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위치 : > 비바100 > Life(라이프) > 가족‧인간관계

가수 아빠, 수다 엄마, 책읽는 아이 '우리동네 사랑방'

[공동체로 성공을 꿈꾸는 사람들] ⑦ 부산 금정구 남산동 금샘마을공동체
부모들의 못 말릴 자식사랑, ‘안전한 마을'의 꿈으로 영글다

입력 2014-11-04 14:41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인스타그램
  • 밴드
  • 프린트
메인사진
이웃의 아이와 어른이 반갑게 인사하고 안부를 묻는 안전한 마을, 자식을 위하는 부모 마음이 촘촘하게 엮여 탄생한 공동체가 있다. 부산 금정구 남산동 주민들이 만들어 운영 중인 사단법인 금샘마을공동체다.(사진=허미선 기자)


 

“지민이 니 괜찮나?” 


구수한 부산 사투리로 콜록거리는 아이의 안위를 묻는다. 엄마도 친척도 아닌 이웃 아주머니다. 이웃의 아이와 어른이 반갑게 인사하고 안부를 묻는 안전한 마을, 자식을 위하는 부모 마음이 촘촘하게 엮여 탄생한 공동체가 있다. 부산 금정구 남산동 주민들이 만들어 운영 중인 사단법인 금샘마을공동체다.

  


 
◇부모들의 실행력, 아이들의 성장에 발맞춰 진화하다

시작은 2006년 우리 아이가 안전하고 즐겁게 놀고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자는 10가구의 고민이었다. 고민하는 동안 10가구가 더 모여들었다. 부모의 최고 경쟁력은 자식을 위해 못할 것이 없는 ‘못 말릴 실행력’이다.
 

 

독서
40여명 부모가 헌신해 금샘마을도서관이 문을 열었다.(사진=허미선 기자)

  


마을 주민 중 한사람이 8평 남짓의 자택 공간을 싼 값(보증금 300만원, 월세 15만원)에 내주면서 부모들의 행보는 분주해졌다.

엄마들은 책을 기증받느라 발로 뛰었다. 아빠들은 목재와 벽지를 구해 벽을 바르고 책장을 짜는 등 공간을 꾸미는 데 주말을 헌납했다. 틈틈이 마을 작은 공원에서 영화를 상영하며 도서관 탄생을 예고하기도 했다.

40여명 부모의 헌신이 씨줄과 날줄이 돼 2년만에 금샘마을도서관이 문을 열었다. 2008년 단오를 맞아 마을잔치를 열었고 400여명 주민들이 모여들었다.

지나가던 동네 어르신들이 들려 커피 한잔 마시고 엄마들이 자식 걱정을 나누며 댄스와 공예를 배우는 사랑방이었다. 아빠들이 잊었던 밴드의 꿈을 키우고 하굣길 아이들이 더위와 추위를 피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아이들이 성장해감에 따라 부모들의 고민도 복잡해졌다. 도서관 개관 당시 대여섯 살이던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금샘지역아동센터’를, 중고등학생이 된 아이들을 위한 청소년공간 ‘모두모여’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고민과 동시에 2009년 사단법인을 설립하고 주민들의 자발적 기부로 십시일반 자금을 모아 지역아동센터를 개소했다. 공부보다는 협동, 소통, 관계 등 인성교육을 우선시했다.

아이들은 서로를 보듬고 산과 계곡으로 자연놀이에 나섰고 부모들은 센터의 일에 적극 참여한다. 센터 행사에 부모의 참여율은 90% 이상, 공부는 뒷전인데도 이곳에 입학하겠다고 줄을 서기 시작했다. 이웃마을까지 입소문이 나 입학 대기자 명단은 더 늘었다. 이 센터에 입학하겠다고 이사를 감행하는 이웃들이 생겨나면서 금샘지역아동센터는 빠르게도 지역 명물로 자리매김했다. 

 

 

큰 그림
아이들에게 실감나게 그림책을 읽어주기 위해 엄마들이 만든 ‘큰책’(사진=허미선 기자)

 


◇ 벌써 9년째 신나는 아이들, 꿈꾸는 어른들, 나누는 이웃

“아이들은 어른을 보고 자라요. 결국 부모가 변해야 하죠. 아무리 행복하게 살라고 말해도 아이들은 행복이 뭔 줄 몰라요. 부모가 행복하면 그걸 보고 행복을 배우죠. 추상적 개념을 체화시키는 존재가 부모예요.”

김명옥(44) 사무국장의 말대로 부모가 행복해야 아이도 더불어 행복하다. 이에 도서관과 아동센터, 청소년공간에는 자발적으로 소모임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올망졸망’, ‘빛그림 공연’과 매주 그림책을 함께 읽는 엄마들의 모임 ‘책마실·책누리’, 매달 정해진 책을 읽고 토론하는 부모들의 모임 ‘아서우’ 등이다.

