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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엔딩’ 없는 장편소설 '양성원'…"음악활동은 계속 쓰는 내 삶의 챕터”

[허미선 기자의 컬처스케이프]첼리스트 양성원

입력 2022-08-26 18:30 | 신문게재 2022-08-26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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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원
첼리스트 양성원(사진제공=마스트미디어)

 

“음악활동은 끝이 없이 계속 쓰는 삶의 챕터들로 이뤄진 장편소설 같아요. 그 챕터들은 첼리스트로서, 음악가로서 음악적인 이상을 꿈꾸는 과정에서 나오는 결과물들이죠. 녹음과 앨범만이 챕터는 아닙니다. 제가 해온 공연들, 프로그램들, 어느 장소에서 누군가를 어떻게, 어떤 식으로든 음악적으로 만나는 것도 역시 제 삶의 챕터죠.”

첼리스트 양성원은 자신의 음악활동을 “엔딩이 없는 장편소설”이라고 정의했다. 그의 설명처럼 “서문에 이어 졸탄 코다이(Zoltan Kodaly),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Sergei Rachmaninoff),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 토닌 드보르작(Antonin Dvorak) 등의 챕터들로 이뤄진” 장편소설 ‘양성원’에 이번엔 ‘베토벤: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작품 전곡집’(Beethoven Complete Works For Cello and Piano, 이하 베토벤 전곡집)이라는 또 하나의 챕터가 추가됐다.  

 

양성원
첼리스트 양성원과 10년지기 파트너 피아니스트 엔리코 파체의 ‘베토벤: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작품 전곡집’ 커버(사진제공=유니버설뮤직)

데카와 23일 발매한 ‘베토벤 전곡집’은 2007년 EMI에서 발표한 첫 번째 베토벤 첼로 작품 전곡집 이후 15년만이다.

 

그의 두 번째 ‘베토벤 전곡집’에는 첼로소나타(Cello Sonata) 1~5번을 비롯해 베토벤이 첼로와 피아노를 위해 작곡한 8개의 곡과 양성원이 앙코르로 주로 연주하던 ‘소나티네’(Sonatina in C minor WoO 43a)도 담겼다.

저음선인 G와 C를 거트 현(양의 창자를 꼬아 만든 현)으로 연주한 이번 앨범에서는 소나타와 ‘소나티네’ 외에도 헨델의 오라토리오 ‘유다스 마카베우스’ 중 ‘보아라, 용사가 돌아온다’ 주제에 의한 12개의 변주곡(12 Variations in G major on “See, the conqu’ring hero comes” from Handel’s Oratorio Judas Maccabaeus WoO 45)과 모차르트 오페라 ‘마술피리’ 중 ‘연인이냐 아내냐’ 주제에 의한 12개의 변주곡(12 Variations in F major on “Ein Madchen oder Weibchen” from Mozart’s opera Die Zauberflote Op. 66), ‘마술피리’ 중 ‘사랑을 느끼는 남자들은’ 주제에 의한 7가지 변주곡(7 Variations in E flat major on “Bei Mannern, welche Liebe fuhlen” from Mozart’s opera Die Zauberflote WoO 46)이 실렸다.

“이번 앨범을 위해서 다양한 출판사 버전의 악보들을 구해 연주했어요. 헨리(G. Henle Verlag), 페터스(Peters), 베렌라이터(Barenreiter), 비너 울텍스트(Wiener Urtext) 그리고 베토벤 본인 필사본 악보까지 찾아보고 연주했죠. 음악을 이해하는 만큼 결과물이 다양해지기 때문에 굉장히 여러 각도로 녹음을 했고 연주 역시 그렇게 하고 있어요.”


◇장편소설 ‘양성원’. 또 하나의 챕터 ‘두 번째 베토벤’

양성원
첼리스트 양성원(사진제공=유니버설뮤직)

 

“15년 전에 비하면 훨씬 더 친근해졌달까요. 베토벤의 작품들은 젊어서 이해하기 어려운 곡들이에요. 이제야 자연스럽게 이해하며 연주하게 됐죠. 훨씬 더 편해지고 친근해지고 자연스러워지면서 좋은 에너지가 치솟는 걸 느껴요. 그 에너지를 느끼면서 연주한다는 게 지금에서나 가능해진 것 같아요.”

양성원은 그 에너지에 대해 “음악과 내가 하나가 됐을 때 느껴지는 굉장히 긍정적인 에너지”라며 “베토벤과 그의 작품들은 수많은 어려움을 음악적으로 이겨낸 작곡가고 곡들이다. 그래서 예전에는 힘겨웠다면 지금은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는 느낌이다. 그랬을 적에 굉장히 긍정적인 힘이 치솟는다”고 털어놓았다. 

 

양성원
첼리스트 양성원(사진제공=마스트미디어)
“깊이 있는 프로그램과 주제를 가지고 많은 분들을 다양한 장소에서 만나는 게 참 좋아요. 해외에서도 여러 공연들을 하고 있는데 공연 수나 공연장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 제가 음악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또 나눌 수 있는지가 중요하죠. 그렇게 음악을 나누는 과정에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고 생각해요. 베토벤이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까지 어떤 이상을 추구했는지를 공유하는 만남이죠.”

