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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더컬처] 끊임없는 고민과 질문…연극 ‘킬롤로지’ 김수현 “누군가의 손을 잡아준다는 것”

개인의 삶을 통해 사회 시스템의 문제를 파고드는 게리 오웬의 연극 '킬롤로지', 지난해 초연 이어 재연 무대 오른 알런 역의 김수현
박선희 연출, 김수현·윤석원, 이주승·은해성, 이율·오종혁 출연! 여전한 질문 “설탕 세 스푼” 그리고 어쩌면 완벽한 환상
아버지 그리고 아들, 관계 맺기의 본질 그리고 손을 잡아준다는 것

입력 2019-10-21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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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롤로지 김수현
연극 ‘킬롤로지’ 알란 역의 김수현(사진=강시열 작가)

 

“분명 작가가 의미를 가지고 썼을 텐데 여전히 명확하게 잡히지 않는 단어들이 되게 많아요. 저희들끼리는 가능성 있는 몇 개의 의미를 약속하고 공연 중이긴 해요. 하지만 막상 답이 뭐냐고 하면 설명이 어려운 단어 혹은 키워드들이죠.”

연극 ‘킬롤로지’(11월 17일까지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2관)에서 아들을 잃은 아버지 알런을 연기 중인 배우 김수현은 “작가가 이러길 바란 건지, 저러길 바란 건지 모르겠는 부분들이 여전히 너무 많다”며 “그래서 계속 질문을 던지게 되고 더 많이 생각하게 되는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연극 ‘킬롤로지’는 개인의 삶을 통해 사회 시스템의 문제를 파고드는 게리 오웬 작품으로 2017년 영국 로얄 코트에서 처음 무대에 올랐고 한국에서는 지난해 초연됐다. 게임 킬롤로지와 똑같은 방식으로 살해당한 16세 소년 데이비(이주승·은해성, 이하 시즌합류 순)와 그의 아버지 알란(김수현·윤석원), 킬롤로지 개발사 CEO 폴(이율·오종혁)이 저마다의 독백으로 미디어 폭력, 학교 폭력, 사회 부조리 등을 아우른다. 

 

킬롤로지 김수현
연극 ‘킬롤로지’ 알란 역의 김수현(사진제공=연극열전)
“초연 때는 가방에서 꺼내는 도구 순서까지 정했어요. 감정적으로 불안하다보니 어떤 이상한 실수도 하면 안되겠다는 마음에 이 마디를 할 때는 이걸 꺼내고 이 말을 할 때는 이걸 꺼내는 식으로 완벽하게 세팅을 해놓고 들어갔죠. 하지만 재연을 하면서는 정서와 느낌은 지키되 표현은 정해놓지 말고 느끼는대로 충만하게 해보자 마음 먹었어요. 가방 안에서 꺼내는 연장의 순서도 그날그날 다르고 어떤 때는 3개를 한꺼번에 꺼내기도 해요. 놓는 위치도 다르죠.”


◇꼭 짚어야 할 말들에 대한 고민

“재연 처음 연습을 시작할 때 (박선희) 연출이 두 가지 측면에서 다르게 해보고 싶다는 말을 했어요. 초연에서 너무 감정을 과잉으로 쓴 것 아니냐, 대본을 번역하고 윤색하는 과정에서 오역까지는 아니지만 해석의 오류가 있는 부분을 손보면 좋겠다, 두 가지였죠.”

이어 김수현은 “그래서 초연에서 빼고 갔던 대사 추가가 많았고 수정도 좀 있었다”며 “같은 내용이라도 의미하는 바가 뭔가 고민하는 건 괜찮은데 말 자체가 ‘이게 지금 뭐라는 거야’ 하는 건 없기를 바랐다”고 털어놓았다.

“혹시나 놓치고 가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싶어 초연 때부터 원 대본을 그때그때 참조해서 보기도 했어요. 영어 잘하시는 분께 묻고 또 물어서 제 대사만이라도 단어 느낌을 좀 바꾸고 싶었어요. 관객 입장에서는 확 다르게 인지되는 건 아닌데 켜켜이 쌓여서 다가가기를 바랐거든요.

