정에서 현행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해서 지배주주와 그 가족의 이익을 지나치게 추구하는 것은 기업인과 기업집단에 대한 불신을 키우는 주범이다. 1996년 중앙개발이 전환사채의 발행과 배정을 통해 최대주주를 변경한 것은 그 당시로서는 불법이 아니었지만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씻기지 않은 원죄로 작용하고 있음을 반면교사(反面敎師) 삼아야 한다.

셋째, 자신의 역할을 남에게 떠넘기고 무임승차 하려 해서는 안 된다. 반기업 인식이 개선되지 않으면 기업하기 좋은 환경, 규제개혁은 요원하다. 반기업 여론은 규제 아이디어를 싹 틔우고 정치인은 여기에 편승해 규제를 제도화한다. 여론이 틀려도 정치인은 추종한다. 반기업 여론에 편승해서 규제를 잘못하거나 또는 반대로 규제개혁을 게을리하면 국민경제적으로 엄청난 기회비용(opportunity costs)을 지불해야 하지만 불행히도 정치인에게 기회비용은 무용한 개념이다. 기업이 대관 팀을 아무리 크게 꾸려 대처해도 반기업 여론이 계속되는 한, 규제범람의 물결을 막을 수 없다. 이제는 기업인들이 중지를 모아 반기업 현상에 지속적으로, 체계적으로 대응하는 공동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1970년대 초 오일 쇼크 여파로 미국에서 반기업 여론이 확산되자, 쿠어스(Joseph Coors) 같은 기업인이 앞장서 만든 게 헤리티지 재단(Heritage Foundation, 1973)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반기업적 인식과 태도가 기업의 지속발전과 시장경제질서의 근간을 위협하고 있는 상황임을 감안할 때 더 늦기 전에 기업인들이 앞장서 이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

황인학(한국기업법연구소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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