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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뒤집자! 정의稅로 포장된 거짓정의稅"

[브릿지경제의 ‘신간(新刊) 베껴읽기’] '국가의 약탈, 상속세'

입력 2023-06-24 07:00 | 신문게재 2023-06-23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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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국민들은 ‘상속’을 ‘불로소득’으로 보는 경향이 짙다. 상속세 강화를 ‘정의’라고 인식한다. 일종의 ‘배 아픔’이라는 국민감정도 가미된다. 하지만 많은 선진국들은 상속세를 폐지 또는 완화하고 있다. 우리도 상속세를 없애고 상속재산 매각 때 자본이득세를 부과하자는 주장이 고개를 든다. 상속세는 과연 ‘분배 정의’인가 ‘국가 약탈’인가. 상속세제의 합리적인 개편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기업(인)에 대한 국민 인식 변화와 함께 기업(인)의 각고의 자성과 분투도 요구된다.

 

 

◇ 韓 상속세 정말 과도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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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약탈, 상속세|김승욱·박지우·신중섭·임동원|펜앤북스
우리는 피상속인 유산을 기준해 5단계 초과누진세제(10~50%)로 상속세를 부과한다. 직계비속 최고세율은 50%로 OECD 평균 최고세율 25.3%의 2배이다. 55%인 일본 다음이다. 하지만 최대주주 주식 할증과세 땐 60%로 가장 높다. 전체 세수 중 상속·증여세 비중은 3.7%지만 GDP 대비 비중은 0.5%로 OECD 평균(0.2%)을 2배 이상 웃돌며 회원국 중 세 번째로 높다.

임동원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이중과세 측면에서 상속세가 높으면 소득세가 낮은데 우리는 상속세 2위, 소득세 7위로 모두 높다”고 꼬집었다. 실제 우리 실효세율은 58%를 넘어 일본(55%), 미국(39.9%) 보다 높다. 신중섭 강원대 명예교수는 “우리의 상속세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 세율과 구간이 수시로 변해 왔을 만큼 철학적 기반 없이 정치적 영향을 너무 받았다”고 비판한다. 황승연 경희대 명예교수는 “한국이 과연 재산권이 보장되는 나라냐”고 되묻는다. 경영권에 할증 과세해 경영권을 잃게 하는 것은 명백한 재산권 침해라며 “우리 상속세법은 경영권 상속금지법”이라고 일갈했다.

 

이건희
상속세가 분배 정의냐 약탈이냐를 놓고 견해 차가 여전하다. 2020년 사망한 고 이건희 회장은 시가로 무려 10조 원에 달하는 국보급 예술품들을 국가에 기부했지만 국세청은 무려 12조원에 달하는 상속세를 부과했다.(연합)

 

◇ 선진국들은 어떻게 상속세 정책 운영하나

OECD 회원국 중 29개국은 직계비속에 상속 시 상속세 부담이 없거나(19개국), 세율인하 또는 공제혜택(10개국)으로 부담을 줄여 준다. 피상속인 규제가 있는 나라는 영국과 일본 두 나라뿐이다. 하지만 영국은 피상속인이 2년만 보유하면 되고 일본은 기간 제한 없이 50%의 주식만 보유하면 된다.

상속 후 사후관리 기간도 프랑스 3년, 독일 5년 등 우리(5년)보다 대부분 짧다. 지분보유 의무기간도 프랑스가 4년, 독일과 일본은 5년으로 우리와 같거나 짧다. 특히 일본은 2019년부터 ‘신사업승계제도’를 시행해 납세유예대상 주식 수의 상한을 없애고, 승계 후 5년 간 80%라는 고용조건을 못 지켜도 계속 유예해 줄 만큼 기업승계를 장려한다.

최대주주할증평가도 우리만 획일적으로 운용한다. 주요국들은 정형화된 계산식을 적용하지 않고, 지배지분의 할증을 상황에 따라 선택적으로 적용한다. 신중섭 강원대 명예교수는 “대부분 선진국들의 상속세 정책방향은 완화인데 우리만 역주행하고 있다”며 “이것이 곧 기업가 정신 약화를 부른다”고 꼬집었다.

 


◇ 상속세 부담 완화 불구 효과는 ‘제한적’

1997년에 우리도 ‘가업상속공제’가 도입됐다. 하지만 2016년~2020년 이용 건수는 평균 92.8건, 공제금액은 2886억 원에 불과했다. 같은 시기에 독일은 9995건에 146억 유로(한화 약 20조 원)였다. 실효성 논란이 일자 2022년에 세법을 고쳤으나 매출액 5000억 이하 등 엄격한 요건 탓에 적용 받는 기업이 극소수다. 대기업은 당연히 배제됐다.

임동원 연구위원은 가업상속제도를 ‘기업상속공제제도’로 명칭을 바꾸고 적용대상을 모든 기업으로 확대하자고 주장한다. 피상속인이 2년 이상 보유했다면 허용하고 공제율도 상한 없이 50~100%로 설정할 것을 촉구한다. 신사업 진출에 걸림돌이 되는 ‘업종 유지 조건’은 꼭 폐지할 것을 주장했다.

황승연 경희대 명예교수는 “우리나라 대주주들이 지나치게 방어적으로 경영의사 결정을 하고 고의로 주가를 높이지 않으려는 것은 비정상적으로 높은 세계 최고의 상속세율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오너 리스크란 지배주주의 도덕성이나 경영판단능력 부족이 아니라, 세계 최고 상속세 탓에 회사와 자산을 지키려 고의로 주가를 낮추려는 유혹과 시도의 결과”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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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기업승계를 위한 제도들이 계속 나오고 있으나 선결 조건 및 사후 의무 조건들이 까다로와 실제 기업 현장에서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다.(사진출처=게티이미지)

 

◇ 세계 최고 세율에 규제까지 ‘덕지덕지’

그렇다면 상속세율이 55%나 되는 일본에는 어떻게 100년 이상 기업이 3만 개가 넘을까?

