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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영화 '킹메이커'의 '킹' 설경구가 말하는 차기 대통령의 덕목은?

[人더컬처] 영화 ‘킹메이커’ 설경구
"각자의 대의를 위해 뛰는게 정치인같다"며 즉각적인 답변 피해
대신 영화 속 대사 들려주며 "결국 남는건 사람"강조

입력 2022-01-24 18:00 | 신문게재 2022-01-25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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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여파로 여러차례 개봉일을 미룬 영화 ‘킹메이커’가 드디어 개봉한다.지난 18일 화상인터뷰로 만난 설경구는 “솔직히 붕 뜬 느낌”이라며 웃어보였다.(사진제공=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정치가 참 무섭더라고요.”

대뜸 물었다. “대권에 도전한 정치인을 연기해보니 차기 대통령의 덕목은 뭐라고 생각하냐”고. 지난 정권에서 실재하는 것으로 드러난 블랙리스트로 고초를 겪은 설경구에게 “누가 대통령이 될 것 같으냐?” 물어도 대답하지 않을 것 같았기에 던진 질문이었다.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 대신 영화 ‘킹메이커’에서 가장 좋아하는 대사를 들려주겠다”고 했다.

“조우진씨가 영화의 마지막 즈음에 이선균씨에게 ‘당신의 대의가 김운범이면 나의 대의는 각하다. 정의는 승자의 단어다’라고 말해요. 참 무섭게 와닿더라고요. 각자의 정의를 위해서 싸우는 게 정치인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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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경구 (사진제공=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26일 개봉하는 이 영화는 설경구가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에 이어 변성현 감독과 다시 만난 작품이다. 故김대중 전 대통령이 1970년 신민당 대선 후보로 박정희와 대선 경쟁을 펼치는 여정과 그를 도운 ‘킹메이커’ 엄창록의 실화를 기반으로 한다. 설경구가 정치인 김운범, 이선균이 서창대를 연기한다. 베테랑 연기자인 그에게도 김대중 전 대통령 역할을 맡는다는 건 큰 부담이었다. 세간에 너무나 잘 알려진 한국 정치의 거목이기 때문이다. 

애초 시나리오의 이름도 ‘김대중’이었다. 실명에 대한 부담으로 이름을 바꾸자 제안해 받아들여졌지만 출연까지는 쉽지않았다. 그는 “배우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크게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관객의 시선이 걱정된다. 결과적으로 연기하기 어려운 인물이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영화 ‘자산어보’의 정약용도 실존인물이었지만 ‘킹메이커’만큼은 어렵지 않았다고.

“정약용은 대중적으로 덜 알려져 있어서 운신의 폭이 넓었죠. 개인적으로 두 영화는 저에게 누군가에게 ‘판’을 깔아주는 역할이어서 흥미로웠어요. 김운범은 보좌진들의 이야기를 주로 듣고 정약용은 어부 창대에게 글을 가르치죠. 주변인들의 기대감이 이뤄질 수 있도록 기꺼이 빛이 되는 인물이랄까요.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가 짙어지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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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경구 (사진제공=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운명인지 두 역할(정약용과 김운범)의 상대역인 변요한과 이선균이 연기한 극 중 인물의 이름이 모두 ‘창대’다. 현실적으로는 설경구와 한번쯤 호흡을 꿈꿔왔던 점과 극 중 그에게 큰 영향을 받는 일종의 스승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는 “‘자산어보’ 촬영할 때도 장창대인데 자꾸 ‘킹메이커’의 서창대라고 불러 이준익 감독님에게 혼나기도 했다. 지금 보니 창대라는 이름이 저를 창대하게 도와준 것 같다. 극 중에서도, 현장에서도 저를 많이 도와줬다”며 함께 연기한 후배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설경구는 영화에 대해 “제목에서도 느껴지지만 ‘킹’이 아닌 ‘킹메이커’다. 나는 그저 대권도전을 하는 큰 인물이 아닌 대의를 위해 싸우는 인간 김운범에 집중하고자 했다”며 겸손해했다.

김 전 대통령은 명연설가로도 유명하다. ‘킹메이커’에는 김운범의 진심이 느껴지는 연설장면이 수차례 나온다. 촬영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실존 모델이 구사한 지역 사투리 특훈을 받을 만큼 애를 썼지만 결국 모두 다 걷어내고 자신만의 말투를 완성해야 했다. 하지만 그의 스트레스는 다른 데서 왔다. 현장에서의 변수를 수없이 겪어온 그였지만 남을 설득하거나 누군가의 앞에서 말할 때며 떨리는 스스로의 성격을 지우기가 여전히 어려웠기 때문이다.

최대한 스케줄을 뒤로 미루고 싶었다는 그는 “대사량이 많았던 건 물론이고 당시 폭염이 대단해서 땀이 비오듯이 흘렀다. 무엇보다 다가오는 카메라의 속도를 맞춰가며 말을 해야 했다. 연설에 설득력까지 담아내야 했으니 정신적, 물리적 스트레스가 심해서 재미를 느낄 수가 없었다”며 당시의 고충을 털어놓았다.

그는 늘 자신의 연기가 “부족하다”며 출연작을 잘 보지 않는 배우로 유명하다. 꾸준히 필모그래피를 쌓는 비결에 대해서는 “결국 사람”이라는 자신의 연기관을 갈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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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경구가 가장 어려운 장면으로 꼽은 연설 장면.(사진제공=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작품에 참여하는 자체가 이미 모든 걸 얻은 거라고 생각해요. 안 해본 정치인 캐릭터도 해보고 영화 속에서 많이 마주치진 않았지만 이해영, 유재명, 조우진 배우와도 처음 호흡을 맞춰봤는데 그게 또 너무 좋은 거예요. 무엇보다 이 영화의 큰 미덕은 배우 보는 맛이랄까요.”

“아내 송윤아의 작품은 보냐”는 질문에 그는 “일에 대해 조언하거나 관여하지 않는다. 배우로서 존중할 뿐”이라며 “같이 작업하는 모든 배우가 영감을 준다”고 밝혔다.

“스태프도 마찬가지고요. 작품 안에서 주고받는 영감이 큽니다. 결국 사람이 남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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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경구 (사진제공=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배우로서 받는 트로피에 대해서도 솔직한 대답을 내놨다. 설경구에게 명성을 안긴 ‘박하사탕’을 필두로 베니스영화제 감독상 수상작 ‘오아시스’ 등이 흥행과 비평 모두에서 큰 성공을 거두며 국내외에서 주목받은 바 있다. 지난해 영화 ‘자산어보’로는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영평상)을 비롯해 청룡영화상, 한국영화제작가협회상 등 무려 5개의 남우주연상을 휩쓸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는 ‘영화를 하면 당연히 해외 영화제 많이 나가고 상도 많이 받는구나’ 오만한 생각을 했었어요. 너무 힘들어 참석하지 않은 영화제도 있었을 정도니까요. 그러다 보니 십여년 정도 상이 끊기던데요.(웃음). 데뷔 초반에는 멋모르고 받았지만 지금은 신인상을 받는 것처럼 떨려요. ‘상의 무게’라기 보다는 잘해야겠다는 마음이 더 큽니다. 상 받으려고 연기를 하는 건 아니지만 너무 감사한 일이니까요. 상은 열심히 하면 오는 것 같아요.”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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