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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제 칼럼] 대학입시에서도 ‘국가주의’를 폐기해야

입력 2018-08-2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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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섭사진(201808) (1)
신중섭 강원대 윤리교육과교수

교육부가 먼 길을 돌아 현재 중학교 3학년 학생이 치를 ‘2022학년도 대학입시 개편안’을 발표했다.

교육부는 수능 위주 전형과 내신 위주 전형 비율이 모두 30%에 미치지 못하는 대학을 재정 지원과 연계해, 60여개 대학에 총 500억 원 이상 지원하는 ‘고교교육 정상화 기여 대학’ 선정에 응모할 수 없도록 했다. 대학입시를 대학 재정 지원과 연결시킨 것이다. 여기에 해당하는 대학은 전국 4년제 197개 대학 가운데 35곳이며, 서울대ㆍ연세대ㆍ고려대ㆍ성균관대 등 대부분의 서울 소재 대학이 해당된다.

국가교육회의 대입제도개편공론화위원회가 2022학년도 대입제도개편안을 결정하지 못해, 8월 7일 국가교육회의는 교육부에 2022학년도 대학입시에서 정시모집의 수능위주 선발비율을 현행보다 확대할 것 등 몇 가지를 권고했다. 그동안 교육부는 시민의 의견을 존중한다면서 자신이 해야 할 결정을 위원회에 넘겼지만, 위원회의 결정적인 도움을 받지 못하고, 스스로 8월 17일에 2022학년도 대입 개편안을 발표하였다. “결정해주면 그대로 따르겠다.”던 교육부가 스스로 결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동안 교육부의 대학 입시 개편 과정에 대해 이런 저런 비판이 쏟아졌다. 대입 개편처럼 복잡한 교육 정책의 결정을 일반시민들로 구성된 공론화위원회가 결정하도록 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었다는 지적도 있다.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리는 입시 문제를 ‘인기투표’ 방식으로 결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비판도 나왔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교육부의 ‘결정 장애’가 아니라 현 정부가 교육 ‘국가주의’에 빠졌다는 것이다.

정치학에서 국가주의(statism)는 국가가 경제 또는 사회 정책 가운데 하나 또는 모두를 어느 정도 통제해야 한다는 믿음을 의미한다. 국가주의는 최소국가주의에서부터 전체주의까지를 포괄한다. 국가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것을 국가주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야당 정치권에서는 국가주의를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하여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데 사용하였다. 이 글에서는 정부가 개입하지 말아야 할 부분에 개입하는 것을 ‘국가주의’로 명명함으로써 ‘국가주의’를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정부의 행위를 지칭하는 개념으로 사용하였다.

국가 권력과 개인의 자율이 항상 대립할 수밖에 없다고 보면 아나키스트가 된다. 그러나 개인의 자율은 개인 스스로의 노력만으로 확보될 수 없는 현실을 고려하면 개인의 자율을 보호해줄 다른 장치가 필요하다. 우리는 개인의 자율을 보호하기 위해 국가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제한적인 정부 또는 최소한의 정부를 인정해야 한다. 따라서 ‘국가주의’의 개념을 한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국가주의’를 중립적으로 사용하여 필요한 부분에 국가가 개입하는 것을 모두 국가주의에 포함시킨다면 국가주의 논쟁은 무의미하다.

따라서 국가가 ‘개입해야 할 부분’과 ‘개입하지 말아야 할 부분’을 구분하고 ‘개입하지 말아야 할 부분에 개입하는 것’을 ‘국가주의’라 부른다면 ‘국가주의’는 일정한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개입해야 할 부분’과 ‘개입하지 말아야 할 부분’의 경계에 대한 판단이 개인이나 집단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어떤 정부의 정책이나 행위를 두고 ‘국가주의’로 볼 것인가 아닌가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국가주의’를 사용하는 개개인의 경우를 보고, 그가 국가의 영역과 자율의 영역을 어떻게 구분하고 있는가를 추론할 수 있다. 곧 그의 이념적 지향성을 추측할 수 있다.

그런데 국가주의의 시원은 어디일까? 왜 정치인들은 국가가 ‘개입하지 말아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영역까지 개입하려는 ‘국가주의’에 빠지는 것일까? 정치인들이 ‘국가주의’에 빠지는 원인은 존재하는 현실을 바로잡으려는 의욕 때문이다. 불완전한 인간들이 모여 살면서 생기는 여러 문제들을 바로잡으려는 의욕이 ‘국가주의’의 근원이다. 세상은 공정해야 하는데 공정하지 못하고, 정의로워야 하는데 정의롭지 못하다는 생각, 이를 바로잡아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려는 의욕이 바로 ‘국가주의’의 출발점이다.

