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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인간과 물질이 빚은 발명품… 건축가도 저절로 '입틀막'

[브릿지경제의 ‘신간(新刊) 베껴읽기’] 건축가 유현준의 '인문 건축 기행'

입력 2023-06-17 07:00 | 신문게재 2023-06-16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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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게티이미지)

저자는 “건축물은 인간의 생각과 세상의 물질이 만나 만들어진 결정체”라고 말한다. 그에게 큰 감동을 주는 건축물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지”라는 충격을 주는, ‘새로운 생각’을 보여주는 건축물이다. 그래서 그는 “건축가는 발명가”라고 말한다. 이 책에는 건축가인 저자가 건축을 공부하면서 감명받은 30곳의 ‘보물 같은’ 근현대 건축물이 소개되어 있다.


◇ ‘20세기 피라미드’ 루브르 유리 피라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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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하학의 건축가’로 이름이 높은 중국계 건축가 이오밍 페이가 1984년 루브르 박물관 증축 국제공모전에 당선되어 지은 건축물이다. 그의 대표작인 미국 워싱턴 DC의 ‘내셔널 갤러리’나 홍콩의 ‘중국은행 타워’는 온통 삼각형 투성이일 정도로 그의 삼각형 사랑은 남다르다. 그 결정체가 ‘20세기 피라미드’라 극찬받는 루브르 유리 피라미드다. 가로·세로 각 35m, 높이 22m의 전통 피라미드형과 지하에 거루로 선 피라미드가 있다. 하나는 지하 루브르의 주 출입 현관문이고, 또 하나는 지하 전시장의 천창 역할을 한다. 지하 피라미드 아래에는 돌로 만든 또 다른 피라미드가 있다. 당시 너무 파격적인 디자인에 많은 사람들이 반대했지만 미테랑 당시 대통령이 밀어 부쳐 빛을 보았다. 저자는 “좋은 공공 건축물이 나오려면 안목이 좋은 정치가나 행정가가 필요함을 입증한 사례”라고 말한다.


◇ ‘민주주의의 완성체’ 독일 국회의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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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국회의사당을 적대국이던 영국의 건축가(노먼 포스터)가 새로 지었다. 독일 스스로 더 이상 열등감과 패배감이 없음을 보여준 사례다. 건축가는 절대 권력의 상징이던 기존 의사당의 ‘돔’을 그대로 유지했다. 대신에 투명한 유리 전망대로 탈바꿈시켜 아래 국회 회의장을 내려다 볼 수 있게 했다. 건물 주변도 잔디밭 공원으로 조성하면서 의사당 지붕으로 연결시켜, 마치 의원들이 국민들의 발 아래에 있는 것 같은 공간 구조를 만들었다. 저자는 “민주주의의 완성을 보여주는 통쾌한 건축 디자인”이라며, 우리 정부세종청사가 보안 상의 이유로 육상 정원 등 극히 일부만 개방한 것과 대비된다고 비판했다. 돔에는 거울로 만든 추 모양의 중앙 구조물을 통해 햇빛이 반사되는 하이테크 기술까지 보여준다. 저자가 “죽기 전에 이런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 절망감을 느끼게 해 준 건축물”이라고 말했다.


◇ ‘비정형의 백미’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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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프랑크 게리는 감성적이고 직관적 영감을 주는 예술적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저자는 그를 건축가라기 보다 예술가라고 극찬했다. 게리는 특히 물고기에 강한 애착을 보인다. 역동적인 곡면과 빛에 따라 변하는 비늘의 느낌을 건축적으로 구현하려 애썼다. 실내 공간까지 갖춘 물고기 모양의 완성된 건축물 결정체가 이 미술관이다. 그는 프로젝트 하나를 수행하는데 60개 정도의 모형을 제작해 본다고 한다. 종이를 구겨 여러 형태를 만든 후 마음에 들면 컴퓨터 모델링을 하는 독특한 방법이다. 그가 개척한 파격적인 디자인은 후배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그의 비정형 제작 기술 덕분에 다양한 형태의 건축물이 실현될 수 있었다. 저자는 “우리가 울산이나 거제도 조선소를 이용해 이 미술관 같은 건축물을 먼저 지었다면 아마도 수 많은 관광객들을 불러모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워한다.


