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위치 : > 비바100 > Leisure(여가) > 영화연극

[2022 칸] '깐느 박'에게 황금종려상이란?

[Culture Board] 칸 매료시킨 박찬욱 감독 영화 '헤어질 결심'
칸 공개 후 별 5개 받으며 '수상 가능성' 높아져
"영화 '헤어질 결심'은 죄의식을 포함한 내적 폭력성 담은 작품"

입력 2022-05-25 18:30 | 신문게재 2022-05-26 11면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인스타그램
  • 밴드
  • 프린트
ParkParkParkUntitled-4
박찬욱 감독은 “코로나19에 걸리지 않고 영화제가 잘 마무리되는 것이 요즘 나의 가장 큰 숙제”라며 국내 관객들에게 안부를 전했다. (사진제공=CJ ENM)

 

“결정적으로 수상을 못하는 이유가 한국어가 가진 특유의 미묘함이 있는데 그걸 잘 살리지 못해서 인가봐요.”

‘붕괴, 마침내, 꼿꼿’. 곱씹어 볼수록 심오하고 아름다운 단어들이 박찬욱 감독 특유의 미장센에서 살아 숨쉰다. 영화 ‘헤어질 결심’을 관통하는 단어지만 외국 관객들에게는 와닿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질문에 박찬욱 감독은 그 어느때 보다 크게 웃었다. 

그의 11편째 장편 영화가 칸영화제가 개최 중인 프랑스 팔레 데 페스티벌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23일(현지시간) 공개됐다. ‘깐느 박’이란 애칭만큼 2300여석의 극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의 기립박수와 찬사가 이어진 밤이었다.

박찬욱
2019년 부터 시작된 ‘프리미어 전 감독과의 대화’는 격의없이 작품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자리다. (사진=이희승 기자)

박 감독은 공식 상영 하루 전 열린 국내 언론과의 티미팅에 참석해 “웃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공동경비 구역JSA’를 제외한 내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라고 생각하고 찍었다”면서 “관객들에게 스며드는 클래식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헤어질 결심’을 소개했다.

 

영화는 산에서 벌어진 변사 사건을 수사하게 된 형사 해준(박해일)이 사망자의 아내 서래(탕웨이)를 만나 의심과 관심을 동시에 느끼며 시작되는 이야기다. 

그가 10대에 읽었던 스웨덴의 추리 소설 마르틴 베크 시리즈, 영국 영화 ‘밀회’, 한국 영화 ‘안개’ 등 고전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수사 멜로다. 

영국에서 ‘리틀 드리머 걸’의 후반 작업 중 런던에서 정서경 작가와 만난 박 감독은 평소대로 차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박쥐’ ‘아가씨’를 함께한 동료이자 영화적 동지인 정 작가에게 “남자 주인공은 깨끗하고 예의 바르지만 독특한 남자, 이를테면 박해일 같은 배우였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정 작가는 “그렇다면 여자 주인공은 중국인이 좋겠네요?”라고 되물었다. 그 이유를 궁금해 하는 박 감독에게 정 작가는 “그래야 탕웨이를 캐스팅할 수 있다”는 운명같은 말을 남겼다고. 감독이 된 후 최초로 시나리오를 건네지 않고 ‘말’로 먼저 캐스팅 작업에 들어간, 스스로의 표현대로라면 ‘무모한 도전’이 시작됐다. 

이에 박 감독은 “탕웨이가 안 되면 큰일 나는 상황이었다. 완성된 시나리오 없이 직접 만나 1시간에서 2시간 가까이 줄거리를 설명했다. 캐스팅을 확실히 하고 글을 쓴 최초의 작품”이라고 미소지었다.

 

2022052601010011846
영화 '헤어질 결심' 스틸컷.(사진제공=모호필름)

  

시나리오는 급 물살을 탔지만 진도는 더뎠다. 탕웨이가 그저 한국어 대사를 외우지 않고 기본 문법부터 이해하고 싶다는 뜻을 전달했기 때문이다. 여러 명의 한국어 선생님이 붙었다. 이는 한국인 남편을 둔 중국 국적의 이민자 아내라는 독특한 설정을 더욱 증폭시키는 계기가 됐다. 

 

극 중 탕웨이가 맡은 서래는 슬프지만 울지 않고 사랑 앞에 당당하지만 현실은 지옥같은 여자다. 그 복잡한 상황의 감정선이 탕웨이 특유의 고혹적인 매력과 만난다.

