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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이런 핏빛 액션이라면 언제든 환영! ‘건파우더 밀크셰이크’

[Culture Board] 영화 '건파우더 밀크셰이크'가 주는 통괘함
40대 배우들이 가진 노련한 액션본능 슬로우 화면으로 완성

입력 2021-09-08 19:00 | 신문게재 2021-09-09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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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건파우더 밀크세이크’(사진제공=CJ ENM)

 

영화를 보다 보면 ‘주연 같아 보이는 조연’이 눈에 띈다. 비중은 적지만 매력과 존재감이 주연을 위협하는 이들이다. 영화 ‘어벤져스’의 네뷸라와 ‘블랙 팬서’의 라몬다, ‘왕좌의 게임’ 세르세이 등이 그 주인공이다.  


언니와 아들 혹은 남편에 의해 가려진 이들이 영화 ‘건파우더 밀크셰이크’로 뭉쳤다. 여기에 ‘신 시티’의 영원한 루시 칼라 구가노와 영화 ‘마이 스파이’에서 깜찍함으로  WWE 프로 레슬러인 데이브 바티스타를 누른 클로에 콜맨도 맹활약한다. 이제는 홍콩 액션 스타가 아닌 ‘미셸 여’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양자경도 반가움을 더한다.

설정만 보면 여성판 ‘존 윅’이 아닐까 싶다. 킬러들이 대거 등장하고 회사의 지시를 어기면 어김없이 그들의 표적이 된다. 총을 소지하지 않아야만 들어갈 수 있는 곳(호텔이 아닌 식당)에서 뼈와 살이 갈리고 케첩 같은 피가 튄다. 영화는 전설의 킬러였으나 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엄마를 증오하며 자란 샘(카렌 길런)의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CJ ENM
영화 ‘건파우더 밀크세이크’의 공식포스터.청소년관람불가 등급으로 러닝타임 115분으로 다소 긴 편에 속한다.(사진제공=CJ ENM)

밀크셰이크를 마시며 30분만 기다리라던 엄마는 3시간 뒤 피를 뒤집어 쓴 채 등장했다. 그나마 잠시 떠나있겠다는 말만 남기고 15년 째 연락두절이다.

 

샘이 자란 도서관에는 사서 이모들이 회사의 비밀 업무를 대신하며 살고 있었다. 총기류와 신분세탁용 여권, 금괴와 각종 화폐를 구비한 이곳은 안젤라 바셋, 양자경, 칼라 구기노가 각각 장도리, 쇠사슬, 기관총을 이용한 자신만의 특출한 액션본능을 숨긴 채 살고 있다.


가족 같았던 이들의 관계는 흐른 세월만큼이나 냉랭한 기운이 감돈다. 샘이 엄마에게 느낀 배신감 이상으로 이모들 역시 상처받았던 것. 영화는 주인공이 가진 ‘버려진 아픔’에서 시작된 사소한 오지랖이 가져오는 희생, 피로 이어지지 않은 ‘남’과 맺는 끈끈한 가족애를 아우른다. 

 

사건은 우연히 처리하러 간 범죄현장에서 상대 조직 보스의 아들이 목숨을 잃으면서 시작된다. 샘에게 일처리를 맡겼던 회사는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기로 하고 그의 위치를 노출시킨다.


‘건파우더 밀크셰이크’가 한국판 ‘아저씨’로 바뀌는 지점도 이쯤이다. 같은 시각 납치된 회계사의 딸을 구하러 갔던 주인공은 오합지졸인 킬러들과 납치범을 처리하면서 관객들에게 뒹구는 목과 으깨지는 머리뼈의 향연을 선사한다. 분명 잔인하고 비극적인 상황인데도 이상하게 끌리는 건 영화가 갖춘 팬시한 상황들이다.

칼에 찔린 상처를 꿰매면서 “바느질 중”이라고 말하는 엽기는 기본이다. 잔인하고 섬뜩한 데 전혀 눈이 찌푸러지지 않는다. 당연한 상황을 깨는 요소들도 웃음 포인트다. 팬더 모양의 키즈폰과 캐리어가 피철갑의 무기로 둔갑한다거나 킬러전용 병원의 새하얀 인테리어와 세상 힙한 볼링장이 범죄의 배경이 되는 식이다. 뭔가 차이나타운의 허름한  뒷골목과 알코올 중독의 무면허 의사, 음침하고 외진 공간이 이들의 주요 공간일 거란 관객들의 사고방식을 무참히 깨부순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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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건파우더 밀크셰이크’의 폴 지아마티. 그가 스칼렛과 샘 모녀에게 보여주는 연민과 비겁함은 우리네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대놓고 살갑게 챙기지도,그렇다고 조직을 나갈 수도 없는 비련의 존재.(사진제공=CJ ENM)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칭하지만 내리 낳은 딸 넷보다 아들 하나가 귀했던 사이코 보스의 디테일함도 웃음을 안긴다. 샘을 만난 보스는 정중하고 예의바른 목소리로 “난 약속은 지켜”라며 소녀를 풀어줄 거라 말하지만 “네가 살가죽이 벗겨져 죽는 걸 다 보게 한 뒤”라고 말한다.

다수의 범죄 스릴러 영화를 연출한 나봇 파푸샤도 감독은 MZ세대인 샘의 액션보다 평균연령 45세 배우들이 보여주는 노련함에 더욱 공을 들인 모양새다. 각진 액션을 슬로우로 보여주면서 이들이 가진 몸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게 만든다. 폐가 뚫리고 무릎뼈가 으깨지는 남자배우들의 괴로움 위로 사서이모 3인방과 엄마 스칼렛이 펼치는 마지막 식당총격신은 N차 관람을 부른다.

어쨌거나 이 영화는 자신들을 버린 회사에 제대로 한 방 먹이는 ‘을(乙)들의 향연’에 가깝다. 이들은 기꺼이 조직에 헌신했지만 자신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조직을 제대로 물먹인다. 전세대인 엄마와 이모가 보여준 고루한 복수를 가장 확실하게 끝내는 건 영앤스트롱 킬러인 샘이지만. 8일 개봉.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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