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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미선 기자의 컬처스케이프] ‘리어’ 배삼식 작가 “비언어적 표현들을 기대하며 ‘구름의 묘비’까지!

입력 2022-02-25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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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창극단 ‘리어’의 배삼식 작가(사진=이철준 기자)

 

“창극이다 보니 텍스트는 재료이고 음악이란 틀 속에서 어떻게 풀어내느냐가 중요한 작품이에요. 제가 써놓은 것 보다는 말 없는 장면들이 많이 나오면 좋겠어요. 그런 순간들이 만들어지길 바라면서 글을 쓰거든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을 노자의 철학, 물의 이미지로 풀어내는 창극 ‘리어’(3월 17~27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의 배삼식 작가는 “가장 중요한 ‘리어’의 장면들은 말로 할 수 없는 것들”이라며 “그 순간 배우들의 표현, 신체적 움직임과 물의 이미지 표현 그리고 음악에 기댄 비언어적 표현들이 대단히 중요해서 기대 중”이라고 털어놓았다.

“말로 다 할 수 없어서 시작하는 게 노래거든요. 말로는 더 이상 표현할 수 없거나 말 너머에 있는, 말로는 다 담기지 않을 만큼 감정이 차오를 때 터져나오는 게 노래잖아요. 셰익스피어 작품의 힘들을 아름다운 음악적 형식 속에서 풀어내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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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극 ‘리어’ 리어왕 역의 젊은 소리꾼 김준수(사진제공=국립극장)
배삼식 작가가 “기대 중”이라는 그 비언어적 표현들은 안무가이기도 한 정영두 연출, 한승석 작창·음악감독, ‘기생충’ ‘오징어게임’ 등의 정재일 작곡가, 이태섭 무대디자이너 등 베테랑 크리에이터들에 의해 무대 위에 펼쳐진다.


◇젊은 소리꾼 김준수의 리어, 변화맞는 에드워드와 거너릴·리건

“잘해낼 거라고 생각해요. (김)준수 배우에게 얘기한 건 ‘노역을 하려고 애쓰지 말라’였어요. 그게 중요한 게 아니거든요. 노인 흉내 보다 중요한 건 뿌연 상태의 어리석은 노인네가 자신에게 닥쳐온 것들에 천천히 타격을 입으면서도 맞서 싸우고 상처를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다 결국 놓쳐버리는 과정을 보여주는 거니까요.“

보통은 장년 혹은 노년의 배우가 연기하던 리어왕을 30대의 젊은 소리꾼 김준수가 연기하는 데 대해 이렇게 의견을 밝힌 배삼식 작가는 “오래 묵은 노래를 계속 불러왔으니 잘 해낼 거라 믿는다”며 “캐릭터에 짓눌리지 않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코딜리어(민은경)가 마냥 선하거나 거너릴(이소연)과 리건(왕윤정)이 그냥 포악하고 악독한 사람은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극단적인 인간관계들을 다르게 표현한 부분도 있습니다. ‘리어’는 다가오는 새로운 세대와 낡은 세대 사이의 투쟁이기도 하거든요. 그런 측면에서 거너릴과 리건도 충분히 이해가 돼요.”

그리곤 “현대적으로 볼 때 서자이면서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에드먼드(김수인)도 대단히 매럭적인 캐릭터”라며 “에드먼드의 형상도 그냥 비열하고 악한 인물이기 보다는 분노한 지금 2, 30대의 화신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의미에서는 참 애틋한 인물”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런 에드먼드와 거너릴·리건 자매의 치정에 대해 배삼식 작가는 “이 이야기가 제일 아쉽다. 세 사람 사랑이야기만으로도 한 작품을 쓸 수 있을 정도”라고 말을 보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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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극 ‘리어’에서 변주될 거너릴 역의 이소연(왼쪽부터), 에드먼드 김수인, 리건 왕윤정(사진제공=국립극장)

 

“사실 멀쩡한 나라를 셋으로 쪼개 준다는 자체가 미친 짓이에요. 똑같이 나눈다고 나누는데 똑같아서 싸움이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거든요. 단순히 거너릴과 리건이 욕심이 많아서가 아니라 목숨이 달린 분쟁이죠. 게다가 그 분쟁에 나서야하는 거너릴과 리건 곁에는 무골충 같은 올버니와 멧돼지처럼 대단히 사나운 콘월이 있어요.”