그리곤 “예를 들면 생각보다 말이 엄청 분절돼 있다. 대본 원본에도 띄어쓰기가 굉장히 많다”며 “영어 잘하는 분들을 몇분 모셔서 ‘시적으로 얘기하는 거냐’ 물었더니 ‘일상적으로 말하는 방식’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이어 “무슨 의도인지 계속 띄어서 시 쓰듯 써둔 대본이라 우리 말로 번역하니 다 쪼개져 버렸다”고 덧붙였다.

킬롤로지 김수현
연극 ‘킬롤로지’ 알란 역의 김수현(사진=강시열 작가)

 

“말마다 쉬어가라는 건지, 접속사를 붙여야할지…초연 때도 매일 카페에서 다시 대본을 보면서 말의 의도가 관객들에게 좀 더 편하게 다가가게 조사나 어미를 좀 수정해서 연결시켜야 하지 않나 고민이 많았어요. 옳고 그름의 판단보다는 각자 선택의 문제였죠. 그래서 전 의미가 같아서 붙는 건 끝에 마무리를 안 짓는 방식으로 손을 봤어요. 너무 끊어서 갈 수는 없어서 ‘~했는데’ ‘~했지만’ 식으로 뒷문장으로 넘겨 붙였죠.”

그리곤 첫 대사를 예로 들었다. 김수현은 “첫 대사가 ‘제가 살해할 사람을 기다립니다’인데 원 대본은 ‘살해’라는 단어를 강조하기 위해서 맨 뒤로 빠져있다. ‘저는 기다립니다, 살해할 사람을’ 식”이라고 전했다.

“그걸 살리고 싶었어요. 게다가 ‘살해’는 우리가 편하게 쓰는 말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전 기다립니다, 죽일 사람을’로 바꿨죠. ‘출입통제했다고 사인해주세요’를 ‘사인해주세요, 출입통제했다고’도 그래요. 대본 자체가 중언부언하다 보니 꼭 짚어야 할 중요한 말들이 흘러가는 경우들도 있어요. 말은 편하게 하면서도 의미는 받아들여질 수 있기를 바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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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킬롤로지’ 알란 역의 김수현(사진=강시열 작가)

◇여전한 질문 “설탕 세 스푼” 그리고 어쩌면 완벽한 환상

 

“데이비가 죽고 다시 살아났을 때 관객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게 해야하는 건지…. 알란의 상상이라고 받아들이도록 해야하는지 명쾌하게 살아있다고 생각하게 둬도 좋은 건지, 작가가 일부러 헷갈리게 해둔건지…고민이 너무 많았고 지금도 그래요. 그 상태로 뒤로 가다 보면 아들 데이비를 만나 ‘설탕 3스푼’을 맞닥뜨리게 되죠.”

이렇게 토로한 김수현은 아빠 알란을 자신이 일하는 병원에서 만난 데이비가 “아빠 지금도 차에 설탕 3스푼 넣어요?”라고 묻는 장면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했다. 

 

“뭘 표현하려고 느닷없이 ‘설탕 3스푼’이라고 한 건지, 작가가 무슨 생각으로 쓴 건지 여전히 어렵다”고 말을 보탰다.

“설탕 세 스푼은 할 때마다 온전히 느껴보자 하는데도 여전히 명확히 잡히질 않아요. 이번 공연에서 데이비의 첫 장면에서 처음 깨달은 게 있어요. 막연하게 알란의 증언 속에서, 알란이 아는 범위 내에서 사실에 기초한 데이비를 만들었다고 생각했어요. 알란이 묘사하는 데이비는 일생에 딱 한번 보고 만들어낸 알란의 환상이지만 그래도 데이비의 첫 장면 정도는 되도록 실제로 접했고 들었던 충격적 사건들이 녹아 있는 완전한 사실을 단순히 그렸다고 생각했죠.”

그리곤 “그런데 ‘그게 그 사람을 본 마지막이었어요. 그 뒤로 오랫동안’이라는 데이비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자니 ‘그럼 이것(데이비의 첫 장면)도 사실이 아니잖아’라는 생각이 들면서 완벽한 환상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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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킬롤로지’ 중 아들 데이비 이주승과 아빠 알런 김수현(사진제공=연극열전)

 


이어 “그렇게 ‘그 뒤로 오랫동안’ 하고 나서 데이비는 노숙자처럼 돼서 나타난 저(알란)를 만난다”며 “그래서 ‘설탕 세 스푼’에 생각이 많아졌다”고 덧붙였다. 독백 위주로 풀어가다 대화를 하는 듯한 장면인가 하면 서로의 독백이 묘하게 맞아 떨어지는가 싶기도 하다.

