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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제칼럼] 도그마가 된 원자력, 진화론적 접근이 필요할 때

입력 2022-07-2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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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혁우 배재대학교 교수
원자력은 친환경에너지일까, 아닐까. 석유에너지도 아니고 이산화탄소 배출도 덜 하니 지구온난화 주범은 아니다. 그래도 스리마일과 체르노빌,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의 강력한 기억은 원자력에 친환경 딱지를 붙이기 망설여지게 만든다. 더구나 원자력발전 폐기물은 또 다른 골칫거리이다. 고준위 방폐장은 아직 세계에 하나도 없다. 알쏭달쏭하다. 이런 골치를 없애는 쉬운 방법이 있다. 원자력을 녹색에너지, 혹은 전환에너지로 분류해 버리는 거다. 분류는 복잡한 문제도 단순하게 만드는 마법이 있다.

지난 7월 7일. 우여곡절 끝에 유럽연합 본회의에서는 원자력 발전을 녹색에너지로 분류하기로 결정했다. 2주 전 경제통화 상임위원회와 환경보건식품안전 상임위원회에서의 녹색에너지 제외 결정을 되돌린 것이다. 유럽연합 본회의의 이번 결정에 따라 적어도 2045년까지는 건설허가가 난 원자력 발전은 친환경으로 간주된다.

국내에선 어떨까? 문재인 정부 말, 지난 연말 환경부가 발표한 한국형 녹색분류체계 지침서에는 원자력 발전을 녹색 경제활동에서 제외했다. 같은 원자력 발전을 두고 유럽연합과 우리나라가 다른 판단을 한 거다. 정권이 바뀌고 윤석열 정부는 이것을 다시 녹색에너지로 포함시키려 방침을 세웠다.

이를 두고 사회에선 이런 쓸데없는 논란도 벌어진다. “원자력이 친환경이라잖아, 친환경 에너지 원자력은 잘 사용해야지, 도대체 왜, 탈핵이니, 반원이니 그러는지 모르겠군.” 혹은 “원자력이 누가 친환경이래, 유럽연합에서 원자력을 녹색투자로 분류한 건, 2045년까지 건설허가 난 것에 대한 거지, 그걸 더 활성화하고 더 많이 지으라는 건 아니잖아?” 원자력을 두고 벌어진 우리사회, 아니 세계 사회의 오랜 논쟁이다.

그래서 원자력은 도대체 친환경일까, 아닐까? 답은 ‘원자력은 친환경 에너지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이다. 어떤 에너지가 친환경일까, 아닐까란 문제는 세상에서 인간의 씀씀이, 기술의 발전, 경제상황에 따라 지속적으로 다시 정의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온 산을 민둥산을 만들어 땔감을 때던 시절, 석탄은 우리강산 산림녹화를 가능하게 해 준 녹색에너지였다. 반면 석탄에너지의 미세먼지에 비하면 원자력 에너지가 더 청정해 보인다.

물론 방사능의 위험은 여전하다. 더 새로운 친환경 에너지 개발이 필요한 거다. 그래서 지금 세계 학자들은 핵융합 발전을 가속화시키고 수소에너지도 열심히 연구하고 있다. 요컨대 어떤 에너지가 친환경 에너지인지는 진화적으로 결정되는 것이다.

여기서 좀 오래된 얘기하나. 향유고래에서 도시를 밝힐 연료를 얻었던 시절이 있었다. 큰 놈이라도 잡으면 50통을 얻을 수 있었다. 2000통을 목표로 에섹스호가 출발했다. 은행의 든든한 자금도 있었다. 고위험 투자사업, 어쩌다 향유고래 무리를 잘 만나 40마리만 사냥하면 돈방석에 앉을 수 있었다. 이게 1820년 영화 ‘인더하트오브더씨(In the heart of the sea)’ 얘기다.

향유고래 잡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 년이나 고래를 못 본 채 바다 위를 헤매기도 하고, 어쩌다 발견한 고래라도 이 힘 센 놈을 잡는 건 언제나 죽음을 담보로 한 일이었다. 에섹스 호 선원도 잘못 걸렸다. 거의 다 죽고, 아주 일부가 죽은 동료의 살을 먹고 버티며 죽음 직전 운 좋게 구조될 수 있었다. 이때 생명을 건진 에섹스호 막내 선원은 평생을 자기 세상 속에만 갇혀 있었다. 동료의 시신을 먹고 살아남았다는 비밀을 세상에 내 놓을 수 없었고, 자신이 그렇게 살아남았다는 것에 대한 존재론적 갈등이 컸던 거다.

1850년, 30년 만에 찾아온 작가와 이제는 노인이 된 막내 선원의 마지막 대화가 인상적이다. “선생님, 1년 전부턴 서부 땅에서 기름이 쏟아진다고 합니다.”, “그럴 리가, 그러면 얼마나 좋겠어.” 1820년엔 향유고래 포경이 기름 대량 생산의 주요 산업이었다. 이 시대 사람들은 30년도 안 돼서 기름을 구하느라 이렇게 힘들고 위험하고, 투자위험도 큰 사업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당연히 알지 못했다. 지금 와서 보면 석유가 발견되며 향유고래기름 생산 산업이 사라지는 건 시간문제였는데도 말이다.

인간은 미래를 모르면서 현재를 판단하고 논쟁한다. 원자력이 회색이듯, 향유고래기름도 회색이다. 인간에게도 향유고래에게도 위험한 에너지 향유고래기름은 도시 전체를 밝혀주는 최신의 에너지였다. 그런데 이제 그런 시대는 없다. 기술발전으로 향유고래기름은 더 이상 쓰지 않기 때문이다. 그만큼 향유고래도 안전해졌다.

원자력 발전도 마찬가지이다. 원자력은 앞으로도 한참은 더 쓸 수밖에 없는 에너지이다. 원자력을 그린 택소노미에 포함시킨 것도 이를 인정했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난에 직면한 독일 등 유럽국가의 형편도 역할을 했다. 그린 택소노미는 어떤 에너지가 환경과 조화롭고 지속가능한지를 검토한 것으로, 친환경 분야 투자지침으로 쓰인다.

원자력은 물론 위험한 에너지다. 불안한 부분을 계속 보완해가며 사용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와 동시에 대안적 에너지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도 당연하다. 그리고 이제 대안적 에너지가 경쟁력이 원자력을 대체할 만큼의 경쟁력이 생기면 원자력의 시대도 마감 될 것이다. 그때, 원자력은 그린 텍소노미에서 확실히 제외될 수 있을 것이다. 경쟁력 있는 에너지를 두고 굳이 원자력에 투자할 이유가 없을 테니까 말이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카멜레온의 생존능력은 인간에게도 필요하다. 현재 수준이라도 유지하려면 적응해야 하고, 조금이라도 더 잘 살려면 진화해야 한다. 자전거 타기처럼 말이다. 계속 패들을 굴러야 넘어지지 않고, 다단기어를 발명해 붙여야 더 편하게 탈 수 있다. 다단기어의 탁월함이란 웬만한 오르막도 오를 수 있게 해 준다는 거다. 그 결과로 인간은 조금씩 변덕스런 환경변화에서 자유로워졌다. 그래서 다시 원자력 정책에도 도그마를 버리고, 진화적 사고를 수용해야 한다.

 

이혁우 배재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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