 

이어 “그런 둘 앞에 일종의 마키아벨리즘의 화신 같은 에드먼드가 나타났을 때는 빠져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거너릴은 본능적으로 에드먼드의 숨긴 발톱을 보고 ‘이 험한 세상을 함께 건너갈 사람’으로 인지했을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그간은 자매가 한 대상을 원하게 되는 순간이 부각되는 경우가 거의 없어요. 죽음도 허망하죠. 그래서 새로운 장면을 넣었어요. 자신이 사랑하고 욕망하는 에드먼드가 리건 곁에 있는 상태가 길어지면 고착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거너릴이 자객을 보내 리건을 죽이는 장면이 새로 생겼어요. 그 죽음을 코딜리어에게 미루면서 마지막 싸움이 벌어지죠.”

에드워드를 둘러싼 자매의 치정극은 결국 모두의 죽음으로 끝을 맺는다. 마치 해일이 밀려와 모든 것을 쓸어버리는 것처럼. 이에 대해 배삼식 작가는 “현실에서는 끝이 없지만 이야기는 마무리를 해야 하니 그 일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운 자가 들어오는 경우가 있다. ‘리어’에서는 올버니가 그렇다”고 귀띔했다. 

 

배삼식 작가
국립창극단 ‘리어’의 배삼식 작가(사진=이철준 기자)
“올버니가 ‘어디 가서 초막 짓고 연못의 금붕어, 새 키우면서 살고 싶은데 세상이 가만 두지를 않는다’면서 맨 마지막에 ‘귀거래 귀거래’를 읊고 미소를 지으면서 나오게 하려고 해요. 리어 일족은 죽고 결국 가장 욕심 없던 올버니가 권력을 계승하게 되죠.”


◇물로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첫 장면과 마지막 ‘구름의 묘비’

“기대 장면은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이에요. 첫 장면은 리어가 아무 것도 잃지 않으려고 잔머리를 굴리고 오랜 고심 끝에, 제 딴에는 가장 현명한 혹은 자신이 짜낼 수 있는 지혜를 최대한 쥐어짜낸 결정이거든요.”

이렇게 설명한 배삼식 작가는 가장 기대하는 장면으로는 마지막을 꼽았다. 쪽배에 실린 리어와 코딜리어의 주검이 고요하게 흘러내려가는 이 장면에는 20톤 가량의 물이 실제로 무대에 동원될 예정이다. 이에 대해 배 작가는 “물과 노래와 무용으로 보여주는 물의 이미지”라며 “정리하는 의미의 마지막 노래”라고 전했다.

“삼각주를 이루면서 바다로 고요히 흘러 들어가는, 적막한 상태의 바다. 그 위에 물들이 넋처럼 피어나서 하늘가에 구름이 흐르고 있는 장면을 묘사하는 노래로 ‘구름의 묘비’라는 말이 맨 마지막에 나와요.”

그리곤 “저 먼 골짜기에서 조잘조잘 깨어나는 개울이, 때로는 재잘재잘 노래하고 어떤 때는 조용히 울기도 하고 웃다가 소리치고 싸우고 부서지고 뛰어내리면서 물이 흘러가는 모양이 인간의 삶을 닮았다”고 덧붙였다.

“깊은 땅속부터 흘러나와 맨 마지막에 이르는 바다의 적막까지. 어쩌면 그 노래는 쓰고 나서 생각해보니 본질적으로는 ‘맥베스’ 5막 5장의 ‘투모로우, 앤 투모로우, 앤 투모로우’(Tomorrow, and Tomorrow, and Tomorrow)로 시작하는 대사의 변주같기도 해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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