황 교수는 “비상장 기업에 80%를 납세 유예해 주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니 실제 세율은 11%이며 그나마 5년이 지나면 면제된다. 상속·증여세 없이 제3자에 기업을 승계할 수도 있다. 상속세 수입보다 기업 승계로 고용과 기술, 산업의 실체가 이어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판단이다. ‘강소기업 천국’ 독일도 상속세 명목 최고세율은 30%지만 실제 최고세율은 0~4.5%다. 가업승계 때 85%가 공제되기 때문이다. 일정 지분과 임금을 유지해 7년이 지나면 100% 공제된다. 영국도 실제 부담 최고세율이 0~20%에 불과하며 프랑스가 11.25%, 네덜란드가 3.4%, 스페인은 1.7% 수준이다.

임 연구위원은 특히 획일적인 현행 대주주 할증은 과세근거가 취약하다고 비판한다. 경영권 프리미엄이 이미 주식에 포함되어 있으니 세법상 실질과세원칙에도 위배된다고 말한다. 상속세와 소득세 최고세율 합계는 일본이 100%이고 우리가 95%로 2위지만, 최대주주할증평가를 적용하면 105%로 우리가 1등이라고 꼬집었다.

 


◇ 부의 대물림이냐, 가난의 대물림이냐

신중섭 교수는 “기본권인 사유재산의 상속을 부정하는 것은 사회에 대한 근본적인 위협”이라며 “우리는 ‘부의 대물림’이 아니라 ‘가난의 대물림’을 막으려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많은 이들이 상속세가 기회의 평등을 높이고, 부의 집중을 억제하고, 부의 재분배로 연결될 수 있다고 믿는다”며 결국 우리 상속세는 ‘이념세’라고 공박한다.

황승연 교수도 “상속세가 없다면 기업가들이 편법으로 일감을 몰아주고 이익을 빼돌리는 행위를 저지를 이유도 사라지고, 대주주들이 고의로 상장을 피하거나 투자를 자제할 이유도 없어지므로 자연스럽게 소액주주들에게도 이익”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제가 성장하려면 상속세를 없애거나 대폭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승욱 중앙대 명예교수는 고율 상속세의 역사적 기원을 ‘공산주의’에서 찾았다. 공산주의 확산을 막으려 절충적 제도로 상속세가 도입되었고 여기에 복지국가 등장과 민주주의 확산이 가세한 결과라는 얘기다. 그는 “모두가 출생과 동시에 같은 출발선에서 인생을 시작한다는 것은 ‘이상’”이라며 그래서 많은 나라가 상속세를 손보고 있다고 강조했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는 공익재단을 설립해 자신의 재산을 거의 대부분 기부했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공입법인 출연 및 기부를 통해 경영권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는 여전히 각종 규제와 선입견 탓에 불가능한 실정이다.(연합)

 

◇ 자본이득세 전환이 해법?

저자들은 “원활한 기업승계를 위해선 장기적으로 상속세제 개편이 답”이라고 한 목소리다. 기업 승계 때 상속세를 부과 말고 자산 양도 때 한 번에 자본이득세를 과세하는 게 합리적이고 세계적 추세라고 말한다. 임 연구위원은 다만, 사후관리요건을 위반한 경우 위반 시점 기준으로 계산된 이자상당액을 포함한 상속세를 부과해 조세회피 행위를 막자고 제안했다.

그는 상속세율을 소득세 최고세율보다 낮게 OECD 평균인 25% 수준으로 낮추고 과세구간을 줄일 것을 촉구했다. 최고 세율은 30% 정도가 적당하다고 제안했다. 10~50%의 초과누진세율 구조를 10~30%로 완화하고, 타당성이 결여된 최대주주할증평가는 폐지 또는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승연 교수도 경제가 성장하려면 상속세를 없애거나 대폭 낮추야 한다며 스웨덴처럼 자본이득세로의 전환을 강조했다. 그는 “상속세를 선진국들처럼 감면한다면 기업이 활성화되어 고용이 늘며, 여기서 거둬들인 법인 세수가 상속세수보다 훨씬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 공익법인 통한 기업승계 활성화도

최준선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177억 원대 주식을 자신의 이름을 딴 장학재단에 기부했다가 140억 원 증여세를 부과당했던 ‘황필상 박사 사건’을 예로 들며 우리의 허술한 기업승계 정책을 꼬집었다. 10년 재판 끝에 대법원에서 원고 승소 판결은 받았지만, 재단을 이용한 경영권 승계는 막아야 한다는 사회적 통념은 여전하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공익법인에 대한 현행 법률이 주식 출연 제한, 주식보유 제한, 의결권 제한의 3중 규제라고 비판했다. 의결권 있는 주식을 공익법인에 출연할 경우, 해당 주식이 발행주식총수의 5%(또는 19%, 20%)를 초과 시 고액 상속세를 부과하는 규제는 한국이 유일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니 2022년 3월 말 현재 한국 공익법인 8775곳 중 기업출자 공익법인 수가 78곳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최 교수는 모든 공익법인에 대한 주식출연에 상속증여세 면세비율을 최소 20% 이상으로 상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식보유제한규정도 완화해 경영권 우호지분으로서 공익법인에 주식출연을 늘릴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하며, 의결권 행사도 자유롭게 허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조진래 기자 jjr8954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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