양성원은 “그 이상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청중들과 하나가 되는 순간들이 느껴질 때가 있다”며 “그 순간이 이 음악들의 궁극적인 챕터를 마무리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래서 그 만남을, 음악활동을 진짜 잘 준비해야 해요. 굳이 엄선된 장소, 화려하고 잘 알려진 홀 뿐이 아닙니다. 제가 추구하는 이상을 만나고 싶어하는 청중들이 있다면, 그들 앞에서 연주해 하나가 되는 순간들을 경험할 수 있다면 어디든 좋아요. 베토벤의 정신, 베토벤의 음악 세계와 만나는 순간들이 조금이라도 더 많아진다면 그보다 더 좋고 뜻깊은 일이 없죠.”

이는 그가 지휘에 본격적으로 도전한 이유기도 하다. 최근 양성원은 폐쇄된 공장을 개조한 독일 코블렌츠의 문화예술공연장에서 열린 음악 축제 중 드보르작 콘서트에서 ‘현을 위한 세레나데 E장조 OP. 22’(Serenade For String Orchestra in E major, Op.22)를 지휘하고 ‘첼로 협주곡’(Concerto for Cello)을 협연했다.

“굉장히 흥미로운 작업이었어요. 워낙 무대에 오르면 상당히 떠는 사람인데 지휘자로서와 첼리스트로서 떠는 건 좀 달라서 저 자신도 깜짝 놀랐죠. 지휘를 시작한 계기가 베토벤 심포니(Symphony, 교향곡)를 연주하고 싶어서예요. 베토벤 심포니 전곡집을 녹음할 수도 있고 녹음이 아니라도 연주할 수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완벽과 이상 사이, 다시 도전하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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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리스트 양성원의 10년지기 파트너인 피아니스트 엔리코 파체(사진제공=유니버설뮤직)

 

“엔리코 파체(Enrico Pace)와는 10년째 같이 연주하고 있는데 음악을 대하는 태도가 비슷해요. 음악 앞에서 겸손하거든요. ‘우리는 초보’라는 태도로 한도 끝도 없이 탐구할 수 있는 겸손함이요.”

이번 ‘베토벤 전곡집’의 파트너 역시 피아니스트 엔리코 파체(Enrico Pace)다. 그는 “동갑내기” 엔리코 파체에 대해 “현존하는 최고 음악가 중 하나”이자 “기막힌 음악가이자 수도자 같은 인품을 가진 피아니스트”라고 극찬했다.

“엔리코와 리허설을 할 때는 아침에 만나는 시간을 정하지 끝나는 시간은 정하지 않아요. 주로 아침에 만나 저녁식사를 함께 하는데 그 저녁식사 시간을 알 수 없는 피아니스트죠. 그와 함께 탐구하는 시간이 너무 좋고 즐겁고 흥미로워요. 이런 기막힌 음악가와 연주하는 게 육체적으로는 괴롭지만 음악적으로는 만족스럽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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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리스트 양성원(오른쪽)과 10년지기 파트너인 피아니스트 엔리코 파체(사진제공=유니버설뮤직)

 

솔리스트로, 실내악 주자로,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자로 그리고 지휘자로 음악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양성원은 “음악을 통해 배우고 그 배움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과정이라는 데서는 같다”며 “물론 연주하는 곡목들은 다르지만 그 곡을 쓴 작곡가들과의 만남, 그 만남에서의 배움, 그 배움을 청중과 공유하는 과정은 같다”고 밝혔다.


“그야말로 19세기 감성을 복원해놓은 아카이브가 바로 음악이 아닐까 싶어요. 음악을 함으로써 그때 당시의 감성, 철학, 추구했던 이상을 이해하게끔 하는 아카이브를 나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악기가 변화되고 제가 지휘봉을 잡더라도 그 추구함은 같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추구하는 과정은 완벽과 이상, 그 사이에 존재하는 결과물을 내곤 한다. 이에 대해 양성원은 “완벽 보다는 이상을 추구한다”며 “완벽에는 도달할 수 있지만 이상은 그렇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이상을 추구하는 과정에서는 항상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그 아쉬움이 또 다시 도전하게 하죠. 그 아쉬움이라는 게 있어야 역시 아름다움도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클래식 뿐 아니라 모든 음악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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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리스트 양성원(사진제공=마스트미디어)

“클래식만이 아니라 음악은 중요합니다. 모든 음악은 리듬으로 시작됐어요. 그 하나의 리듬이 지금은 매우 다양한 음악들이 됐죠. 그래서 어떤 음악이든 우리 사회에, 우리 개개인의 삶에 긍정적인 보탬이 된다고 생각해요. 꿈을 갖게 되고 더 좋은 삶을 추구하게 하거든요. 어느 음악이나 그래요. 그래서 음악은 우리 인류에 그리고 인류의 위대한 유산이죠.”


