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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사이드] ‘백발의 프로그래머’를 꿈꾸는 연극 ‘킬롤로지’ 김수현이 전하는 전혀 다른 데이비와 폴 그리고 나의 아버지

게리 오웬의 연극 '킬롤로지', 김수현·윤석원, 이주승·은해성, 이율·오종혁 줄연! 시크한 이주승과 이율,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은해성과 오종혁
아버지 김인태와 어머니 백수련, 가족에 대한 기억, 세상을 더 좋게 만드는 백발의 프로그래머에 대한 꿈

입력 2019-10-25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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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롤로지 김수현
연극 ‘킬롤로지’ 알런 역의 김수현(사진=강시열 작가)

“최근 가장 큰 고민은 ‘킬롤로지’를 끝까지 잘 하는 거예요. 계속 공연을 하다 보면 무뎌지기도 하는 것 같아서 새로운 걸 찾으려고 애써요. 제 나름의 방법은 조사를 조금씩 바꾸는 거예요. ‘했는데’를 ‘했지만’으로 바꾸거나 ‘그때’ 하다가 ‘바로 그때’라는 식으로 알게 모르게 넣고 빼는, 저만 긴장하게 되는 방식이죠.”

연극 ‘킬롤로지’(11월 17일까지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2관)에서 아들을 잃은 아버지 알란(김수현·윤석원, 이하 시즌합류 순)으로 분하고 있는 김수현은 3개월여의 공연 동안 새로움을 이어가기 위해 “긴장하지 않거나 논리가 돌아가지 않으면 틀릴 수 있게 만들기도 한다”고 털어놓았다.

‘킬롤로지는’ 폭력적인 게임 속 수법대로 살해당한 데이비(이주승·은해성)와 그의 무책임했던 아버지 알런 그리고 게임 킬롤로지 개발사 CEO 폴(이율·오종혁)의 독백으로 미디어 문제, 학교 폭력, 사회 부조리 등을 아우른다. 개인의 삶을 통해 사회 시스템의 문제를 파고드는 게리 오웬 작품으로 2017년 영국 로얄 코트에서 초연됐고 한국에서는 지난해 첫선을 보였다.


◇시크한 이주승과 이율,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은해성과 오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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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킬롤로지’(사진제공=연극열전)

 

“초연 때도 그렇고 재연 때도 제일 선배이다 보니 한마디 하는 게 너무너무 조심스러웠어요. 나이나 연차의 차이는 있지만 무대에서는 동등해야할 동료들이니까요. 정말 하나가 돼서 서로를 온전히 받아줘야하니까요. 게다가 배우가 충분히 생각해서 스스로 찾고 깨달았을 때 훨씬 풍성해지거든요. 특히 데이비나 폴에 대해서는 전혀 참견을 안했어요. 해석의 여지가 많은 작품이라 특히 더 조심했죠.”

이렇게 전한 김수현은 전혀 다른 데이비와 폴에 대해 전하기도 했다. “(이)주승이와 (이)율이가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고 툭툭 던지는 시크한 데이비와 폴이라면 (은)해성이와 (오)종혁이는 굉장히 진지하고 있는 그대로를 솔직하게 보여주는 데이비와 폴”이라고 설명했다.

“배우가 가진 개인적인 성향이나 기질이 다르니 표현은 조금씩 달라지지만 선택한 성향이 그런 것 같아요. 주승이와 율이도 초연과는 미묘하게 달라졌어요. 감정이 깊이까지 표현된다고 할까요. 발랄한 느낌이 강했던 율이의 폴도, 본인의 성향을 반영한 주승이의 데이비도 감정이 깊어졌어요.”


◇어쩌면 또 다른 데이비 혹은 폴, 내 아버지에 대한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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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킬롤로지’ 알런 역의 김수현(사진=강시열 작가)

“이 작품을 하다보면 아버지와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나요. 아버지와 어머니는 당연히 저를 너무너무 사랑하셨어요. 하지만 대화도 별로 없고 무덤덤한 가족이었죠. 어머니는 어떻게든 다 같이 많은 것을 하고 싶어 하셨지만 아버지도, 그 아버지를 닮은 아들들도 표현을 잘 못하고 뭘 해도 무덤덤했어요. 참 서툴게도 살았구나 싶어요.”

아버지와 가족에 대해 털어놓은 김수현은 데이비가 오랜만에 엉망진창이 된 알란을 만나 아빠에 대해 얘기할 때 저희 아버지가 훅 떠오를 때가 있다”고 토로했다.  


“너무 개인적으로 감정에 빠져버리면 진행이 안되니 그럴 때는 일부러 다른 생각으로 감정을 가라앉히곤 하죠. 저희 아버지가 작년에 돌아가셨어요. 대전예술의전당에서 ‘백치’를 공연 중일 때였어요. 열흘 공연 중 중간쯤이었죠.”

이어 “친구가 공연장 밖에 대기하고 있다가 저를 태우고 분당 장례식으로 가 밤새 있다가 새벽이면 또 다시 공연장으로 돌아가는 3일을 보냈다”며 “너무 정신이 없으니 슬픈 줄도 몰랐다”고 털어놓았다. 당시 공연 중이던 ‘백치’는 도스토옙스키 작품으로 진실되고 순결한 인간이 시대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모두를 파국으로 몰고 가는 비극이다. 이 작품에서 김수현은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으로 막대한 유산 상속을 받게 된 로고진을 연기했다.

