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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연극 ‘파우스트’ 메피스토 박해수 “악의 평범성, 결국 사람”

[人더컬처] 5년만에 연극 무대로… '파우스트' 메피스토 박해수

입력 2023-04-10 18:30 | 신문게재 2023-04-11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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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파우스트’ 메피스토로 5년만에 연극무대에 선 박해수(사진제공=BH엔터테인먼트)

 

“제 아내는 제 연극을 아직 못 봤습니다. 연극배우로 무대에 서 있는 저를 본 적이 없죠.”


그도 그럴 것이 무려 5년만이다. ‘오징어게임’ ‘수리남’ ‘슬기로운 감빵생활’ 등을 통해 전세계가 주목하는 배우로 자리매김한 박해수가 ‘파우스트’(4월 29일까지 LG아트센터 시그니처홀)의 메피스토로 5년만에 연극무대로 돌아왔다.

2020년 ‘김주원의 사군자_생의 계절’이라는 융합극에 출연하기도 했지만 연극 무대는 그가 결혼한 2019년 이전인 2018년 ‘낫심’ 이후 5년 만이다. ‘낫심’은 강연 혹은 관객과의 대화 형식을 띤 즉흥극이자 이머시브 모노극이니 상대배우와 대사를 주고받는 모습으로 따지자면 2017년 ‘남자충동’까지 거슬러 올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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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파우스트’ 메피스토로 5년만에 연극무대에 선 박해수(사진제공=LG아트센터, ㈜샘컴퍼니, ㈜ARTEC)
그렇게 오랜만에 연극 ‘파우스트’ 메피스토로 연극에 복귀한 박해수는 그야말로 ‘종횡무진’ 무대를 누빈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의 동명 희곡을 바탕으로 한 ‘파우스트’는 세상의 모든 지식을 섭렵하고 인간의 한계를 느낀 노학자 파우스트(유인촌)가 악마 메피스토(박해수)와의 계약으로 젊어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현세의 욕망과 쾌락에 사로잡힌 젊은 파우스트(박은석)와 그가 첫눈에 반한 그레첸(원진아)을 통해 사랑과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는 ‘파우스트’는 박해수에게 한풀이에 가깝다. 그는 극 내내 메피스토로 존재하며 5년여를 응축해온 무대적 에너지와 연극을 향한 열정을 여한 없이 쏟아내고 있는 중이다.

“혹시 무대에 서 있는 에너지를 잊지 않았을까 두려움도 좀 있었고 ‘파우스트’라는 작품으로 메피스토라는 캐릭터에 도전해보고 싶기도 했어요. 그리고 양정웅 연출님이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낼지 궁금하기도 했죠.”

오랜만의 복귀에 연습 내내 “즐거운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을 정도로 긴장했고 연습실에 3, 40분가량 일찍 오는 그레첸 원진아가 “언제 가도 10, 20분 차이로 박해수 선배님이 먼저 와 계신다”고 증언(?)할 만큼 설레기도 했다. 비단 박해수, 원진아 뿐 아니다. ‘파우스트’ 관계자 전언에 따르면 “단 한명도 빠짐없이 모든 배우가 텐투텐(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 성실하고 치열하게 연습에 임했다.”

“원래 몸을 풀려고 일찍 오기도 하는데 (아무도 없는) 연습실에 처음 가 있는 그 공기가 좋아요. 아무도 없을 때의 그 공기가 좋아서 일찍 나오곤 했는데 (‘파우스트’ 연습실에는) 아무도 없질 않아요. 항상 누군가 와 있죠.”


◇악의 평범성에 집중한 박해수의 메피스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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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파우스트’ 메피스토로 5년만에 연극무대에 선 박해수(사진제공=LG아트센터, ㈜샘컴퍼니, ㈜ARTEC)
 

“극 후반 들판에서 하는 메피스토의 대사들은 논리성이 매우 강해요. 그 중 가장 강한 논리는 ‘우리가 당신들한테 달라붙었습니까? 당신들이 우리한테 달라붙었지’예요. 더불어 제가 가장 꽉 잡고 가는 대사 중 하나는 ‘빛이 없었으면 그림자도 없었을텐데’죠.”