아이들에게 보다 실감나게 그림책을 읽어주기 위한 엄마들의 모임인 ‘큰책만들기’, 도자기 공예 강좌 ‘그릏’도 있다. 큰책만들기와 그릏은 미술을 전공했지만 전업주부였던 김지숙(43)씨가 이끌고 있다.
 

 

기타
금샘마을에는 가수를 꿈꾸던 아빠들이 결성한 ‘아빠밴드’, 중·고등학생들로 구성된 얼렁뚱땅 밴드와 뻔뻔(Fun Fun) 밴드, 풍물패 ‘서얼’도 있다.(사진=허미선 기자)

 


가수를 꿈꾸던 아빠들이 결성한 ‘아빠밴드’, 중·고등학생들로 구성된 얼렁뚱땅 밴드와 뻔뻔(Fun Fun) 밴드, 풍물패 ‘서얼’도 있다. 아이들 캠핑을 책임지고 어린이날 체육대회를 주최하는 ‘아빠모임’의 활약도 활발하다.

이경화(39) 금샘마을도서관장은 “엄마들이 제일 좋아하는 건 육아 품앗이”라며 “나 혼자 잘키우는 것만으로는 안된다. 공동체를 통해 마을이 함께 아이들을 보호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엄마들은 아이 문제를 혼자 고민하기보다 또래 엄마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정보를 교류한다. 아이와 엄마가 충돌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일 대 일이면 잔소리이자 반항이 되지만 집단 간의 문제해결은 보다 수월해진다.

그렇게 금샘마을공동체는 신나는 아이들, 꿈꾸는 어른들, 나누는 이웃을 벌써 9년째 실천하고 있다. 김명옥 사무국장은 지속비결에 대해 “아이를 위해 한마음 한뜻으로 움직이는 부모의 마음”이라고 꼽는다.

“우리 자랑은 평범한 부모들이 자발적으로 운영한다는 거예요. 이사장, 도서관 관장, 아동센터장, 사무국장, 운영위원 등 중 유명인사는 없어요. 모두 누군가의 엄마이고 아빠죠.”

현재 이사장직을 맡고 있는 송해근(48)씨는 유명 제과 공장에서 일하는 회사원이고 이경화 도서관장, 김미선(47) 아동센터장은 평범한 가정주부다. 

 

 

DPP_5382
신나는 아이들, 꿈꾸는 어른들, 나누는 이웃의 꿈이 영그는 금샘마을공동체(사진=금샘마을공동체)

 


◇하나되는 마을, 원대한 꿈이 영글다

공동체가 커가면서 회원은 250명에 이르렀고 모임도 아이들도 늘었다. 도서관은 일찌감치 복작거리기 시작했다. 이에 부모들은 또다시 ‘실행력’을 발휘해 도서관 이전을 추진했다. 이전 기금 마련을 위해 ‘마을채권’을 발행했다.

“100만원짜리 무이자 채권이었어요. 딱 15집만 모으자 했는데 2000만원이 모였죠.”

가가호호 방문해 “아무나 주는 채권증서가 아니다. 가보로 대물림할 정도로 가문의 영광”이라며 큰소리를 쳐댔다. 도서관 이전 후원을 위한 주점을 열고 1만원짜리 티켓 5000장을 발행했다. 요리사 출신 아빠는 마을 사람들에게 맛있는 것을 먹이겠다는 일념으로 수제 돈가스를 튀겨 푸짐하게 담아내느라 바빴다. 덩달아 엄마들은 돈가스에 쓰일 고기를 두드리고 빵가루를 입히느라 밤을 지새워야 했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2011년 현재 금샘마을도서관 및 북카페 놀이터에 자리를 잡았다. 이사하는 날은 요란했다. 풍물패가 앞장섰고 책보자기를 맨 아이들이 엄마 손을 잡고 골목골목 행진을 했다. 아빠들은 트럭에 냉장고, 에어컨 등을 실어 나르고 이웃들에게 떡을 나눠주었다.

그리고 그들은 또 다시 무모한 진화를 꿈꾸고 있다. 3년 안에 세 군데로 나눠진 공간을 한데 모을 건물을 매입하는 것이다. 다소 무모해 보이지만 그들은 “아이를 생각하는 부모의 마음이면 못할 것도 없다”고 이구동성으로 외친다.

행복한 아이, ‘잔소리꾼’이기만 했던 엄마의 자아 찾기, 소외되던 아빠의 기꺼운 헌신, 반갑게 인사하고 배려하는 이웃들, 그렇게 하나되는 마을, 그들의 원대한 꿈은 그렇게 영글어간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 인스타그램
  • 프린트

기획시리즈

  • 많이본뉴스
  • 최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