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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탐구생활] 2236명이 불러온 ‘보호출산제’… “출생아동 알권리는 어디에”

입력 2023-07-30 12:56 | 신문게재 2023-07-31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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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미등록 아동
(사진=연합)

 

2236명. 지난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의료기관에서 출산 후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출생 미신고 아동’의 수다. 이 숫자는 감사원이 보건복지부를 대상으로 실시한 정기감사에서 확인한 것으로 이른바 ‘유령아동’의 규모를 간접적으로 밝혀냈다.

감사원은 2236명 중 위험도가 높은 23명을 집중 조사한 결과, 최소 3명의 아동이 숨지고 1명은 유기가 의심된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감사원의 발표가 끝나자 수원을 비롯한 전국에서 영아 유기·살해 사건이 잇따라 발생했다. 감사원이 경고가 확인된 셈이다.

이후 정부는 출생 직후 의료기관서 B형간염 예방접종을 위해 ‘임시 신생아 번호’를 부여받은 영유아 2123명을 전수조사하겠다고 밝혔다. 그 결과 생존이 확인된 아동은 1025명(48.3%)으로 전체 아동 중 절반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확인됐다. 사망이 확인된 아동은 249명(11.7%)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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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서 출발한 ‘출생 미신고 아동’… 출산통보제로 도착

이런 사실이 확인되면서 출생신고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기존에는 병원에서 출산행위가 이뤄져도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으면 국가가 이를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출생신고를 한 달 내에 하지 않으면 과태료 5만원이 부과된다는 처벌규정이 있지만 이마저도 부모가 먼저 출생 미등록 사실을 스스로 밝혀야만 처벌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유명무실이란 비판을 받았다.

이에 국회에서 먼저 이러한 출생 사각지대 문제를 정비하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지난달 29일 의료기관이 출생신고 의무를 지도록 하는 ‘출생통보제’ 도입을 위한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어 30일에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는 ‘출생통보제’가 담긴 ‘가족관계 등록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재적 267명 중 찬성 266표, 기권 1표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통과됐다. 법안은 공포일로부터 1년 후부터 시행된다.

이에 따라 앞으로 의료기관장은 신생아 출생일로부터 14일 이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출생정보를 통보해야 한다. 시·읍·면장은 출생일로부터 한 달 이내 출생신고가 되지 않으면 모친 등 신고 의무자에게 7일 이내에 출생신고를 하도록 통지하고 이후에도 신고가 되지 않으면 법원 허가를 받아 직권으로 출생신고를 할 수 있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 교수는 “출생통보제가 국회를 통과한 것은 아동의 권리보장 차원에서 바람직한 출발이라고 볼 수 있다”면서 “그러나 이것은 필요조건 중 하나로 보호출산제와 같이 가지 않으면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유령 아동 맡겨졌을 베이비박스<YONHAP NO-1923>
서울 관악구 주사랑공동체교회에서 운영 중인 베이비박스 내부 공간의 모습 (사진=연합)

◇‘보호출산제’ 논의 시작… “익명으로 출산할 수 있도록”

‘출생통보제’가 국회를 통과하면서 ‘보호출산제’ 입법도 물살을 타고 있다. ‘보호출산제’란 미혼모나 미성년자 임산부 등 사회·경제적 위기에 처한 산모가 신원을 숨기고 익명으로 출산해도 정부가 아동의 출생신고를 할 수 있도록 돕는 제도다.

다시 말해 ‘출생통보제’가 병원에서 출산되는 아동의 출생신고를 의무화한다면 ‘보호출산제’는 병원 밖에서 출산되는 아동의 출생신고를 보장한다. 전문가들은 이 두 법안이 시행돼야 이른바 ‘유령아동’을 막을 수 있다고 보고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위기 임산부가 ‘보호출산제’를 통해 병원에 익명으로 아기를 낳아 양육을 포기하는 것을 돕는 것 보다 위기 임산부도 안정적으로 양육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먼저라고 지적한다.

오영나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대표는 “이번 전수조사에서 사망 아동의 경위가 보도된 사례 가운데 최소 2건은 기본적인 상담만 됐어도 상황을 극복할 수 있었던 사례로 보인다”며 ”준비 되지 않는 출산과 임신에 대비할 수 있게 위기임산부에 다양한 지원 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조사관은 “‘유령아동’이 촉발한 보호출산제는 위기임산부가 의료기관을 회피하지 않을 방법을 마련하고, 양육을 포기하는 산모의 아기를 안전하고 따뜻하게 품어 안으면서도, 산모의 양육 포기가 강요된 선택이어서는 안 되는 사회적 여건을 동시적으로 마련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고 봤다.

정부도 이런 의견을 받아들여 병원 밖 출산 위험이 높은 위기임산부 지원을 위한 정책을 다각도로 추진하고 있다. 정부는 위기 임산부 지원을 위한 추진단을 꾸려 조만간 범부처 차원의 대책을 발표하겠다는 계획이다.


◇산모 정보 완전한 익명으로… “출생아동 알권리는 어디에”

‘보호출산제’를 바라보는 또 다른 시각은 출생아동의 알권리다. 유엔아동권리협약에는 ‘아동은 출생 후 즉시 등록돼야 하며 가능한 한 자기 부모를 알고 부모에 의해 양육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보호출산제’는 완전한 익명을 전제로 한다. ‘보호출산제’로 태어난 아동이 10년 후 자기 뿌리를 찾고 싶어도 의료기관은 물론 지자체에 부모의 정보가 하나도 남지 않는다는 뜻이다.

김지연 복지부 아동복지정책과장은 “현재 논의되는 법안은 산모의 정보를 완전한 익명으로 처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예를 들어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대체하는 대체번호를 부여하게 되어 있다. 완전한 익명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보호출산제’로 아이를 낳은 산모가 입양을 포기할 권리를 줘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허 조사관은 “보호출산제가 도입되면 그 아동은 출생 직후 분리돼 곧바로 입양되는 지가 가장 우려스러운 부분”이라며 “익명 출산제도를 활용할 수 있지만 그 의사를 번복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일례로 프랑스는 위기 임산부가 익명 출산제도를 활용해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직접 양육할지 고민하는 시간이 6개월간 주어진다. 이때 아이를 직접 양육하기로 결정하게 되면 어떠한 공식 절차 없이 아이를 되돌려받는다. 독일에서는 8주의 기간을 준다.

정 교수는 “출생통보제와 보호출산제라는 정책이 병행되면서 임산부가 낙태 또는 출산을 선택할 수 있는 사회서비스가 조성돼야 한다”며 “또 출산에서도 익명을 두고 두 가지 방법이 존재한다. 사실 우리는 아주 일부만을 이야기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깊이 있는 논의가 더 진행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종=이정아 기자 hellofeliz@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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