“알란이 만들어낸 환상이던 흐름에서 그 장면은 유독 데이비가 주도하거든요. 데이비가 만들어낸 아빠에 대한 환상인가 싶다가 알란이 만들어낸 환상에 오류가 있나 싶기도 해요. 일부러 만들었다면 데이비에게 뭘 느끼거나 느끼게 하고 싶은 건지 혹은 관객들에게 뭘 설득하려고 한건가…너무 어려운 문제죠. 현실적으로 진짜 오랜만에 만난 부자지간이어도, 환상이라고 해도 말이 되는 교집합이면 좋겠다 싶었어요.”


◇괴로워할 만한 말들, 외면하게 되는 행복한 단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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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킬롤로지’ 알란 역의 김수현(사진=강시열 작가)

 

“머리를 기대오는 따뜻한 (아내) 캐롤의 무게, 옆방에서 잠든 아기 때의 데이비 숨소리 등 저를 안심하게 하거나 따뜻한 말들은 지금의 고통에서 잠깐 잠깐 빠져나가는 수단으로 느껴져요. 그래서 그 본질보다는 오히려 저를 괴롭히는 말들로 다가오죠. 스스로를 벌준다는 느낌으로 생각을 끌고 가는 것 같아요. ‘묵직하게 짓누르는, 나를 잡아주는 따뜻한 무게’도 따뜻하다는 느낌보다는 그걸 못해줘서 지금의 비극적 상황이 된 것이라는, ‘중압감’에 무게를 두게 되거든요.”

이렇게 전한 김수현은 “관객들에게 이런 일을 겪었다고 얘기를 해주면서도 고민이 많다”며 “한없이 고통스럽게 표현할 것인지, 최대한 덤덤할 수 있는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공연을 하면 할수록 숙제처럼 어려워지는 것들 투성이”라고 토로했다.

“제가 괴로워할 만한 말들, 감정이 벅차오르는 순간들이 있는데 공연마다 달라요. 어떤 때는 처음 데이비를 인지했다고 느끼고 발견한 장면에서 감정들이 훅 밀려와요. 어떨 때는 막연하게 있다가 ‘난 그걸로 충분해’라는 마지막 말 직전에 훅 밀려오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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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킬롤로지’ 알란 역의 김수현(사진=강시열 작가)
그 순간들에 대해 “대부분 스스로를 벌주는 듯한 장면이나 말들”이라고 덧붙인 김수현은 “(폴의 집에 난입했다가 붙잡혀 서게 된) 법정에서 ‘난 죽일 수가 없었다’ ‘누군가는 폴의 전부를 사랑했을테니까. 어떤 사람이든’이라는 부분에서도 그렇다”고 예를 들었다.

“본능적으로 되게 비겁한 변명이라고 느껴져서 말할 때 되게 불편해요. 그래서 아들에 대한 미안함과 그로 인한 죄책감 등을 떠올리면서 저에게 고통을 주면 마음이 좀 나아져요.”


◇아버지 그리고 아들, 관계 맺기의 본질

“관계 맺기의 종류는 다르지만 엉망진창인 관계라는 본질은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알란과 데이비, 폴과 그의 아버지, 폴과 입양한 아들 에단 등 여러 형태의 부자에 대해 김수현은 이렇게 의견을 밝혔다.

“사실 초연 때는 저희들끼리도 ‘폴의 아빠가 뭐가 문제야?’라는 논란이 많았어요. 정의롭고 올바른 말만 하는 아빠잖아요. 한 사람의 독백에 의해 관객에게 어떤 아빠였을지를 추정하게 하는 극이다 보니 틈틈이 묘사가 들어가는데 독백하는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묘사하느냐에 따라 달라져요. 하지만 결국 인간적으로 관계 맺기에 실패한 건 똑같죠.”

그리곤 “데이비가 8살 여자아이를 만나 자전거를 뺏고 그 꼬마의 아빠와 실랑이하는 장면을 묘사할 때 그 아빠가 무서우면서도 딸 앞이라고 잘난척한다는 말이 그렇게 괴롭다”고 털어놓았다.

