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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탐구생활] '공해' 취급 받는 정당현수막…난립 방지 법안 처리 '안갯속'

입력 2023-12-17 13:48 | 신문게재 2023-12-18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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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미추홀구 주안역 앞 도로에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정당 현수막이 시야를 가리는 등 무분별하게 걸려있다. (인천시)

 

곳곳에 난립한 정당 현수막이 ‘공해’ 논란을 빚으며 지역 사회의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지역구 국회 의원들과 각 정당의 당협위원장(또는 지역위원장)들이 경쟁적으로 지역현안 관련 내년 예산을 확보했다고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해놓은 현수막을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다. 때로는 각 정당마다 특정정책을 헐뜯고 원색적인 비난을 담은 내용을 지역 번화가와 건널목에 잇달아 설치하면서 주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은 물론 환경오염의 주범으로도 떠오르고 있다. 내년 총선에 다가갈 수록 후보등록이 이뤄지면 이 같은 현상은 더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시, 혐오·비방 내용 금지 비롯 개수 제한 현수막 조례안 시행

이와 관련 서울시는 혐오나 비방, 모욕적인 내용을 금지하고 설치할 수 있는 현수막 개수를 제한하는 ‘옥외광고물 등의 관리와 옥외광고산업 진흥에 관한 조례’ 개정안을 14일부터 공포 시행했다.

해당 개정안은 국민의힘 소속 허훈·이성배 서울시의원이 각각 발의했다. 정당 현수막 난립을 규제해 시민의 통행안전을 확보하고 도시미관을 개선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국회가 정당 현수막 규제 법안 처리를 미루는 사이 지자체들이 우선적으로 현수막 난립을 방지하고자 조례를 개정한 것이다.

해당 개정안에 따르면, 정당 현수막의 경우 현재처럼 별도 신고하거나 허가를 받지 않고 장소 제한 없이 게시할 수 있다. 다만 개수는 제한돼, 공직선거법에 따른 국회의원 선거구별 행정동 개수 이내로 제한된다.

예를 들면 A 의원 선거구가 총 5개 행정동으로 이뤄졌다면 각 정당은 해당 선거구에 현수막을 5개씩 걸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정당이 적법한 신고 절차를 거쳐 지정게시대를 이용할 경우 개수 제한 규정에서 제외하도록 했다.

또 현수막에 특정인의 실명이나 단체를 언급하고 비방, 모욕하는 내용도 포함돼서는 안 된다. 만일 이를 위반할 경우 각 지자체 판단에 따라 철거를 명령하거나 직접 제거할 수 있다. 

정당 현수막 철거하는 울산시 관계자<YONHAP NO-2914>
지난 10월 울산시 관계자가 울주군 범서읍의 한 전봇대에 걸린 정당 현수막을 철거하고 있다. (연합)
◇지난해 옥외광고물법 개정, ‘정당 활동 자유 보장’ 명분…피해는 시민 몫

앞서 지난해 12월 여야는 옥외광고물법을 개정했다. 정당 활동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명분으로 정당 현수막은 일반 현수막과 달리 신고를 하지 않고, 장소나 개수에 관계없이 설치할 수 있게 됐다.

해당 법이 시행된 이후 정당 현수막은 급격히 증가하고 있고, 부작용과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의 몫이 됐다. 실제 혐오적인 표현이 섞인 정당 현수막으로 피로감을 호소하는 민원이 끊이지 않았고, 심지어는 공해로 취급되기도 한다.

국회 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시행 3개월 동안 6515건이던 정당 현수막 관련 민원은 법 시행 이후 3개월 새 1만 4197건으로 2.2배 이상 폭증했다.

현수막 난립으로 시민들의 안전도 위협되고 있다. 법 개정 이후 시민들의 안전사고도 8건 발생했다. 현수막 줄에 보행자가 걸려 넘어지기도 했으며 현수막이 너무 낮게 설치돼 통행을 방해하거나 신호등이나 표지판을 가리는 경우도 있었다.

이 같은 논란 속 시민들의 여론은 차가워졌다. 정당 현수막이 본래의 설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며, 정치와 관련된 정보 제공은 뒷전이고 상대를 겨냥한 비방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서울시의회가 지난 9월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시민의 78%는 ‘정당 현수막이 정당 정책이나 정치 현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고, 불쾌감을 느꼈다’고 답했다. 또 서울시가 조례를 개정해 정당 현수막을 관리해야 한다는 응답도 84.5%에 달했다.