파우스트의 타락을 두고 신과 내기를 벌이는 메피스토에 대해 “악의 평범성에 집중한다” 밝힌 박해수는 “빛 생성 전에 어둠을 먼저 만들었으면 인간들이 고통을 겪지 않았을텐데 그건 당신 잘못 아니냐, 인간을 만들었으면 그들의 본성에 맡겨야지 왜 그렇게 고통을 주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데…라는 논리”라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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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파우스트’ 메피스토로 5년만에 연극무대에 선 박해수(사진=브릿지경제 DB, (주)메리크리스마스 제공)
“처음 대본을 봤을 때는 대사가 참 많이 어려웠어요. 그러면서도 메피스토의 대사들이 많이 와 닿았어요. 틀린 말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지금 ‘파우스트’가 만들어가는 악마의 존재는 논리가 강고 가치관이 분명히 형성돼 있는 한 인물처럼 보이죠. (양정웅) 연출님과 지금 시대에 가장 편안하게 다가갈 방법을 고민하면서 세계 최고의 보험 설계사, 세계 최고의 보증인, 보호자, 좋은 친구, 애인, 선배 등으로 접근성을 좀 많이 염두에 뒀죠.”

 

양정웅 연출과 ‘지금 시대의 악마’ ‘접근성’ 등을 염두에 두고 고민했다는 박해수는 “연출님도 저도 돈과 탐욕 등을 주면서 씨앗을 뿌리고 ‘네가 원한다면 악마에게 오지 말라고 해’라는 게 더 매력적이고 유혹적이라고 생각했다”고 털어놓았다.

“어느 시대나 안좋은 인간형들은 실제로 존재하죠. 요즘은 더 많아지고 있기도 하잖아요. 그런 사람들은 어떻게 시작됐을까 궁금했어요. 그 궁금증을 발전시키고 싶었죠. 메피스토의 유혹을 진짜 악마의 등장이라기 보다 악의 씨앗을 어떻게 뿌렸느냐에 대한 개념으로 접근했습니다. 그게 선악의 개념이 불분명한 이 시대에 ‘파우스트’가 전달할 수 있는 메시지가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이어 박해수는 “고전작품이지만 옛날 얘기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파우스트가 가지고 있는 지식에 대한 욕망 뿐 아니다. 지금 시대에도 모두가 저마다 어떤 욕망들을 가지고 살아간다. ‘파우스트’는 그 욕망의 끝으로 달려갔던 한 인간의 이야기”라고 말을 보탰다.

“(‘파우스트’에 대한) 정말 많은 해석들이 있고 의견들도 분분하고 방향성도 다양하지만 원작에서 얘기하는 것 외에 우리가 상상해서 넣지는 말자고 했어요. 그런 것들은 관객들에 맡기려고 했죠. 어디서나 지켜보는 악의 존재처럼 메피스토로 무대 위에 존재하며 ‘악마는 어디에나 존재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질 수 있도록요.”


◇욕망의 폭주를 멈추는, 결국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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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파우스트’ 메피스토로 5년만에 연극무대에 선 박해수(사진제공=LG아트센터, ㈜샘컴퍼니, ㈜ARTEC)
 

“멈추어라 순간이여, 참 아름답구나!”