“저는 결혼도 안했고 아이도 없으니 그 아빠의 입장을 100% 이해하지는 못해요. 제 안의 한 구석에서는 ‘경험도 안해봤는데’ ‘더 알아야 할 수 있는 거 아냐’ 라면서 계속 싸워대서 너무 괴롭기도 해요. 하지만 저도 아들 입장이고 어려서 저보다 나이 많은 어른들이 보호해줬을 때의 느낌을 알고 있어요. 진짜 무한신뢰를 주는데 데이비는 그걸 처음 보자마자 죽은 거잖아요. 알란으로서는 ‘그런 걸 못해줬나’ 싶어서 너무너무 괴롭죠.”


◇관객의 소중함 “매일 매일 깨닫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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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킬롤로지’ 알란 역의 김수현(사진=강시열 작가)

 

“관객 피드백 중 제일 많은 건 좋아했던 단어들에 대한 아쉬움이에요. 예를 들어 환상 속 데이비의 대사 중에 ‘날씨가 추웠는데 코 끝이 찡하더라고요’가 ‘추워서 혼났는데 아빠는 어떨지’로 바뀌었어요. 추운 날씨 얘기를 하며 아빠를 보고 울컥한 감정을 중의적으로 표현했는데 그냥 날씨 얘기로 끝나버리죠. 마지막 데이비의 대사도 ‘이게 공평해?’에서 ‘이게 말이 돼?’로 바뀌고….”

관객들이 전하는 재연의 아쉬움을 언급한 김수현은 초연과는 달라진 무대 위 기둥에 대해서도 설명을 보탰다. 그는 “기둥을 세우자는 논의의 시작은 관객과의 거리 좁히기”였다고 귀띔했다.

“애초 이 대본을 읽었을 때 관객과의 거리가 좀더 가깝길 바랐어요. 사적인 이야기를 일대일로 전하는 것처럼 관객들을 끌어들이고 싶은데 무대 자체가 넓고 확실히 분리돼 있어서 말을 자꾸 쏘게 되는 게 아쉬웠거든요. 그래서 벽을 경사지게도 해보고 뒤를 막아보고도 했지만 결국 무대는 그대로 써야한다는 결정을 내렸어요. 그래서 기둥을 세워 시각선을 완전 좁혀보자 했죠.”

하지만 기둥을 세움으로서 캐릭터 간의 거리까지 멀어져 또 다른 고민을 야기시키기도 한다. 김수현은 “거리가 멀어져서 집중이 좀 힘들어졌다”며 “기둥 뒤에 앉아있기는 한데 귀를 더 바짝 기울이게 된다”고 털어놓았다. 그 과정 속에서 김수현은 “학교 다닐 때부터 수도 없이 배워온, 배우·희곡과 함께 연극의 3대 요소로 꼽히는 관객의 소중함을 체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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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킬롤로지’ 알란 역의 김수현(사진=강시열 작가)
“제작진이나 배우들이 관객들을 아는 건 굉장히 중요한 일이에요. 우리 의도와는 상관없이 관객이 보는 시각이 완전히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있고 그를 알아감으로서 새삼 고민해야할 부분들이 생겨나곤 하거든요. 관객들이, 그들의 시각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걸 매일매일 깨닫고 있죠.”


◇손을 잡아준다는 것

“극 중 ‘내가 손을 잡아줬더라면 될 수도 있었던 데이비를 상상한다’는 말을 할 때면 항상 제(알란)가 지금까지 겪은 고통의 모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로 인해 벌어진 일, 그에 대한 후회 등으로 너무너무 고통스럽죠.”

그럼에도 이 극이 전하고자하는 메시지에 대해 김수현은 “잘 살자”라며 “세상 안에서 많은 문제들이 일어나지만 본질적으로는 사람의 문제”라고 밝혔다.

“항상 생각하고 생각하고 생각하다 보면 결국 ‘우린 왜 이렇게 살고 있는거지’라는 질문을 하게 되거든요. 그 연장선상에서 인간이 인간답게 관계 맺기를 하면서 살아가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진짜 어렵구나를 깨닫게 되는 것 같아요. 어려서는 못느꼈는데 생존을 위해 우뚝 서야하는 시점이 오면 이해관계가 너무 복잡해지거든요. 너무 이상적인 말이라는 것도 알아요. 하지만 가장 작은 단위의 가족이라도 서로 손을 잡아주면 좋겠어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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