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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물의 가치, 제대로 알아야 제대로 쓴다

[브릿지경제의 ‘신간(新刊) 베껴읽기’] 물 전문가가 풀어놓는 '물의 인문학'

입력 2023-03-25 07:00 | 신문게재 2023-03-24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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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게티이미지)

우리 곁에 가장 흔한 것이 ‘물’이다. 마땅한 대체재가 없음에도 우리는 정작 ‘물’의 진정한 가치를 잘 모른다. ‘물 쓰듯 한다’는 표현처럼, 흔하고 하찮은 존재로 여기기 일쑤다. 그나마 최근에야 ‘물은 생명’이라는 말이 익숙해지면서 그 소중함을 인식해 가고 있어 다행스럽다. 이 책은 평생 ‘물’을 연구해 온 저자가 물을 소재로 역사와 문화, 철학, 과학을 넘나들며 쓴 ‘물의 인문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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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비밀을 알고 있다|최종수|웨일북

◇ 제대로 대접 받지 못하는 ‘물’


우리 말 표현에는 물이 대부분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흔하고 하찮은 것, 쉬운 것 등으로 묘사된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인 ‘삼도천’을 넘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길을 간다는 뜻의 ‘물 건너가다’라든가, 애쓴 보람 없이 헛일이 되었다는 뜻의 ‘헛물켜다’ 등이 대표적이다. 그나마 긍정적인 표현이 ‘물이 좋다’, ‘물이 오르다’ 정도인데 그 마져도 순수하게 긍정적인 의미로 보기는 어렵다.

동서양 현인들은 그나마 물의 가치를 인식했다. 도가(道家)는 <도덕경>에서 무위자연(無爲自然)을 강조했다. 항상 낮은 곳으로 다투지 않고 흐르는 물처럼 살라고 가르쳤다. 서양에서는 탈레스가 “만물은 물”이라고 주장했다. 모든 생명체는 물에 의지해 살아가며, 모든 것은 물이 변해 만들어졌다고 했다. 이 때부터 만물을 지배하는 원리는 초자연적 존재가 아니라 자연적인 존재 또는 과학적인 물질이라는 혁신적인 사고가 생겨났다.


◇ 대한민국의 ‘물’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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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에 국제인구행동연구소(PAI)가 우리나라를 ‘물 스트레스 국가’로 분류했다. 우리의 1년 강우량은 1300㎖로 세계 평균(807㎖)보다 1.6배나 많다. 하지만 여름에 집중되어 관리가 어렵다. 그나마 3분의 1이 그대로 바다로 흘러간다. 그럼에도 인당 물 사용량은 280ℓ로 유럽 호주보다 많다. 지하수까지 퍼내니 물이 고갈될 수 밖에 없다. ‘물 스트레스국’을 넘어 곧 유엔 지정 ‘공식 물 부족 국가’가 될 처지다.

우리나라 하수처리율은 95% 수준이다. 하루 방류수량이 2000만 톤에 달한다. 하지만 ‘하수처리된 물’이라는 낙인이 찍혀 매일 청계천 500개를 채울 물이 그대로 버려진다. 영국의학저널이 2007년에 지난 150년 동안 의학 분야의 이정표가 될 만한 업적을 물었더니 1위가 놀랍게도 ‘상수도’였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도 “인류 평균수명이 최근 100년 새 30년 가량 늘어난 것은 상수도 보급 덕분”이라고 했다. 우리도 상수도 보급률이 99.4%에 이른 덕분에 콜레라나 이질, 장티푸스 같은 저개발국형 수인성 전염병이 사라졌다.


◇ 역사 속의 ‘물’

측우기의 발명자는 장영실이 아니다. 2010년 기상청이 세종대왕의 아들 문종(文宗)으로 공식화했다. 1441년에 문종이 만들고 그 해 5월 19일에 세종대왕이 공포했다는 것이다. ‘발명의 날’이 이날이다. 측우기를 계기로 데이터 축적이 이뤄져 기후 예측이 가능해 졌고, 비로소 물의 자연현상을 연구하는 ‘수문학(水文學)’이 태동했다.

우리 역사상 최대 승전보로 평가받는 살수대첩과 귀주대첩은 수공(水攻)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이 두 전쟁을 언급한 우리와 중국의 역사서 어디에도 보(堡)를 무너뜨려 수공을 했다는 기록이 없다. 신채호의 <조선상고사>에만 두 대첩을 수공으로 기록하고 있다. 지금이야 단기간에 보를 쌓거나 순식간에 보를 무너뜨리는 기술이 가능하지만, 당시 과연 그런 기술이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남는다.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최단 뱃길인 수에즈 운하는 우리 역사를 바꿀 뻔 했다. 러일 전쟁 중 러시아가 유럽 발트함대를 파견하기 위해 이곳을 통과하려 하자, 운하 소유국이던 영국이 좁은 수심과 폭을 핑계로 대형 군함의 통행을 불허했다. 결국 러시아 주력함대는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을 돌아 7개월 만에 일본 쓰시마해에 도착했고 오랜 항해에 지친 러시아 해군은 일본에 패퇴했다. 그리고 우리는 ‘을사늑약’으로 주권을 빼앗겼다.


