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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수많은 나이 중 굳이 '69세'를 한 까닭은?… 영화 '69세' 예수정

[人더컬처] 배우 예수정 "숫자만 봐도 성적인 느낌 오는 탁월한 제목,노년의 여성이 겪은 수치심 드러내"
"평소 사회적 메시지 담은 영화 선호해와...곧 노령사회라는 한국,실화에 기초해 더욱 끌려"

입력 2020-08-24 18:00 | 신문게재 2020-08-25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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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이지만 세련된 옷차림으로 지적받는 극중 효정. 쓸쓸한 눈빛으로 “이 나이에 후줄근하게 입으면 더 무시 받는다”라고 되받아친다.(사진제공=엣나인필름)

 

“제목에서 ‘세’를 빼고 보세요. 69라는 것 자체가 섹슈얼함을 담고 있잖아요. 그냥 72세 혹은 65세일 수 있었어요. 단순히 성폭행이 아니라 가장 소수이자 약자의 입장에서 연기하고자 했습니다.”

‘무심코 당연하게 우리가 지나쳤을’이라는 다소 긴 헤드 카피가 달려있는 이 영화 ‘69세’, 심상치 않다. 실제로 일어났던 노인 성폭행 사건이었고 가해자인 남성 조무사와의 나이차는 40년, 공권력의 보호는커녕 주변에서 치매로 몰린 피해자는 결국 자살했다.
 

영화 69세
개봉전 평점 테러를 당한 영화 ‘69세’.소설 같은 이야기라며 2점대에 머물렀으나 사전 시사회를 통한 입소문으로 7점으로 올라가며 화제성을 낳았다.(사진제공=엣나인필름)

예수정은 극중 시인 동인(기주봉)과 황혼에 만나 소박한 일상을 사는 인물이다. 

 

구구절절한 사연은 나오지 않지만 헤어진 딸이 있고 동인과 만나기 전까지는 입주 간병인으로 일했다.

 

몸이 예전 같지 않아 운동을 하고 관절이 좋지 않아 병원에 다니다가 ‘사건’이 일어났다. 스스로도 믿기지 않았고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보려 했지만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주변의 편견 속에서 멈추지 않고 자기 방법대로 일 처리를 해 나가는 한 인간이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 수치와 어떻게 싸워나갈 것인가에 대해 집중하고자 했죠. 개인적으로 이런 사회성 높은 작품을 좋아해요. 한국 사회가 곧 노령사회가 된다는데 그 노년의 삶 중 여성이 겪을 수도 있는 차별을 다룬 작품이 들어왔으니 안 할 이유가 없었죠.”

지난 20일 개봉한 ‘69세’는 익숙함을 뒤집는 영화다. 뭔가 사건을 해결해 줄 것 같은 동인과 그의 아들 변호사(김태훈)는 되려 뒤로 물러선다. 용기 있게 한 발 앞으로 내딛는 이는 바로 피해자인 효정이었다.

숲을 봐야 하는 감독들이 되려 나무의 이끼나 뿌리의 생채기를 연기 할 수 있게 ‘기회를 주는 삶’이 자신의 큰 복이라는 예수정은 “상당히 개인적이면서 가끔 이기적인 게 배우다. 평상시에 그런 삶을 사니까 단체작업인 드라마나 영화가 잘 맞는 것”이라며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러브콜을 겸손하게 에둘렀다. 

 

동시에 “직업의 사명감이나 거창한 방향성은 없다”고 호탕하게 웃었다. 대신 “주책 부리지 말고 실제 내 삶의 앞을 잘 걸어가자”고 매일 되뇌인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솔직하고 대범한 엄마였던 정애란(장수드라마 ‘전원일기’의 할머니 역할)을 보고 자라서인지 자신의 노년도 흔들리지 않고 남에게 피해주지 않게 나이 들기를 기도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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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69세'의 예수정(사진제공=엣나인필름)

 

‘69세’는 노인이자 여성이 받는 시선과 편견에 대한 화두를 던지는 동시에 인간의 존엄성을 되묻는다. 제24회 부산 국제영화제 관객상을 수상했고 언론과 평단의 극찬을 받고 있다. 그러나 영화적인 완성도와는 별개로 개봉 전 소재에 대한 불편함을 드러내는 집단이 등장해 뉴스면을 장식하기도 했다. 

 

특히 “소설 쓰고 있다”는 말로 비하하면서 평점이 2점대까지 내려갔지만 이를 두고 볼 수만은 없다는 깨어있는 관객들이 응원을 보내 평점이 7점대까지 다시 상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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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69세' 예수정(사진제공=엣나인필름)

예수정은 ‘한 식구’ 개념이 강한 연극계에서 개인 젓가락을 들고 다니기로 유명하다.

 

자신의 아이들 역시 키울 때 “찌개조차 숟가락이 섞이지 않게 덜어 먹였다”면서 “후배들에게 ‘밥상 위의 길 잃은 어린 양’이라고 불린다. 원래 피해 주는 걸 싫어하고 불확실성의 사회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제 스스로를 못 믿어서다”라고 강조했다. 

 

예수정은 국립극단 70주년을 기념하는 연극 ‘화전가’ 공연 중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조기폐막을 겪어야 했다.

 

그는 “(코로나19 때문에) 공연을 못 올리는 건 열 받지 않는다. 단지 이런 팬데믹을 알면서도 모든 사람에게 민폐를 끼친, 생각이 모자란 분들에 대해선 답답함을 느낀다. 그들이 어른이라는 사실이 부끄러울 뿐”이라며 답답함을 표했다.

“연기는 숨 쉬는 것과 같아요. 내보내는 만큼 들어오거든요. 테크닉적으로는 상당히 아마추어적인 배우라 항상 교과서를 끼고 살지요. 앞으로는 한번쯤 킬러를 맡고 싶어요. 사회적인 무례함과 공적인 질서를 어기는 존재들이 너무 많은데 연기적으로 풀어 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죠?(웃음)”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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