◇ ‘공중권’을 탄생시킨 시티그룹 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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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층 높이의 이 건축물은 꼭대기가 남쪽으로 45도 경사진 좌우 비대칭형이다. 경사진 테라스에 고급 아파트 100채를 넣을 계획이었으나 건축 규제 탓에 불발되었다고 한다. 저자는 이 건물을 ‘가장 훌륭한 오피스 건축물’이라 평가했다. 경제적 혜안과 사회적 이해, 타협과 중재, 창의력, 구조 기술력, 친 환경 사고 등이 총 망라되었다는 것이다. 이 건물은 특히 ‘공중권’을 활용한 건축물로 유명하다. 당초 부지에 있던 교회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공중권을 사들여 12층 높이의 교회 지붕 위 공간에 건축물을 올렸다. 그렇게 비워진 교회 옆 땅들은 시민 광장으로 활용되었고 뉴욕시는 10층을 더 올릴 수 있도록 허가해 주었다. 건축가 휴 스터빈스는 거대한 네 개의 중앙 기둥으로 건물 전체 하중을 지탱하는 혁신적인 디자인을 취했다. 덕분에 내부의 개방성은 물론 탁 트인 풍경을 안겼다. 바람에 건물이 흔들리는 위험성을 상쇄하기 위해 무게 중심을 잡아주는 특별 기계장치를 설치해 안정감을 높였다.


◇ ‘자연과의 협업’ 도미누스 와이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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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의 고장’ 캘리포니아의 도미누스 와이너리는 긴 가로 상자형 건축물이다. 하지만 가장 자연스러운 건축물이다. ‘게비온(gabion)’이라는 상자형 철망 속에 돌을 넣어 차곡 차곡 쌓아 올렸다. 아래 쪽은 하중을 버티기 위해 작은 돌로 빼곡하게 채우고 윗쪽은 큰 돌을 담았다. 여기에 빛을 비추면 돌 사이 틈새로 빛이 새어 들어 마치 나뭇잎 사이로 빛이 들어오는 듯한 풍광을 연출한다. 건축가 자크 헤르조그와 피에르 드 뫼롱은 캘리포니아의 강한 빛과 ‘와이너리’라는 건물 용도의 조화를 위해 게비온 빛의 불규칙성을 십분 활용했다. ‘인간의 구상’과 ‘자연의 섭리’가 합쳐진 협업 공간을 만들었다. 이들은 2001년 건축계 노벨상 ‘프리츠커상’ 수상 후 베이징국립경기장을 설계해 세계적인 건축가의 반열에 올랐다. 그들이 추구하는 불규칙한 아름다움의 디자인 철학도 새의 둥지를 닮은 이 경기장에 그대로 녹아있다.


