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위치 : > 비바100 > Encore Career(일)

[비바100] 좋아하는 오디오 만들어 밥벌이… 국내유일 진공관 앰프 생산업체 '톤' 대표 정진수

[나이를 잊은 사람들]

입력 2015-09-07 07:00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인스타그램
  • 밴드
  • 프린트

누군가 말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돈도 버는 인생이 가장 성공한 인생이라고….

 

그런 의미에서 국내 유일의 하이엔드 진공관 앰프 생산업체인 ‘톤(tone)’의 정진수(65) 대표야 말로 성공한 인생이다. 좋아하는 오디오를 만들어 ‘밥벌이’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정 대표를 만나 취미를 직업으로 삼은 이의 삶은 어떤지 들어봤다. 

 

나이를잊은사람들정진수Tone대표
국내 유일의 진공관 앰프 생산업체인 Tone의 정진수대표가 쇼룸에서 진공관앰프와 함께 살아온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양윤모 기자)


‘회사야? 음악감상실이야?’

송파구 오금동 올림픽선수촌 아파트 근처에 자리잡은 톤 사무실에 들어선 순간 든 느낌이다.

 

60여 평 정도되는 크지 않은 사무실이 작업장과 응접실로 나뉜 가운데 응접실은 소파를 중심으로 톤이 생산한 하이엔드 앰프 판테온 시리즈와 각종 CD들, 와인셀러와 와인들이 삼면 벽을 뒤덮고 있었다. 

 

와인 따라놓고, 음악 들으며 수다떨기 딱 좋은 공간이었다. 실제로 정 대표는 이곳에서 밤늦게 까지 친구들과 음악을 들으며 와인을 마시기를 즐긴다고 한다.

“70년대 말 80년대 초 중동붐이 한창일 때 아파트로 유명했던 한양주택에 다녔어요. 그 때 회사가 이라크에서 대규모 프로젝트를 따내서 몇 년간 이라크에 있었죠. 그때 와인과 오디오에 처음 취미를 붙였어요. 릴 테이프로 처음 음악을 들었을 때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정 대표는 그 후 삼성물산 등에서 근무하며 무역업무를 하다, IMF직전인 1995년 각종 기계류와 전기제품을 수출하고 수입하는 ‘비즈니스코리아’를 창업했다. 

 

그런데 무역업무를 하면서 관심있는 오디오 분야를 가만히 살펴보니 골드문트, 매킨토시 등 해외의 하이엔드 오디오 기기들이 너무나 고가에 수입·판매되는 것을 보고 2000년부터 진공관 앰프 개발에 나서게 됐다고 한다.

“진공관 앰프 개발에 나서기 전에도 ‘월간 오디오’ 같은 곳에 글을 쓰며 오디오에 대한 관심은 놓지 않고 있었죠. 그런데 가만히 보니 우리나라의 오디오 애호가들이 너무 터무니없이 비싼 값을 주고 수입 오디오를 사는 거예요. 그래서 하이엔드 오디오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진공관 앰프 개발에 나서게 됐죠.”

그래서 그가 진공관 앰프를 개발에 나서면서 가장 처음에 한 일은 국내 오디오 애호가들을 모아 직접 진공관 앰프 만들기 강좌를 연 것이다.

“사실 이론적으로 진공관 앰프를 만드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문제는 그 과정에서 잡음이나 소리의 왜곡없이 원음을 깨끗하게 증폭시킬 수 있도록 잘 만드는 것이 어려운 일이죠. 그래서 오디오 애호가들이 자신이 직접 앰프를 만들어 보고, 또 자신이 만든 앰프에서 소리가 나는 것을 느끼며 진공관 앰프에 대한 선입견이나 거리감을 없애주기 위해 강좌를 만들었죠. 그때 강좌를 들었던 이들 중에 상당수가 지금 우리 회사의 고객입니다.”

물론 본업인 오디오 개발도 게을리 한 것은 아니다. 그 사이 톤이 개발한 진공관 인티그레이티드 앰프 판테온 시리즈는 국내외 오디오 애호가들 사이에서 가격대비 뛰어난 명품기기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2010년부터는 해외에도 고객층이 형성되었으며 최근들어 많은 양은 아니지만 일본 등에 수출도 시작했다.