◇ 지구와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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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표면은 ‘바다’로 덮여있어 우주에서 보면 지구(地球) 라기 보다 수구(水球)에 가깝다. 지구상의 물 97.5%는 바닷물이다. 2.5%만이 민물이나 담수인데 대부분 빙하나 만년설로 존재한다. 호수나 하천, 지하수는 전체의 1% 정도다. 하천과 호수로만 한정하면 0.0086%로, 지구 모든 물의 1만분의 1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2050년이면 전 세계 인구가 90억 명에 이르고, 이 중 절반이 물 부족에 시달릴 것이라고 경고한 상태다.

남극과 북극 중 어디가 더 추울까? 남극 평균 기온은 영하 55도, 북극은 영하 33~40도다. 남극이 땅 위의 얼음덩이 대륙인 반면 북극은 물 위의 얼음덩어리 바다이기 때문이다. 극 지방 얼음이 녹으면 바닷물 수위가 높아져 큰 위기를 맞을 것이란 우려가 있지만, 물로 변하면 부피가 줄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은 낮다. 문제는 육지를 덮고 있는 빙하나 빙상이다. 그린랜드와 남극 얼음이 녹으면 해수면이 60m 가량 높아질 수 있다. 바다도 검푸른 색으로 변해 햇빛 반사 정도가 달라져 바닷물 온도 상승으로 더 큰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

물 분쟁이 가장 심각한 곳은 요르단강 유역이다. 1967년의 이른바 ‘6일 전쟁’은 시리아의 요르단강 상류 댐 건설이 발단이었다. 승리한 이스라엘은 갈릴리 호수 발원지인 골란고원을 강제 점령 후 돌려주지 않고 있다. 아프리카 사막의 젖줄 ‘나일강’ 주변의 긴장감도 대단하다. 상류의 에티오피아가 2011년부터 대규모 댐을 짓고 있어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이집트는 물 부족 발생 시 전쟁도 불사하겠다고 선포한 상태다.


◇ 물과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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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기우제 대신 하늘에서 구름에 화학물질을 뿌려 인공강우를 만든다. 인공강우는 ‘구름씨앗’이라는 물질을 구름 속에 뿌려 수증기를 물방울로 응결시키는 기술이다. 수분을 먹은 구름이 전제조건이다. 현재 기술로는 구름을 만드는 것 까지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인공강우로 특정 지역에 비를 내리면 원래 비가 내릴 지역에 비가 내리지 않아 지역간 또는 국가간 분쟁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성인 한 사람은 하루에 평균 0.5~0.7ℓ의 땀을 흘린다. 땀은 99%가 물이며 1%가 나트륨 같은 전해질이다. 따라서 운동 후 수분을 섭취할 때 물만 마시면 안된다. 이온 성분도 보충해 주어야 한다. 땀을 자주 흘리지 않으면 땀샘 기능도 퇴화된다. 운동을 꾸준히 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는 사람보다 빨리, 더 많이 땀을 흘리는 이유다. 사우나에서 땀 빼기도 좋지만, 운동을 통해 신체 온도가 서서히 올라가면서 배출하는 땀이 좋은 땀이다.


◇ 물이 만든 명품, 음료와 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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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커피인가요?”. 커피 본고장이라 할 유럽에선 따뜻한 아메리카노도 찾기 힘들다. 그들에게 커피란 뜨거운 ‘에스프레소’다. 2차 세계대전 때 점령군이던 미군은 진하고 쓴 이탈리아의 에스프레소에 질색해 물을 타 마시곤 했다. 이에 현지 사람들이 “미국인들은 커피를 마실 줄 모르는 놈들”이라 조롱하며 물 탄 커피를 이탈리아어로 미국인을 뜻하는 ‘아메리카노’로 처음 불렀다고 한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올림포스 12신’에 술을 관장하는 디오니소스가 나올 정도로 와인은 일찍부터 가치를 인정받았다. 그런 와인이 지금처럼 어려워진 것은 ‘대중화’ 탓이다. 병에 담아 파는 과정에서 관련 정보를 담은 라벨이 필요했다. 와인 이름과 포도 종류와 수확 연도 등을 적으면서 어려운 술이 돼 버렸다. 와인 이름은 양조장(포도원) 명칭으로 정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다. 프랑스 사토 와인이 대표적이다.

조선시대에는 궁중에 ‘상온’이라는 담당 책임자가 정 3품 당상관일 정도로 술빚기가 중요했다. 당시 전통 술도 300여 가지에 달했다. 일제강점기인 1916년 ‘주세령’ 발표에 소규모로 만들던 술이 면허사업으로 바꾸었고, 전통 술들이 도태되어 대규모 양조장들이 자리를 잡게 됐다.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던 우리 전통 술은, 쌀로 술 만드는 것을 금지하는 1965년 양곡관리법 조치로 증류식 소주 제조업체들까지 모두 사라지게 된다.

조진래 기자 jjr8954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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