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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피자는 한 조각도 나오지 않는 레트로 하이틴 로맨스!

[Culture Board] 영화 '리코리쉬 피자'가 선사하는 시간여행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이 전하는 '그때의 사랑이야기'

입력 2022-02-16 18:30 | 신문게재 2022-02-17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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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코리쉬 피자1
몸은 어른이지만 마음은 여전히 소년인 개리 역할을 훌륭히 소화한 쿠퍼 호프만.(사진제공=유니버설 픽쳐스)

 

소년은 졸업사진을 찍으러 간 학교 강당에서 여자를 만난다. ‘소녀’가 아니다.  자신의 말로는 스물 다섯. 가끔은 어른들에게 스물 여덟이라고 말하는 걸 봐서는 대중없다. 영화 ‘리코리쉬 피자’는 사랑에 빠진 소년 개리와 불안한 20대를 지나고 있는 알라나의 뜨거웠던 여름날의 이야기다. 제94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3개 부문(작품상, 감독상, 각본상)과 제75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5개 부문(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여우주연상, 편집상)에 노미네이트 될 정도로 세계 영화계의 러브콜을 한몸에 받고 있다.

열다섯살 개리(쿠퍼 호프만)에게 알라나(알라나 하임)는 결혼하고픈 여자다. 자신을 그저 애 취급하는 여자에게 소년은 남자로서 존재감을 과시하고 싶다. 극 중 개리는 아역배우로 너무나 일찍 어른의 세계를 알아버린 인물이다. 이제는 훌쩍 커버린 덩치로 아역으로 활동하긴 어렵지만 CF와 방송출연으로 꽤 많은 돈을 모아둔 ‘애어른’이다. 20대 중반이 되어서도 별다른 직업이 없는 알라나와는 대조적이다. 

10대임에도 물침대 사업을 벌일 정도로 수완이 좋은 개리는 법적으로 성년인 알라나와 운명적으로 동업을 하게 된다. 영화는 어른인 척 하고 싶지만 여전히 아이인 한 남자와 어른이지만 정작 아이같은 한 여자의 밀당 로맨스에 가깝다. 재미는 ‘리코리쉬 피자’가 가진 배경에서 읽힌다.

 

리코리쉬 피자2
영화 ‘리코리쉬 피자’는 폴 토마스 앤더슨이 가진 가장 밝은면을 응축한 영화에 가깝다. 그만큼 시종일관 유치하고, 때론 따듯하다. (사진제공=유니버설 픽쳐스)

 

미국 현대사를 관통한 오일파동과 닉슨 대통령의 모습 그리고 추억의 톱스타들이 나와 벌이는 여러 스캔들이 그것이다.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윌리엄 홀든 등을 암시하는 인물들에 브래들리 쿠퍼, 숀 펜 등을 내세워 포복절도할 연기를 선보인다. 1973년 미국을 배경으로 그 당시 인기를 끌던 레코드숍 이름에서 따온 영화의 제목만큼이나 영화가 발산하는 생뚱맞음은 상상을 초월한다. 

일단 피자가 나오지 않는다. 레코드 가게의 이름이 ‘리코리쉬 피자’였다는 점도 이해하기 어렵지만 피자를 먹는 장면조차 등장하지 않는다. ‘왜 70년대인가?’를 되묻는다면 아마도 이 영화를 만든 폴 토마스 앤더슨의 청춘이 그 시절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야말로 이 영화는 ‘라떼는 말이야’의 미국 버전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가볍고 유쾌하지만 당시 유린된 인권과 빈번한 여성비하와 혐오에 대한 내용은 날카롭기 그지없다. 또래들과 청소년 박람회를 준비 중이던 개리가 ‘파란 셔츠를 입은 키 큰 백인’이란 이유로 갑자기 살인용의자가 되는 장면, 아무렇지 않게 엉덩이를 치고 가는 남자들, 동성애자임을 숨기기 위해 애쓰는 정치인 등 ‘당시엔 당연했던 수많은 불평등’이 낭만이란 이름으로 가득차 있다. 

이제는 고인이 된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의 아들인 쿠퍼 호프만은 ‘피보다 진한’ 연기적 재능을 ‘리코리쉬 피자’에서 뽐낸다. 서로 10대 시절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다는 시스터 그룹 하임 밴드의 막내인 알라나 하임은 연기자로서도 합격점을 받을 만하다. 

자매들 외에 엄마·아빠까지 모두 등장하는 하임가족은 모두 본명으로 영화에 출연하는 특별한 기록을 세웠다. ‘리코리쉬 피자’는 새로운 연애가 아닌, 한두번쯤 식었던 오래된 관계라면 보면 좋을 레트로 로맨스의 바이블에 가깝다. 134분의 러닝타임이 너무 길다면 당신은 아직도 ‘뜨거운 사랑’을 하고 있단 증거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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