괴테가 욥기에서 모티프를 따 1774년 집필을 시작해 60여년간을 써내려간 ‘파우스트’에서 파우스트는 이 대사를 외치는 순간 메피스토에게 영혼을 내어주기로 한다. 지식의 충족, 탐욕 등 저마다가 가진 욕망의 끝은 사실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욕망이 충족되는 순간은 더 큰 욕망의 잉태로 이어지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는 ‘파우스트’ 속 대사처럼 욕망의 충족을 위한 노력은 만족을 모르는 욕망으로 둔갑하기 십상이다. 그렇게 커져버리기만 하는 욕망은 스스로가 멈추지 않는 한 끝없이 내달리기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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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파우스트’ 메피스토로 5년만에 연극무대에 선 박해수(사진제공=BH엔터테인먼트)

“저도 그 멈춰야 하는 순간에 대해 되게 고민을 많이 했어요. 지식의 충족, 탐욕 등 저마다가 가진 욕망이 충족돼 가장 아름답고 행복할 때 멈춰라 말하겠다…왜 이렇게 썼을까 그리고 괴테는 어땠을까 싶었어요. 연출님, 배우들이랑도 많은 이야기를 나눴죠.”


그리고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을 전제로 “괴테도 스스로 ‘멈춰’라고 한번은 쓰셨을 수도 있겠다 싶다”며 “그러다 10년 뒤 지우고 다시 쓰고 시간이 흘러 또 다시 지우고 쓰고를 반복했을 것 같다. 그러다 나이가 들면서 ‘인간은 이 보다 욕망이 더 많구나’를 깨닫지 않으셨을까”라고 말을 보탰다.

“‘파우스트’가 정말 광범위하잖아요. 새로운 인간형도 계속 나오고…너무나 광범위하게 펼쳐지다 보니 정말 어느 순간에는 멈춰지지 않아서 계속 나갔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멈춰지지 않는, ‘욕망’이라고 굳이 거창하게 표현하지 않아도 갖고 싶은 걸 못가졌을 때 기차처럼 폭주한다는 표현을 쓰죠. 결국 인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가 싶어요.”

결국 그 폭주하는 욕망의 기차를 멈출 수 있는 존재는 역시 ‘사람’이다. 파우스트에게 그레첸이 그랬던 것처럼. 이에 대해 박해수는 “선과 악이 모호해졌다고는 하지만 사실 사람들은 알고 있는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한 사람이 상처받았을 때 누군가는 마음 아파하고 또 누구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또 누군가는 위로해주고 안아주고 싶어하고…이건 분명한 선이잖아요. 우리는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것 같아요. (선악이) 불분명하게 느껴지는 건 공동체를 벗어났을 때라는 생각이 들어요. 혼자서는 누군가에게 악행과 선행을 할 수가 없으니까요. 결국 선과 악은 공동체 안에서 존재하는 것 같아요. 인간은 혼자 존재할 수 없는데 혼자 존재했을 때요.”


◇‘배우’ 박해수의 욕망, 할리우드 진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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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파우스트’ 메피스토로 5년만에 연극무대에 선 박해수(사진제공=BH엔터테인먼트)
 

“현재는 김다미 배우랑 함께 한 넷플릭스 영화 ‘대홍수’를 기다리고 있어요. (김병우) 감독님이 후반작업 중이시죠. 배우로서의 욕망이라면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여러 가지로. 해외에서도 작품 해보고 싶어요. 배역에 대한 욕심은 모르겠고 할리우드 작품도 경험해보고 싶어요. 욕망이라면 욕망이죠.”


그리곤 “얘기가 오간 작품은 몇 개 있는데 지금까지 결정된 건 아무 것도 없다” 귀띔하며 “배역에 대한 욕심이 없기보다 어떤 배역이든 다 해보고 싶다. 어떤 작품이든 제가 끌리는 대본, 하고 싶은 역할이면 어떤 것이든 상관없다”고 밝혔다.

어쩌면 멈추지 않는 파우스트의 욕망은 ‘슬기로운 감빵생활’ ‘오징어게임’ ‘수리남’ 등이 연달아 사랑받으면서 꽤 충족한 배우생활을 해왔음에도 여전히 “도전하고 싶다”는 박해수 그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나의 더 큰 무대를 갖고 싶어요. 지금은 아주 기초적인 단계로 부족한 언어를 공부 중이에요. 차근차근 준비해서 많은 걸 해보고 싶어요. 여러 가지 교류할 수 있고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어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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