“실제로 만난 탕웨이는 고집스러운 면이 있었어요. 자기가 믿는 걸 굽히지 않는 스타일이죠. 그래서 더 좋았던 것 같아요. 덕분에 한국어 대사를 외국인이 하면 생기는 독특한 매력을 잘 살려주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참 익숙한 단어인데 억양이나 발음이 다르다고 해서 이렇게 낯설고 다르게 들리나 싶을 정도로요.”

gpdjwlfruftlaUntitled-1
영화 '헤어질 결심'으로 제75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대된 탕웨이(왼쪽부터), 박찬욱 감독, 박해일(사진제공=CJ ENM)

‘헤어질 결심’의 독특한 점은 죽은 사람들의 시선으로 해준과 서래를 바라본다는 것이다. 독특한 앵글에 대해 박 감독은 “스마트 폰을 많이 보는 세상이다. 그렇다면 기계의 시점에서 사람을 본다는 게 어떨까 싶더라. 촬영 감독의 이런 아이디어를 듣고 이왕이면 많이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점이 바로  영화의 스타일이 되는 거니까”라며 관객들에게 관람 포인트를 짚었다. 

박해일이 연기하는 해준도 대체불가의 매력으로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누구보다 자신을 잘 알고 이해해주는 아내하고는 살을 섞지만 서래하고는 영혼을 나눈다. 멈출 수 없는 욕망은 범인을 잡으러 가면서도 출렁인다. 

2022052601010011850
영화 '헤어질 결심' 스틸컷.(사진제공=모호필름)

 

긴 시간 잡고 싶던 살인범(박정민)을 체포하려는 순간 ‘나쁜 남자와 사는 좋아하는 여자’를 둔 공통점을 공유하는 신은 웃프면서도 비극적이다. 박찬욱 감독은 이 장면을 통해 자신의 영화에서 반복되는 ‘복수’란 키워드를 “사랑이란 감정과 불가분의 관계”라고 정의했다. 

 

극 중 박정민의 특별 출연 외에도 코미디언이자 인기 DJ로 활동 중인 김신영이 후반부에 등장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찬사가 쏟아졌다. 현장에서 김신영이 보여준 연기는 흡사 “오랜시간 촬영 현장에 있었던 사람처럼 익숙하고 훌륭했다”면서 “봉준호 감독이 이 캐스팅 소식을 듣고 질투할 정도였다. 김신영씨의 레전드 코미디 파일이 따로 있을 정도로 팬이라더라”고 촬영 비하인드를 들려줬다. 

 

ParkChanWookUntitled-3
영화 '헤어질 결심'으로 제75회 칸국제영화제에 참석한 박찬욱 감독(사진제공=CJ ENM)

사실 영화의 구성은 ‘산’과 ‘바다’라는 2개의 챕터로 구성돼 있었다. 산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시작해 바다에서 끝난다.

 

박찬욱 감독은 챕터를 나누고 자막도 넣으려고 계획지만 ‘바다’ 분량이 90분이나 지나서야 등장하기에 관객들의 부담을 줄이고자 형식적 구분을 배제하기로 했다는 후문이다. 영화 상영 후 반응은 역대급이다.

 

상영 다음날 가디언은 이 영화에 최고점인 별점 5개를 부여하며 “박찬욱 감독이 훌륭한 느와르 로맨스와 함께 칸에 돌아왔다. 텐션, 감정적 대치, 최신 모바일 기술의 천재적 활용, 교묘한 줄거리의 비틈 등 너무나도 히치콕스러웠다”는 평가를 내놓았다.

 

영미권 배급사 무비(Mubi)의 케이트 케인은 “또 하나의 마스터피스가 탄생했다. 박찬욱은 단연 현시대에 존재하는 최고의 스토리텔러이자 비범한 감독”이라고 평가했다. 전 세계 192개국에 선판매되며 종전 한국 영화 최다 판매 기록인 ‘기생충’(205개국 판매)에 근접하는 성적을 냈다.


“영화인의 한 사람으로서 팬데믹 동안 좋은 작품들이 더 많이 만들어진 걸 느끼고 있어요. 극장에서 내 영화를 튼다는 자체가 감격스러워요. 사실 ‘헤어질 결심’은 유독 어른들을 위한 로맨스 입니다. 진심을 숨기는 장면이 많아서 하나하나 파악하려면 어느 정도 살아본 사람이 아니면 매력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거든요. 2시간 18분 러닝타임이 이왕이면 ‘1시간 78분’으로 기억되길 바랍니다.” 

칸(프랑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 인스타그램
  • 프린트

기획시리즈

  • 많이본뉴스
  • 최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