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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지 칼럼] 폭력을 막으려면

입력 2023-01-05 14:08 | 신문게재 2023-01-06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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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미경 예담심리상담센터 대표·교육학 박사

얼마 전 가족상담 프로그램인 MBC ‘결혼지옥’이 아동 성추행으로 논란을 빚으며 시청자들로부터 냉소와 비난을 받았다. 7세 자녀와 몸으로 놀아주겠다던 계부가 딸이 싫다고 외치는데도 같은 행동을 지속하는 방송장면 때문이다. 모친은 이런 남편의 행동을 만류했고 전문가는 아이가 싫어하는 신체적 접촉은 하지 말아야 함을 조언했다. 시청자들은 부친의 행동이 아이를 괴롭히는 수준이었다고 체감했고 이에 대한 방송사의 현실적인 대처가 부족했다 여기며 분노했다.

폭력에 대한 대중의 감수성과 의식이 높아지는 것은 고무적이다. 민감해져야 잘 알아차릴 수 있고 변화와 예방이 가능한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이쯤에서 짚고 갈 것은 알아차린 다음에 행해지는 실제적인 반응과 대처다. 움직임은 있는데 무용지물일 경우는 필요한 대처라고 보기 어렵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말과 행동에 대해 ‘나는 이러려고 했다’는 의도에만 초점을 맞춘 채 피상적으로 흐르게 놔둔다. 방송에 등장한 모친의 경우도 그렇다.

방송에서 아내는 아이가 싫어하는 것을 알고 남편을 만류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남편이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내는 남편을 말로 말리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남편의 행위를 멈추게 하거나 남편이 아이에게 떨어지도록 해야 한다. 어느 쪽으로든 아이가 싫어하는 신체접촉 상황을 종료시켜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보호자로서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다. 어쩌면 남편의 행동을 막을 만큼 대수로운 일은 아니라고 여기거나 남편을 기분 상하게 할까 부담을 느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생각들은 아이를 보호하기 위한 단호한 행동들을 방해하며 문제가 되는 상황을 대충 넘기게 만든다.

폭력에 대한 대처행동 중 또 하나는 오은영 박사에게 쏟아진 비난내용의 하나였던 신고의무다. 학대신고는 너무나 당연하고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막상 누군가를 범죄자로 신고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아이들을 가장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는 교사나 상담사, 의사 등을 신고의무자로 규정하고 역할의 적극성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상대가 나와 직간접으로 안면이 있거나 자신에게 어떤 피해 발생 우려가 예상된다면 망설이게 되는 게 사실이다.

필자가 만난 어느 교사는 자기 반에 심각한 수준의 학대아동이 있었으나 학교 눈치만 보며 차일피일 신고를 미루고 있었다. 아동학대 발생이 부담스러운 학교장이 부모 면담을 통해 실상을 파악하고 방법을 모색하자는데 자기 혼자 서두르며 미운 털이 박히면 학교생활을 어떻게 하냐는 입장이었다. 물론 학교에 속한 근로자로서 책임자 눈 밖에 나는 일을 수행하기란 쉽지 않다. 분명한 건 어른들의 부족한 용기와 편협한 이기심이 아이들을 계속 멍들게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루하루 가슴 졸이며 귀가하는 그 아이도 그랬다.

이제 우리는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 것이 곧 폭력이고 범죄임을 제3자 입장에서는 민감하게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런데 막상 내 앞에 그런 일이 벌어지면 전혀 다르게 반응한다. 방송 제작진은 출연자를 섭외해놓고 성추행으로 바라보기엔 사안이 복잡해질 수 있다 여겨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필자가 만난 교사와 다를 바 없다. 자기입장을 앞세우는 이 같은 태도는 폭력이나 학대가 그들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서 나온다. 폭력은 아는 것만으로 줄어들지 않는다. 안전한 자리에서의 조언과 만류 역시 그렇다. 필요한 건 불이익을 감수하며 실천하는 용단이다.

 

안미경 예담심리상담센터 대표·교육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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