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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죽을 때까지 연주자로” 리듬 인생 23년, 퍼커셔니스트 조재범

[열정으로 사는 사람들] 조재범 퍼커셔니스트

입력 2021-08-09 07:00 | 신문게재 2021-08-09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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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밴드’라고 하면 보컬, 기타, 베이스와 함께 리듬을 담당하는 ‘드럼’이 떠오른다. 하지만 이 리듬을 담당하는 ‘드럼’의 종류가 나라별로 수 백가지가 되며 이들을 ‘퍼커션(Percussion)’으로 부를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얼마 없다.

 

1990년대 군 전역 후 우연히 마주친 퍼커션은 생소했지만, 그렇기에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23년째 한 우물을 파오니 ‘국민가수’가 찾는 사람이 됐고, 그 사이에 퍼커션은 널리 알려져 지금은 많은 후배들이 퍼커션 연주자의 꿈을 키워나가고 있다. “죽을 때까지 연주자로 남고 싶다”는 조재범씨와 함께 지난 여정을 되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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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에 ‘맛’을 첨가하는 사람


조재범씨는 퍼커션을 연주하는 사람이다. 퍼커션은 타악기를 총칭하는 용어로 흔히 알려진 드럼을 포함하며 각 나라마다 종류가 달라 범위가 매우 넓다. 조 씨가 연주할 수 있는 악기도 100개 이상이다. 그의 작업실에는 더 이상 둘 곳이 없고 어디에 뭐가 있는 지 모를 정도로 악기들이 빼곡하다. 그 중에서도 조 씨는 라틴 리듬을 만드는 큐반악기 콩가, 봉고, 카혼, 잼배 등의 악기를 주로 연주하고 있다.

조 씨에게 퍼커션은 음악의 맛을 내는 양념과 같은 악기다. 피아노, 베이스, 기타가 ‘메인음식’이라면 퍼커션은 소금, 후추, 고춧가루, 간장 등으로 비유할 수 있는 양념이라는 것. 조 씨는 “돼지고기에 후추를 치느냐 고추장을 바르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듯이, 어떤 퍼커션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음악의 맛이 달라진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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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퍼커션’ 외길 23년… 없어서는 안 될 연주자로

조 씨는 퍼커션과 함께 음반 녹음뿐만 아니라 아이유, 김범수, 이소라, 성시경, 백지영 등 전 국민에게 사랑받는 굵직한 가수들의 공연에 참여했다. 또 ‘나는 가수다’ ‘이소라의 프로포즈’ ‘유희열의 스케치북’ 등 공중파를 넘나드는 다양한 프로그램의 하우스 밴드에서도 퍼커션을 연주했다. 드렁큰타이거, 다이나믹듀오, 자이언티 등 힙합 장르에서도 연주를 하지만 교회에서는 CCM 음악을 연주하기도 하는 등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현재 ‘싱어게인’ 전국 투어를 한 회차 남겨두고 코로나19로 연기돼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조 씨는 군 복무를 막 마친 24살에 퍼커션을 처음 마주했다. 그는 “드럼을 배우러 간 찬양학교에서 찬양팀을 같이 하자는 제의를 받았는데, 한 밴드에 드럼 연주자가 두 명일 수 없어 퍼커선 연주를 제안 받았다”고 떠올렸다. 1990년대의 퍼커션은 지금보다 더욱 생소했다. 그는 “그래서 더욱 관심이 갔다”고 회고했다.

이후 호산나 인터그리티(Hosanna Integrity) 레이블 론캐논이 연주했던 ‘Sing out’에 완전히 매료돼 퍼커션에 푹 빠졌다. 그는 “당시 ‘배철수의 7080’ 세션을 맡았던 정휘영 선생님을 만나 퍼커션의 재미와 지식을 습득할 수 있었다”며 “지금 생각해보면 모든 상황들이 기회이자 행운이었다.” 그렇게 퍼커션과 함께 해온 세월이 벌써 23년째다.

조 씨가 퍼커션을 처음 마주했던 1990년대에는 퍼커션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기관이 없어 혼자 비디오를 보며 독학해야 했다. 그러나 2020년대에 접어든 현재는 각종 방송 프로그램 등을 계기로 퍼커션이 널리 알려져있다. 조 씨는 학교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퍼커션을 가르치며 후배를 양성하고 있다.



◇ 관객의 함성은 연주의 원동력

조 씨가 처음 큰 규모에 올라선 건 그룹 ‘노을’의 공연이다. 첫 공연은 많이 설레었지만 열심히 준비한 만큼 무사히 마쳤다. 이후 가수 임정희의 공연에 다수 참여하면서 경력을 쌓아왔다. 굵직한 공연들이 쌓이는 만큼 사건사고도 많았다. 추락사고가 발생하기도 했고, 퍼포먼스에서 기계 결함으로 다소 민망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그 중에서도 조 씨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은 2019년에 열렸던 가수 아이유의 ‘2019 IU TOUR IN MANILA’다. 연주자들은 소리를 모니터하기 위해 인이어를 꽂아 외부소리를 차단하는데, 관객들의 함성이 아주 커서 인이어 안으로 뚫고 들어왔다는 것. 조 씨는 “연주 시작 전 숫자를 세는 카운팅 소리가 묻힐 정도였다”고 말했다. 그는 “감동적이기도 했고 의아하기도 했다”고 돌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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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캡쳐화면

 


◇ 음악 인생 길 열어준 나의 그룹

조 씨는 밴드 ‘커먼그라운드’와 ‘라 이슬라 보니따’에서도 활동 중이다. 커먼그라운드는 12명으로 구성됐으며 이름 뜻은 ‘만장일치’다. 2004년에 데뷔한 후 펑크뮤직 그룹으로 방송을 비롯한 다양한 활동들을 이어나갔다. 조 씨는 “알아봐주시는 분들이 많이 생기면서 퍼커션 연주가 필요할 때 불러주기도 했다”며 “음악인생의 길을 열어준 모태와도 같은 그룹”이라고 설명했다. ‘라 이슬라 보니따’는 커먼그라운드 활동 4년 뒤인 2008년에 결성됐으며, ‘아름다운 섬’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음악에 아름다운 섬에서 들을 수 있는 풍경을 담고 이를 공유하자는 취지에서 결성했다. 그는 “커먼그라운드에 비해 대외적인 활동을 많이 하지 않아 덜 알려졌지만 마니아층이 형성돼있다”고 말했다.

커먼그라운드와 라 이슬라 보니따는 조 씨에게 호흡이다. 세션으로 참여해야 하는 활동은 맞춰야 하는 음악이지만, 두 밴드에서 하는 음악은 조 씨가 주도적으로 음악적인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는 “두 밴드는 에너지의 창고이자 내 음악 인생을 지속하도록 도와주는 원동력”이라고 표현했다.

조 씨는 유튜브 ‘조재범TV’ 채널에 공연 현장과 악기를 소개하는 영상을 올리고 있다. 지금은 코로나19로 공연하기 어려워졌지만, 다시 무대에 오를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는 “무대에서 연주하는 것만큼 즐거운 일은 없다”며 “죽을 때까지 연주자로 남고싶다”고 힘줘 말했다.


이은혜 기자 chesed71@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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