이어 “그 중 클래식은 2~3분짜리 영상, 트랙들을 많이 보고 듣는 시대, 너무나도 빨리 바뀌는 사회에서 그야말로 천천히 갈 수 있게 하는 데 아주 중요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어차피 하루는 24시간이에요. 그리고 그 24시간은 어차피 흐르죠. 빨리 가든, 천천히 가든, 30분짜리 교향곡 하나를 듣든, 2, 3분짜리 영상이나 트랙들 보고 듣든 같아요. 어차피 하루는 가는데 40분, 1시간짜리 클래식, 우리 인류 유산의 아주 중요한 곡들과 연결되는 순간을 맞이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이같은 음악론을 전한 양성원은 2009년 그를 비롯한 바이올리니스트 올리비에 샤를리에(Olivier Charlier), 피아니스트 엠마누엘 슈트로세(Emmanuel Strosser) 등 3명의 파리음악원 출신 연주자들이 결성해 지금까지 활동 중인 트리오 오원, 그들이 주최하는 오원 페스티벌 등 실내악 연주에 유독 진심인 연주자이기도 하다.

“실내악 작품들은 작곡가들이 가장 소중하게 여겼던 작품들이에요. 작곡가들의 내성을 가장 잘 그려낸 것 역시 실내악곡들이죠. 작곡가들의 언어, 마음, 감정 등을 가장 솔직하게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저희들끼리는 실내악을 통해 작곡가들과 더 가까워진다고들 하죠. 악기를 떠나 음악을 표현하는 데 실내악 보다 더 좋은 곡들은 없어요. 악기는 한계가 존재하지만 음악의 세계는 무한하거든요.”

이어 “기악적이 아니라 인간적으로 느끼고 표현할 수 있는 게 실내악 곡들”이라고 실내악의 중요성을 강조한 양성원은 “연주되는 곡들이 훨씬 더 다양해져야 한다. 더불어 같은 곡을 다양한 각도로 연주되기도 해야 한다. 현대곡들도 자주 연주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털어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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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리스트 양성원(사진제공=유니버설뮤직)

 

“대극장, 유명 극장뿐 아니라 소극장 더 나아가 뜻밖의 장소에서도 연주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미술관의 테마와 어우러져 시각적인 예술과 청각적인 음악의 만남이 이뤄지는 식으로요.”

 

그가 포용하는 것은 비단 타종 음악 뿐 아니라 다양한 학문, 현상 등도 포함된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워낙 책 사는 걸 좋아해 수년간 읽지는 못하고 쌓아두기만 하던 책들을 꽤 많이 읽었다”고 할 정도로 그는 지적인 음악가다.

트리오 오원과 그들이 주최하는 페스티벌 오원, 프랑스의 페스티벌 베토벤 드 보네 등의 예술감독인 음악인이자 연세대 음대 교수. 영국 런던의 왕립음악원(RAM) 초빙교수로 재직 중인 교육자이기도 한 그는 “더 훌륭한 음악가가 되기 위해서는 내 자신의 삶을 넓히고 깊이 추구하라고 스승들에게 배웠고 그것을 고스란히 제 제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고 밝혔다.

“무엇을 표현하고자했는지, 음악가로서의 어떤 마인드를 가져야 하는지, 어떤 역사적·문화적·예술적 궁금증이 있어야 하는지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음악 뿐 아니라 다른 예술 장르까지 넓게 고민하고 중장기적으로 생각하라고 강조하는 편이에요. 그만큼 지식이 넓어지고 살아가는 데 옵션이 풍부해진다는 의미거든요.”


◇코로나 팬데믹? 미뤄뒀던 꿈을 이룰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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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리스트 양성원(사진제공=마스트미디어)

 

“코로나 팬데믹은 사실 아무 것도 아니에요. 역사적으로 봤을 때 인류는 그 보다 더한 것들도 이겨내며 잘 살아왔어요. 손 쓸 수 없는 자연재해, 전쟁 등에서 인류는 진화를 거듭했고 그 어려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중요한 건 어떤 태도로 어떻게 잘 지낼 것인가죠.”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시대에 대해 이렇게 전한 양성원은 “처음에야 몰라서 패닉했지만 이제는 스스로 잘 헤쳐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을 보탰다.

“이럴 때일수록 개개인이 추구하는 가치가 있어야 해요. 그 가치는 이상을 높이는 데서 발휘되죠. 미뤄뒀던 꿈들을 다시 끄집어내 스스로를 업그레이드를 시킬 시간들을 가질 수 있었죠. 그래서 전 앨범을 녹음했고 지휘를 본격적으로 공부하면서 참 좋은 시간을 보냈어요. 그렇게 또 제 이상을 좀더 높일 수 있었죠.”

마에스트로 한스 그라프(Hans Graf)가 이끄는 런던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녹음한 엘가, 슈만의 협주곡 등의 후시작업 중인 양성원은 ‘베토벤 전곡집’ 앨범 발매와 더불어 9월 23일 부산부터 통영(9월 25일), 대전(9월 27일), 서울(9월 29일), 여수(10월 1일) 등에서 리사이틀 투어, 그가 7년째 함께 하고 있는 여수 예울마루 실내악 축제(10월 13~16일) 등으로 장편소설 ‘양성원’의 또 다른 챕터를 쓰기 시작했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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