“초기에는 국산 진공관 앰프라고 하면 오디오 애호가들이 거들떠 보지도 않더라구요.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꾸준히 무료 청음회를 열고 수입 명품 오디오들과 비교 청음도 한 결과 서서히 인정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아직 모든 공정이 수작업으로 이뤄져 대량 생산이 어려운 데다, 수요도 한정돼 있어서 큰 돈은 안됩니다.”

톤의 1년 매출은 아직 5억원이 채 되지 않는다. 직원들과 정 대표가 생활하기에는 아무래도 빠듯해 보였다.

“평소에 기계에 관심이 많아서 구입해둔 자재도 있고 예전에 수입업을 하던 가락이 있어서 각종 오디오 액세서리나 와이어를 수입해 팔면 생활은 됩니다. 이를테면 예전에 미군 레이더 기지 철수할 때 거기서 나온 전선들을 제가 싼 가격에 다 사들였거든요. 레이더 장비용 전선이 데이터 손실이나 왜곡이 아주 적어서 오디오용 전선으로 제격입니다. 이 전선을 재가공해서 필요한 사람들한테 팔면 한 달 와인 값은 나오거든요. 제 나이 정도되면 욕심만 버리면 먹고 사는 데 큰 돈이 필요없어요.”

그는 일주일에 3~4일은 지방 출장으로 보낸다. 톤 제품을 구입한 고객들을 만나 시스템구성 상담을 해주거나, 음악 동호회 모임에 초청을 받아 오디오강좌를 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제가 인연을 맺고 지속적으로 연락을 주고받는 오디오 애호가들이 전국에 약 500여명 정도 됩니다. 또 이분들이 자기가 사는 지역에서는 오디오 애호가 커뮤니티를 구성하고 있어서, 이제는 매월초가 되면 주단위로 어디를 가서 어떤 분을 뵐 지 계획을 잡는 일이 일상이 돼버렸어요.”

그가 꼽는 오디오의 매력은 시스템 구성을 보면 주인의 성향과 상태를 짐작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나이를잊은사람들정진수Tone대표
Tone의 정진수 대표가 직접 작업을 하고 있다.(양윤모 기자)

“오디오 애호가라면 한번 쯤 오디오시스템이 주인을 닮는다는 말을 종종 듣곤 합니다. 우직하면서 듬직한 성격의 유저분이 선호하는 시스템의 소리결, 샤프하면서도 섬세한 성격의 유저분이 구성하는 시스템의 소리결 등 오디오시스템은 그 시스템을 운영하는 주인장의 성향과 성격을 닮아 있어요. 더 재미있는 건 오디오 시스템의 상태가 주인의 최근 상태를 반영한다는 거예요. 오랜만에 방문하는 고객분의 집 시스템을 들어보곤 그분의 근황을 점칠 수 있어요. 변화가 없다면 그동안 안팎으로 큰 변화 없이 무탈하시구나 하는 안도의 숨을 속으로 내쉬고, 혹 큰 변화가 있다면 주위에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조심스러워 집니다.”

그래서 그는 오디오 애호가들과 만나 상담을 할 때 상대방의 상태를 유심히 관찰한다. 피로해 보이는 사람에게는 정밀한 음악 뉘앙스보단 다소 풀어지더라도 풍성해 편안함을 줄 수 있도록 시스템을 튜닝해주고, 무언가 삶에 활력이 필요해 보이는 사람에게는 시스템의 출력을 다소 높여 음장에 힘을 좀 더 실어 기존보다 활기찬 음악을 즐길 수 있게 해주는 식이다.

“이렇게 그 사람의 성향과 상태에 따라 오디오 시스템을 튜닝해주면 대부분의 고객들이 분에 넘치게 고마워 해요. ‘요즘은 와이프보다 이 녀석이 더 제 마음을 잘 헤아려 주는 것 같다’는 분도 있지요.”

그리고 그는 이 맛에 오늘도 전국의 톤 오디오 시스템 고객들을 만나기 위해 13만km가 넘게 달린 애마에 몸을 싣는다.

이형구 기자 scaler@viva100.com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 인스타그램
  • 프린트

기획시리즈

  • 많이본뉴스
  • 최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