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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희망의 소리 선물하는 달팽이, 더불어 사는 세상 만들어가요"

[열정으로 사는 사람들] 조영운 사랑의달팽이 사무국장

입력 2017-12-18 07:00 | 신문게재 2017-12-18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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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사랑의달팽이 수석부회장으로 활동하고 계신 오준 전 유엔대사가 강연에서 이런 말을 하시더군요. ‘사람은 누구나 삶의 어느 시점에서 장애인이 된다. 단지 사람마다 그 시점과 기간이 다를 뿐’이라고요. 누구나 그 시점에서 사회생활을 하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책임이자 장애인이 갖는 사회적 권리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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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운 사랑의달팽이 사무국장이 브릿지경제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사진=사랑의달팽이)

 

사랑의달팽이는 듣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소리를 찾아주는 사회복지단체다. 청각장애인이 듣고 말할 수 있도록 인공달팽이관 수술 및 보청기를 지원하고, 이들의 사회적응 지원과 일반 대중들의 인식개선 교육을 수행한다.

지난 2000년 두 명의 어린이에게 인공달팽이관 수술을 지원한 것을 시작으로 2007년 사단법인으로 발족해 지금까지 700명에 달하는 청각장애인들에게 소리를 선물해왔다.

조영운(47·사진) 사무국장은 지난 10년간 사랑의달팽이와 함께하며 살림꾼 역할을 도맡아 왔다. 10년의 세월을 청각장애인 지원 사업에 몸 바치는 게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닐터. 일반 기업에서 근무하며 평범한 삶을 살아가던 그가 누군가를 위한 길을 선택하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딸이 하나 있는데 돌 무렵에 아주 큰 수술을 한 적이 있습니다. 집사람은 두 달간 울기만 했고 힘든 내색을 할 수 없었던 저는 스트레스성 신우염으로 딸 수술 날을 앞두고 입원하기도 했죠. 경험해 보지 않았다면 그 심정을 헤아릴 수 있을까요. 인공달팽이관 수술을 받는 아이들도 대부분 제 딸 또래입니다. 비슷한 경험을 해본 처지라 감히 남들보다는 그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더 잘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당시만 해도 사랑의달팽이의 유일한 직원이었던 조 사무국장은 혼자서 모든 사업을 도맡아왔다. 지금은 사업부를 총괄하며 대외업무를 담당하지만, 아직까지 열악한 환경에 부족한 손을 거드는 일이 잦다. 그는 “저희 직원들 모두가 복지사며 홍보맨이자 모금가”라며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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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달팽이는 2000년 첫 수술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약 650여명에게 인공달팽이관 수술을 지원했다.(사진=사랑의달팽이)

 

모두가 숨 가쁘게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지만 소규모 사회복지단체가 지니는 애로사항도 만만치 않다.

“주변에서 ‘좋은 일을 하셔서 좋겠다’는 말을 종종 듣습니다. 물론, 이 일을 통해 얻게 되는 보람은 저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줍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소규모 사회복지단체가 그렇듯 사랑의달팽이 역시 정부의 도움 없이 기업 및 개인 후원금에 의존해 운영하다 보니 소수의 인원이 수많은 업무를 담당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입니다.”

항상 후원자와 지원을 받은 대상자의 마음을 잘 헤아리며 결례나 상처가 되지 않도록 고민하지만 자칫 중간에서 곤혹스러운 일이 생기기도 한다. 쉴 틈 없이 몰려오는 업무에, 일에서 소소하게 느낄 수 있는 감사와 감동조차 느낄 겨를 없이 일상에 지친 피로를 호소하는 직원들의 모습에 가슴 아플 때도 많다.

마치 착한아이 콤플렉스처럼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기에 ‘항상 따뜻하고 다정해야 한다’는 선입견이 부담으로 다가올 때도 있지만, 누군가에게 귀가 되어 세상을 살아가게 하는 힘을 줄 수 있다는 보람이 그를 이 자리에 있게 한 원동력이 됐다.

“얼마 전 한 조선족 어머니가 감사의 인사를 건네러 찾아오셨습니다. 난청인 아이를 데리고 낯선 땅에 왔지만 남편과 연락이 두절돼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던 차에 사랑의달팽이를 만나 무사히 수술을 마쳤다고요. 젊은 나이, 자신에게 닥친 어렵고 벅찬 상황을 눈물로 이야기하면서도 ‘삶을 이어가는 용기를 갖게 됐다’는 어머니의 희망어린 미소에 오히려 ‘우리가 얼마나 소중한 일을 하는지를 다시금 느끼게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사랑의달팽이는 단순한 의료지원에만 머무르지 않고 이들이 사회에 무사히 적응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청각장애를 회복해 가는 아이들로 구성된 ‘클라리넷 앙상블’ 연주단도 그 일환이다.

“인공달팽이관 수술을 한 아이들은 대부분 일반학교에서 통합교육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귀에 이상한 장치를 하고 있다는 이유로, 듣는 것이 조금 불편하다는 이유로 놀림이나 따돌림의 대상이 되기도 하죠. 이들이 자신감 회복을 통해 당당히 사회일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클라리넷 연주단을 14년간 운영하게 됐습니다. 특히 클라리넷은 사람의 음색과 가장 유사한 악기여서 아이들의 재활에도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조 사무국장은 장애보다 장애인을 더 아프게 하는 것이 사람들에게서 받는 마음의 상처라고 말한다. 청각장애인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인식은 여전히 개선할 점이 많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우선 청각장애라고 하면 모두가 수화를 사용하는 사람으로 생각하는데 실제 청각장애인의 90%는 보장구나 구화 등을 통해 음성언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입니다. 또한 통합교육을 받고 있는 청각장애 학생들의 비중도 70%를 상회하고요. 의료 보조수단을 통해 사회로의 진출도 늘어나고 있지만 대중들의 인식에는 아직도 장애인을 그저 자선·배려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그가 말하는 사랑의달팽이의 핵심가치는 ‘천천히, 꾸준히 그리고 바르게’다. 서두르지 않고 정확한 방향으로 천천히 꾸준히 걷는 달팽이 걸음처럼 청각장애인이 함께 살아가는 사회통합을 목표로 변화를 만들어 가는 것이 그가 이곳에서 꿈꾸는 미래다. 수술을 받은 아이가 어느덧 훌쩍 자라 클라리넷 앙상블 단원으로 활동하는 모습을 볼 때 ‘느리지만, 꾸준히 바른 방향으로 간다’는 가치의 의미가 더해진다.

“더 이상 듣지 못하는 것이 장애가 아니라 그냥 조금 불편한 것 그 이상, 이하도 아닌 그런 세상을 만드는 것이 사랑의달팽이의 궁극적인 비전입니다. 그 수많은 활동 속에서 미약하나마 저의 쓰임이 작은 도움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박준호 기자 jun@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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