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에게 친구들은 든든한 지지자면서 감시자다. 또래 여성들의 묘한 시기심과 질투가 담신 ‘레벤느망’의 한 장면. (사진제공=㈜영화특별시SMC) |
주연을 맡은 아나마리아 바토로메이가 보여주는 연기는 프랑스 여배우 계보를 새로 쓸 정도로 강력하다. (사진제공=㈜영화특별시SMC) |
‘레벤느망’은 자유롭지만 억압적인 시선이 존재했던 그 시대에 온 몸으로 맞선 한 여성의 내밀한 고백이다. 기숙사에서 또래들과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그의 평범한 일상도 잠시, 예상치 못한 입덧과 부풀어 오르는 배에 좌절하는 안의 모습이 화면에 가득 찬다.
평소 절친으로 여겼던 친구들의 외면과 조롱은 덤이다. 기숙사를 같이 쓰는 여자친구들은 ‘미혼모는 될 수 없다’는 안을 비난하고 든든했던 남자사람친구는 대뜸 ‘누구와 어땠는지’부터 묻는다. 영화는 같은 공간에 있던 모든 여자들의 배 안에는 없었던 존재를 12주 내내 품었던 안의 이야기를 통해 여성의 억압을 되묻는다.
예기치 못한 임신으로 촉망받던 미래를 빼앗긴 주인공이 시대의 금기로 여겨지던 낙태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꽤 현실적이다.
후반 20분을 남기고 보여지는 사실적인 상황 묘사는 옛날 옛적 한국에서 행해진 ‘카더라’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국적만 다를 뿐 간장을 마시고 언덕에서 굴렀던 과거의 한국 여성들이 자궁에 대바늘을 찔러 넣거나 불법 주사를 무허가로 허벅지에 놓는 프랑스 여성으로 대체됐을 뿐이다.
어쨌거나 안이 간절히 바랐던 순간은 쉽지 않다. 원치 않는 임신이어서일까. 영화에서 태아는 ‘그것’으로 불린다. 현대 프랑스 문학의 거장으로 손꼽히는 아니 에르노의 솔직하고 용기 있는 고백록 ‘사건’에서 기초한 만큼 신 하나하나 가볍지 않다. 또래의 배안에는 없었지만 자신이 품고있었던 생명을 바라보는 한 여성의 공포와 혼란이 여과 없이 전달된다.
‘레벤느망’은 철저히 임신부의 착상 주 수로 전개되며 비극적 엔딩을 암시한다. 가슴이 부풀고 입덧이 시작되는 4주부터 우등생에서 낙제 직전으로 내몰리는 11주까지의 모습은 관객들에게 묘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러닝타임 100분.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