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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긋하지만 옹골찬 '본격 재미 추구 마을 공동체'

[공동체로 성공을 꿈꾸는 사람들]서울 이태원 우사단단

입력 2014-10-07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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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청년이 서울 이태원 소재의 이슬람 사원 앞 좁은 골목으로 들어선다. 

 

"안녕하세요?" 싹싹한 인사에 서울식품 사장 양동엽(65)씨가 푸근한 미소를 보내고 40년 된 한진이발소 주인아저씨 최성옥(71)씨가 손을 흔든다. 

 

"장사 좀 되세요?"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참참 김밥집의 정금실 사장(57)은 "덕분에요~"라며 곱게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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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사단단의 김연석 단장(33)

 "너무 잘 소개해주실까봐요!" 많이 알려질까 겁내하는 마을 공동체가 있다. 사실, 이미 잘 알려진 공동체기도 하다. 서울 이태원 우사단 10길의 마을공동체 '우사단단'이다.

 

골목길로 들어섰던 30대 청년은 이 공동체의 단장 김연석(33·사진)씨, 그가 우사단단이 많이 알려질까 우려하는 이유는 수긍할만하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건 좋지만 우사단 10길은 삶의 터전이에요. 시끄럽고 어수선하면 사는 데 지장이 생기잖아요." 우사단단 행보에 최우선 배려대상은 단연 주민이다. 

 

◇ 재미있는 마을활성화 프로젝트 가동

우사단단은 마을활성화를 위해 2012년 8월에 결성된 공동체다. ‘열정감자’ ‘열정꼬치’ ‘열정골뱅이’ ‘카페 벗’의 청년장사꾼 공동대표 김연석씨와 10초 완성 10원 초상화가 장재민 작가, 광고쟁이들이 모인 월드멜로디 프로젝트, 세 명의 플로리스트 모임 스타일지음 등이 주도하는 ‘본격 재미 추구 마을 활성화 프로젝트’다. 

 

이들이 우사단길에 터를 잡으면서 마을은 흥미로워졌다. 이슬람 전통음식점과 한국식 반찬을 파는 서울식품, 40년 된 이발소와 타투숍, 디자인 스튜디오와 철물점 등이 공존하는 마을 풍경이 이색적이다. 촘촘하게 늘어선 가게들을 지나 끝에 다다르면 도깨비시장이 자리 잡고 있다. 낡은 천막 아래서 배추와 무를 팔고 막 수확한 가지와 고추를 말리기도 한다.

“지역 살리기와 문화적 접근은 원주민들과 호흡이 중요했어요. 우리끼리 재밌는 거 하자고 20~30년을 산 주민들에게 불편을 주면 안 되잖아요. 주민과 주민이 아닌 사람은 지역에 대한 접근부터 달라요. 그래서 주민이 됐죠.” 

 

공동체- 우사단단65
새롭게 꾸며 우사단 길 명소가 된 참참김밥집

 

이들도 처음엔 외지인이었다. 거주지를 따로 두고 스튜디오나 작업실, 가게 등만 우사단길에 차렸다. 하지만 2013년을 맞아 주거지까지 하나 둘 우사단 10길로 이사를 하면서 여럿이 주민이 됐다.

“매년 초 우사단단 회의를 해요. 누구나 참여해 우사단 마을이 이렇게 되면 좋겠다는 그림을 그리고 하나씩 만들어가죠.”

참여도 자유다. 따로 가입절차가 없으니 회원도 없다.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10팀이 있고 협조적인 30~40팀이 모여 회의에서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강제조항이 없어 느슨하지만 자발적으로 참여하니 견고하게 연결된 이들이 만들어낸 성과는 꽤 옹골차다. 2013년, 2014년 식목일에는 재개발 때문에 버려져 방치된 파출소 화단을 뒤집어 게릴라 가드닝을 했다. 지리학과 학생의 아이디어로 우사단 지도도 만들었다.

‘월간 우사단’은 ‘월간’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시간이 되면 발간하는 공동체 신문이다. 한강과 이슬람 사원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옥상에서 공연을 하는 옥상유랑단도 만들었다.

그러다 심심해져 기획한 것이 계단장이다. 2013년 3월부터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에 열린 계단장(매년 3월~10월)에는 경찰 추산으로 1회에 23만명이 다녀갔다. 셀러를 모집하지만 공동체가 나서서 해주는 것도 받는 것도 없다. 1년에 8번 열리는 계단장에 든 비용은 깃발제작비 10만원과 쓰레기봉투 구입비 10만원까지 달랑 20만원이다.

사람들이 몰리니 동네 슈퍼나 음식점, 도깨비시장 등 원주민들의 가게도 성황이다. 하지만 계단장은 사람이 너무 많이 몰려 안전상의 문제로 5월 행사 이후 문을 닫고 2014년 9월부터는 골목 양쪽으로 좌판을 설치하는 ‘들어와’ 마켓으로 변신했다.

◇ 누구보다 주민이 우선이다! 


공동체- 우사단단30
서울식품에서 파는 2000원짜리 부침개를 먹고 있는 외국인들

 

“마을 살리기는 관계회복이에요. 일인주거, 외지인 등이 증가한 요즘은 누구나 외롭고 쓸쓸하잖아요. 그런데 여기서는 다들 반갑게 인사해요. 그러면서 마을도 안전해지죠.”

마을에 벽화를 그리면 지원을 해주겠다는 서울문화재단에 “벽화는 지속적인 관리가 안 되면 흉물”이라 거절하고 라바콘 화분을 만들었다. 라바콘의 뾰족한 부분을 잘라 화분을 넣어 주차, 쓰레기 구간 등의 정비에 활용하니 주민들이 환호를 보내기도 했다.

김 단장은 “필사적이지 않아야 오래 할 수 있다”며 “하나에 매진하면 순간적으로 집중도를 높일 순 있지만 오래가기는 힘들다”고 토로한다. 그래서 그들에겐 구체적인 계획도 없다. 마을이 오래되다 보니 주차와 쓰레기 문제해결은 주민 모두의 숙원사업이다. 이에 대해 더 치열하게 고민하는 것이 계획이라면 계획이다. 


 

김연석단장5
직접 찍은 사진을 깃발처럼 꼽아둔 우사단길 지도

최근에는 도깨비시장 바닥 그림 그리기와 상인들의 앞치마 제작을 준비 중이다. 먼 미래에는 ‘태양의 서커스’같은 공연도 만들고 싶다. 급할 것 없이 느슨하지만 재밌게 마을을 만들고 행사를 기획·준비하는 것, 이것이 20~30대 청년들이 이끌지만 40~60대 마을어른들이 주인 되는 우사단단이 갈 길이다.


글·사진=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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