◇ ‘메타볼리즘의 정수’ 해비타크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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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몬트리올의 ‘해비타트 67’은 158세대가 사는 아파트다. 이 아파트가 주목을 끄는 이유는 개방형 테라스로 ‘마당 있는 삶’이 가능한 때문이다. 층계식이라 시야도 탁 트였다. 세대별로 모양도 다르고 레고 블록 같은 조립식에 각기 다른 마감재를 사용해 개성이 듬북 담겼다. 덕분에 공사 기간을 혁신적으로 줄여 공사비 절감이 가능했다. 세포가 증식하는 듯한 모양의 ‘메타볼리즘(metabolism)’ 건축 양식이 조화롭다. 옥상 수영장이 딸린 싱가포르 ‘마리나베이 샌즈’ 호텔을 설계한 모세 사프디가 20대 학생 때 실험적으로 구상했던 작품이다. 이런 아파트가 가능한 이유는 우리와 달리 동과 동 사이 거리유지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파트 건물 가로 길이도 60m를 넘으면 안된다. 저자는 “우리도 건축 법규를 업그레이드해 마당 같은 발코니나 베란다가 있는 아파트가 중산층 주거의 표준 모델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 ‘두꺼비집’ 연상시키는 데시마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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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남쪽 데시마섬의 이 미술관은 멀리서 보면 예전에 모래밭에서 “두껍아 두껍아…”하며 놀며 짓던 그 ‘두꺼비 집’이다. 건축가 니시자와 류에는 흙을 사람의 키보다 높게 쌓아 곱고 완만한 언덕을 만들었다. 그 위에 비닐을 깐 다음 구멍 두 개를 만들고 이를 피해 철근을 심고는 콘크리트를 부었다. 콘크리트가 굳은 후 구멍에서 흙을 다 파내면 얇은 조개 껍데기 같은 콘크리트 지붕이 나온다. 영락없이 두꺼비집 놀이 방식이다. 전문 건축용어로 ‘셀 구조’라고 한다. 벽체와 지붕이 너무 얇아 마치 얇은 만두피로 만든 것 같다. 저자 조차 ‘어떻게 이게 서 있을 수 있을까’ 의구심을 가질 정도다. 이음 선도 전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미장도 완벽하다. 이 미술관의 백미는 얇은 콘크리트 지붕에 시원하게 뚫린 큰 구멍들이다. 바닥에는 여기저기 물방울이 모여 고여 있는 얕은 물들이 매끄러운 바닥을 따라 떠돈다. 미술가 나이토 레이의 작품이라고 한다.


◇ ‘21세기 고인돌’ CCTV 본사 빌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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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돌 처럼 가분수 모양의 건축물은 늘 ‘과시욕’의 상징이었다. 베이징의 CCTV 본사 빌딩도 ‘2008년 북경올림픽’ 과시용이었다. 두 개의 타워가 비스듬하게 올라가 36층 상충부에서 연결되는 형태다. 금방이라도 앞으로 고꾸라질 것 같다. 렘 콜하스가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를 완성시킨 세계적 구조 회사 오브 아루프의 기술력을 도움 받아 건축했다. 입면의 대각선은 간격이 제각각이다. 구조적으로 힘을 많이 받는 부분에 더 많은 부재를 보강해 균형을 잡았다. 두 개의 타워를 먼저 완성하고, 양쪽 타워에서 나뭇가지처럼 구조물을 뻗어 중간에서 만나는 방식으로 공정을 설계했다. 대각선 그리드가 뻗어 나가는 바닥 면을 붙잡아 줌으로써 36층 바닥이 공중에서 만나게 해 주었다. 기자, 시나리오 작가라는 특이한 경력을 자랑 하는 그를 저자는 “대도시에 대한 자신만의 고찰을 응용해 건축을 만들어내는 스마트한 건축가”라고 평가한다.


◇ ‘쇠로 만든 오아시스’ 루브르 아부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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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대표 건축가 장 누벨은 ‘사막의 장미’로 불리는 카타르국립박물관과 ‘쇠로 만든 오아시스’라는 루브르 아부다비를 중동에 남겼다. 아부다비가 관광객 유치를 위해 구상한 8개의 박물관과 미술관 건립 프로젝트 중 가장 먼저 개관했다. 루브르 박물관이 30년 전시 큐레이션을 맡는다. 컨셉은 ‘오아시스의 야자수 그늘’이다. 지붕에 납마시라비아 문양의 철판을 여러 겹 겹쳐 강렬한 햇볕이 불규칙하게 들어오게 디자인했다. 지붕의 지름이 무려 180m다. 정사각형 주변 네 변으로 각각 삼각형이 하나씩 붙은 모양의 스크린을 각각 4겹 씩 총 8겹으로 위 아래에 쌓아 거대한 스크린을 완성했다. 야자수 그늘 같은 지붕을 만들겠다는 시적인 상상력이 엄청난 기술력의 뒷받침으로 마무리된 것이다. 마지막 전시코스가 돔의 정중앙부가 되게 동선을 배치함으로써, 빛 천장을 우러러보는 클라이막스 장관을 연출한 점도 충격이다.

조진래 기자 jjr8954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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