“손님이 오시면 절하고 공연은 또 공연대로 해야 하니 긴장을 하고 있었죠. 저는 너무 정신이 없어서 인지를 못했는데 ‘백치’의 제 첫 장면 첫 대사가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도 가족이 알리질 않아서 기차 안에서 하는 하소연이었어요. 저는 당시의 상황과 연결시킬 생각조차 못하고 연기에 집중했었는데 지인들은 너무 불안해하면서 보고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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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킬롤로지’ 중 아들 데이비 이주승과 아빠 알런 김수현(사진제공=연극열전)

그 후로도 경황없이 바쁘게 시간을 보내며 아팠고 심하게 살이 내린 김수현은 “한참이 지났는데도 (아버지를 여읜 감정이) 발동될 타이밍이 없었다”며 “언젠가는 후폭풍이 올 것 같다”고 전했다.

“가슴에 꽉 눌러놓고 그냥 완전히 잊은 것처럼 훅 지나갔거든요. 너무 억누르고 있어서 인지를 못하고 있었는데 굉장히 예민해져서 약도 못먹고 그랬죠. 저희 아버지는 성향 상으로는 조용한 소시민에 가까웠어요. 화려하지도, 겉모습이 중요하지도 않는 분이시죠. 대화도 거의 없었고 속 얘기도, 참견도 별로 안하셨어요. 추억도 많지 않아요. 가족여행을 간 적도 없거든요. 그저 막연하게 조각처럼 에피소드들이 있어요. 문득 저를 괴롭게 하는 몇 가지 조각들이죠. 언젠가는 오긴 올 것 같은데 어느 순간에 어떻게 올지 모르겠어요.”

그리곤 얼마 전 공연을 끝내고 나오면서 쌍둥이 자매 출판인에게 받은 ‘아버지’라는 책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그는 “아버지에 대해 딸과 아들들이 쓴 글들을 모아둔 책”이라며 “저희 ‘킬롤로지’처럼 지나고서야 생각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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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킬롤로지’ 알런 역의 김수현(사진=강시열 작가)

“무관심하게 혹은 아무 생각없이 한 행동들을 돌이켜보는 글들이었어요. 언젠가 공연장에 좀 일찍 도착해 카페에 앉아 한 챕터를 읽었는데 자극적이지도 않은 평범한 일상의 이야기에서 갑자기 감정이 훅 올라와 덮었어요. 살살 읽어야 겠다 마음 먹었죠.”



◇가족이라는 이름…익숙해서 서툰

“이 작품을 하면서 ‘아버지가 내 손 좀 잡아주지’ 싶다가도 ‘아니지 내 잘못이지’ 그래요. 자식으로서 핑계라는 것도 너무 잘 알아요. 자신이 생각하는 것만 옳다며 하나의 길만 열어주고 사사건건 방해하거나 다른 선택은 차단해버리는 부모들도 많잖아요. 저의 부모님은 단 한번도 ‘안돼’라는 경우가 없으셨어요.”

이어 “그런 면에서는 혜택을 입은 건데도 돌이켜보면 그래도 인생 선배로 사셨으니 충고라도 해주시던가 위로나 인정, 배려를 좀 해줘서 힘이라도 받았다면 어땠을까 싶다”며 “온전히 혼자 방황하지 않고 충고나 위로, 인정, 배려 등을 받았다면 지금보다 나아졌을까 혹은 망가졌을까 궁금해진다”고 덧붙였다.

“저 역시 무덤덤한 집안 분위기를 따라가고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TV드라마나 영화 중 식구들이 모여 밥을 먹는 등 화목한 광경이나 시시콜콜한 장면들을 연기할 때 그렇다고 느껴요.”

그리곤 “공연이라면 미친 듯이 연습을 해 중화시켜 연기를 할 수 있는데 연습시간이 없는 영화나 드라마는 그런 장면들이 너무 괴롭다”며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문제도 안되는 장면이지만 저는 너무 괴롭고 그 장면을 실제처럼 하려니 또 괴롭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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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킬롤로지’ 알런 역의 김수현(사진=강시열 작가)

“집중해서 해야하는 연기들은 오히려 마음이 편한데 경험이 없다보니 풀어져야 하는 장면이 너무 힘들어요. ‘이게 뭐라고 이렇게 힘든가’ 자괴감도 들고 지켜보는 사람도 답답하죠. 유산처럼 물려받은 것들이 배우로서의 딜레마 같아요. 제일 풀기도 어렵고 풀리지도 않는. 그래서 ‘킬롤로지’는 사회문제를 다루지만 당연하고 익숙한 가족에게 계속 마음을 써야하고 그 마음을 보여줘야 한다고 얘기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세상을 더 좋게 만드는 백발의 프로그래머를 꿈꾸다

“저는 호기심이 엄청 많아요. 그래서 몰래몰래 준비하는 프로젝트나 꿈들이 있어요. 실현 가능성이 없으니 잘 숨겨뒀다가 실현가능해지면 공개하려고요. 그 중 하나가 백발의 프로그래머죠.”

몇 가지 꿈 중 하나를 털어놓은 김수현은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관심이 많아서 혼자 틈틈이 공부 중”이라며 “제대로 하려면 2년 정도 집중할 시간이 필요한데 아직 못하고 있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꼭 하고 싶어요. 개발하고 싶은 애플리케이션이나 프로그램이 있어서 시작했는데 제대로 공부해서 여러 가지 사회에 필요한 시스템을 개발하고 싶어요. 농민들도, 소비자도 힘들게 하는 지나친 유통과정 등 부조리한 게 너무 많잖아요. 그런 부조리를 프로그램으로 해결하고 싶은 욕망이 있어요. 모든 사람들이 기본적인 의식주가 해결돼 먹고 살 걱정 없이 스스로가 행복한 일,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어요. 언젠간 꼭 도전해볼게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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