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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새해금주결심, 나만의 최애해장음식이 '사라졌다'

[이희승 기자의 수확행] 적당한 알콜이 주는 행복, 어디까지?

입력 2022-01-11 18:30 | 신문게재 2022-01-12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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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게티이미지)

‘치즈버거, 계란탕, 토마토 주스, 평양냉면’

위 세 가지 음식의 공통점을 안다면 당신은 술꾼일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장안의 화제였던 ‘술꾼도시여자들’을 울면서 봤다. 토종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티빙의 유튜브 공식 클립 영상 조회 수 6000만뷰를 기록한 이 작품은 한잔 술이 인생의 신념인 동갑내기 세 여자의 일상을 실감나게 그려 큰 화제를 모은 작품. 울었던 건 그들의 일상에 공감해서기도 하지만 그들이 마시는 술이 너무 맛있어(?) 보여서였다.

그렇다. 나는 현재 금주 중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 작품을 대리만족으로 선택했다. 그리고 충분히 눈과 영혼으로 알코올을 만끽했다.  드라마의 팬이라면 당연히 알겠지만 이 작품의 원작은 웹툰 작가인 미깡의 손끝에서 탄생했다. 그 작품을 보지 못했다. 대신 그가 쓴 세미클론 출판사의 ‘나라 잃은 백성처럼 마신 다음 날에는’을 읽고는 영혼의 도플갱어를 만난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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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를 보며 느꼈던건 이들의 우정이 유지될 수 있었던 건 술도 있지만 남자를 보는 취향이 전혀 겹치지 않아서란 이상한(?)논리가 2초간 머리를 스쳤던 지난해 최애 드라마 ‘술꾼도시여자들’.(사진제공=티빙)

 

집을 살 때 기본으로 본다는 초품아(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 마트 슬세권(슬리퍼 신고 나갈 수 있는 거리) 보다 더 중요한 해장국세권을 따진다던가 위장부부(음주로 인한 위와 장의 상태)로 나누는 대화가 흡사 우리집을 보는 듯 했다. 그런 내공이라면 충분히 나올 만한 드라마였고 그 인기에 힘입어 발 빠르게 시즌2가 확정된 상태다.

금주를 하게 된 계기는 역시나 건강 때문이다. 내장지방은 그러려니 해도 단기기억 상실은 정도가 너무 심각했다. 드라마에서 방송작가로 나오는 이선빈이 “그 뭐더라 그…” “거기서 말하는 왜 있잖아…”처럼 기본적인 단어나 표현, 용어들이 심각하게 헷갈려 굳은 결심을 하게 된 것. 가문 내에 술을 과하게 마시거나 비명횡사한 가계도가 없는 걸로 봐서는 역시나 직업병인 게 틀림없다. 

30대에 들어서 조간신문에 입사한 뒤 낮술에 빠진 건 큰 실수였다. 기사를 마감하고 취재원 혹은 편집 선후배들과 한두잔 마시는 소맥은 오전의 팽팽한 긴장감을 녹이는 특효약이었다. 요즘엔 친한 사이라도 함부로 권하지도 먹을 수도 없는 ‘~라떼는 말이야’가 됐지만 ‘생활 속의 술’을 조명한 작품들은 점차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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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가 이 영화가 말하는 주제를 함축한다. 나는 이보다 더 와 닿는 포스터를 이제껏 보지 못했다.(사진제공=엣나인필름)

 

오는 19일 개봉하는 ‘어나더 라운드’는 약간의 알코올이 과연 인간의 일상을 더 나은 상태로 만드는지에 대해 묻는다. 인간에게 결핍된 혈중 알코올 농도 0.05%를 유지하고 절대 밤 8시 이후엔 취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실험에 나선 주인공들은 실제로 전과 다른 일상의 변화를 경험한다. 결론만 말한다면 역시나 문제는 중독이다. 절제하지 못한 인간의 결말은 항상 비극을 가져온다. 덴마크의 국민배우에서 할리우드 국보로 거듭난 매즈 미켈슨의 연기가 유독 긴 여운을 남긴다.

다시 돌아가 금주를 하다 보니 최애 해장음식도 예전만 못하다. 좋아하는 술을 대라면 종류 별로 댈 수 있지만 해장음식은 사실 뻔하다. 기본 공식은 정해져 있다. 잠과 물 그리고 (더럽지만) 용변이다. 이 세가지를 거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해장음식도 다 소용이 없다. 정확히는 공식에 필요한 세 가지 요소 중 마지막 사항을 해결하기 위한 요소라고 해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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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게티이미지)

개인차가 있지만 해장음식 1등 자리에 ‘숙주를 뺀 쌀국수’를 앉히고 싶다. 많이들 쌀국수에 “숙주 많이”를 외치는데 정작 베트남에서는 숙주를 넣어먹지 않는다. 반드시 탁할 정도로 진한 소고기 국물에 쫀득한 스지가 물컹하게 씹히는 쌀국수여야 한다. 속이 울렁거리고 술이라고는 다시는 쳐다보기도 싫을 때 “오후 5시쯤 한잔 더 마셔도 되겠는데?”라는 말이 나올 만큼 부드럽게 들어가야 한다. 식초와 설탕의 비율이 환상으로 절여진 양파 절임을 국물에 넣어 마지막에 마시면 이미 속은 풀려있다.

1등을 먹기 전에 전해질 음료를 먹는 것도 한 방법이다. 나는 꼭 파란색 파워에이드를 원샷한다. 보라색이나 게토레이를 먹어봤는데 어제 마지막에 먹은 안주를 확인할 따름이었다. 이온음료의 경우 숙취로 고생하는 이들에게 ‘생명수’로 불릴 정도로 이미 어느 정도 유명한 방법이다. 하지만 진정한 술꾼은 외국인들에게 ‘아이디에이치’(IdH)로 불리는 ‘갈아만든 배’의 효능을 익히 들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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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주재 외국인들이 본국 귀국 선물로 빼먹지 않고 가져가는 인기 1순위 선물이었던 ‘갈아만든 배’(사진제공=해태에이치티비㈜)

 

한때 미국 소셜네트워크(SNS) 이용자들 사이에서 아이디에이치 음료로 불리며 인기를 끌자 LG생활건강의 자회사 해태에이치티비(주)가 7일 숙취해소 성분을 함유한 ‘갈아만든 배 by 숙취비책’을 출시했을 정도다. 한국의 배는 서양배와 달리 과즙이 많고 달기로 유명한데 숙취제로 나오기 전부터 갈아만든 배는 이태원 편의점에서 레드불 만큼이나 인기가 많은 숙취제였다. 그들만의 여명808이랄까. 

어쨌거나 해장음식을 맛있게 먹으려고 끊었던 술을 다시 마실 수도 없고 어디 숙취 음식을 소재로 한 드라마나 영화 제작 안될까요? 제에발.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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