 



현 정부의 교육정책, 대학입학 정책이 이렇게 혼란에 빠진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각 대학에는 대학들이 역사와 전통 속에서 설정한 목적이 있고, 학생들은 자신의 목적에 따라 대학을 선택한다. 그런데 정부가 자신들이 설정한 정의와 공정과 같은 기준에 따라 대학입시 전형방법을 설정하고, 그것을 국가권력을 사용하여 강제로 실행하려고 하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국가주의’가 대학을 억누르게 된다. 특히 ‘공정’을 실현하려는 의욕이 넘치는 현 정부는 대학입시에서도 공정을 실현해야 한다고 믿는다.

대학입시가 ‘금수저’에게 유리하고 ‘흙수저’에게 불리해서는 안 된다는 신념에 사로잡혀 있다. 그들은 사교육이 아니라 공교육, 자사고ㆍ특목고가 아니라 일반고가 특권층이 아니라 서민층을 위한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금수저들을 위한 자사고ㆍ특목고를 없애고, 공교육을 정상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학입시가 금수저들에게 유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대학입시를 검토하고 서민층에게 유리한 입시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어떤 제도가 서민층에게 유리한지가 선명하게 부각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정시와 수시 가운데 어느 것이 서민층에게 유리한지가 분명하지 않다. ‘정시는 사교육과 금수저에게 유리하고 수시는 공교육 정상화로 가는 길’이면 수시를 확대하고 정시를 없애거나 축소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아 보이기도 한다. 수시가 금수저에게 유리하고 흙수저에게 불리해보이기도 한다. 현실적으로 어느 제도가 금수저에게 불리하고 흙수저에게 유리한지를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현 정부의 대학 입시 정책이 혼란에 빠진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흙수저에게 유리한 대학입시가 공정하고, 금수저에게 유리한 대학입시가 불공정한 것은 아니다. 흙수저나 금수저 모두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하지 않은 입시제도가 공정한 입시제도다.

문제는 정시가 옳은가 수시가 옳은가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입시제도는 누구에게 유리한가로 정할 문제가 아니다. 뿐만 아니라 어떤 입시제도를 정부가 택하든, 그것을 정해 모든 대학에 강제하면 정부는 ‘국가주의’로 빠진다. 4가지 대안 가운데 공론화위원회가 만장일치로 하나를 결정하고 그것을 교육부가 대학에 강제하면 그것도 ‘국가주의’다. 현 정부의 문제는 대학입시를 대학에게 강제하려는데 있는 것이지, 특정 정책을 강제하려는데 있는 것이 아니다.

이번 혼란을 계기로 우리는 대학 교육을 근본에서부터 반성해 보아야 한다. 대학 교육의 목적은 학생의 창의력을 키우는 것, 지성적 능력을 키우는 것,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것, 덕스러운 인간을 양성하는 것 등 다양하다. 이런 다양한 목적은 국가주도의 교육으로는 달성될 수 없다. 모든 대학의 교육 목표가 동일해야 할 이유도 없다.

교육부는 “융합적 사고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인재가 필요하다”는 ‘사회적 요구’와 ‘창의융합형 인재상’을 추구하는 ‘2015년 교육과정’에 부합하기 위해 대학 입학 제도를 바꾸었다고 하지만, 고등학교나 대학교의 교육목표를 교육부가 일방적으로 정할 문제는 아니다. 더구나 교육부가 어떤 입시제도가 이러한 교육목표를 실현하는 데 적합한가를 결정할 주체가 되어서도 안 된다. 대학입시와 대학교육에 국가가 개입하면 강제성과 획일성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존속하고 있는 대학 입학에서의 3불 정책은 전형적인 ‘국가주의’ 교육정책이다. 뿐만 아니라 정부가 강하게 개입하고 있는 대학 공납금 정책도 ‘국가주의’의 일환이다. 교육에서 어디까지를 ‘국가주의’로 볼 것인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입장이 있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대학교육에서는 국가가 물러나야 한다.

현재와 같이 정부가 대학입학 정책을 결정하고 대학에 강제하는 것은 명백한 국가주의다. 이제 대학 교육에서 국가주의를 폐기해야 한다. 현 정부는 대학에서의 국가주의를 적폐청산의 목록에 올려야 한다.
 

신중섭 강원대 윤리교육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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