◇조례 개정 지자체 전국 확산하는데…법 개정안은 국회 법사위 계류

이 같은 조례를 개정한 것은 서울시뿐만이 아니다. 인천, 광주, 울산, 대구, 세종 등에서도 정당 현수막을 규제하는 조례를 시행하거나 추진하고 있다. 경남 창원시는 지난달 정당 현수막 난립 방지를 위해 지역 정당 관계자들과 양해각서를 체결하기도 했다. 이처럼 현수막 관련 조례는 전국으로 확산하는 분위기다.

인천시가 지난 6월 전국 최초로 정당 현수막 게시에 대한 규제를 담은 조례를 공포하고 시행한 데 대해서는 인천시민 59.5%가 ‘조례제정 취지에 공감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관련 법이 바뀌지 않는 상황에서 지자체들의 조례안이 현수막 난립을 규제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대책이 될지는 미지수다.

지난 6월 행정안전부는 상위법(옥외광고물법)에 위배된다며 정당 현수막 강제 철거에 나섰던 인천시를 대법원에 제소, 집행정지 가처분을 신청해 제동이 걸리기도 했다. 해당 가처분 신청은 지난 9월 기각됐지만 법이 변경되기 전까지 혼란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국회는 지난 10월 일부 제한을 둔 옥외광고물법 개정안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통과시켰다. 개정안에 따르면, 정당의 현수막 설치는 보행자나 교통수단의 안전을 저해하지 않는 장소에 하도록 했고, 설치 기간이 만료된 경우 신속히 자진 철거하도록 하는 조항도 담겼다.

국회 행안위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강병원 의원은 “이 법으로 현수막 난립 문제는 풀 수 있지만, 분열과 갈등을 조장할 수 있는 ‘현수막 내용’ 문제는 입법 사안이 아니다”라며 “최근 여야가 신사협정을 맺은 만큼 양당이 현수막 내용도 그것에 맞게 채워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개정안은 당초 총선 3개월 전인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될 예정이었으나, 현재까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통과되지 않은 상태다. 무분별한 정당 현수막으로 시민들은 불편을 호소하지만, 일각에서는 정치권이 정치 활동에 제약이 되는 법안에 소극적으로 임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법안을 정비하지 못하면 현수막 공해는 더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대구 길거리 정당현수막 철거'<YONHAP NO-2081>
지난달 대구 수성구 직원들이 도시철도 2호선 수성구청역 인근 삼거리에 설치된 정당 현수막을 철거하고 있다. (연합)


◇게시 이후 대부분 소각…유해물질 배출하는 ‘환경오염’ 주범 전락

현수막은 또한 환경오염의 주범으로도 지목된다. 대부분 현수막은 플라스틱 합성섬유로 만들어져 땅에 묻어도 분해되지 않고 소각 처리 되는데, 그때마다 유해물질이 배출된다. 환경운동연합에 따르면, 현수막은 대부분 플라스틱 재질이며 현수막 1장은 4㎏의 온실가스와 다이옥신 같은 1급 발암물질을 배출한다.

일부 지자체와 국회의원실에서는 ‘업사이클’ 업체에 맡겨 자체 철거 후 마대, 고형연료 등으로 재활용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서울 송파구는 올해 폐현수막으로 장바구니 2130장을 제작해 1275장을 주민센터에 보급했다. 지난 2008년부터 관내에서 발생한 폐현수막을 수거, 훼손되지 않은 상태의 현수막을 활용해 장바구니, 손가방, 앞치마 등 재활용 제품 7000여개를 제작하고 주민들에게 무상 제공해 왔다. 이외에도 주민들의 신청과 계절에 따라 농사용 막, 마대, 앞치마, 선풍기 커버, 제초기 가림막 등을 제작했다.

정의당 장혜영 의원실도 버려지는 자원을 재사용하는 업사이클링 기업에 현수막 재사용을 맡기고 있다.

하지만 일부 지자체와 의원실을 제외하고, 게시 기간 15일이 지난 대부분의 폐현수막은 창고에 쌓인 뒤 쓰레기 처리장으로 옮겨진다.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 대선 기간 현수막 1111톤이 사용됐고 이 중 재활용된 비율은 24.6%에 그쳤다. 50.5%는 소각됐고 24.9%는 매립됐거나 창고에 보관 중인 것으로 집계됐다. 올해 상반기 기준, 전국에서 발생한 폐현수막은 2700여톤에 달한다.

기후위기로 환경 보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이 같은 현수막은 규제 사각지대에 놓인 채 골칫거리가 되고 있는 것이다.

권새나 기자 saena@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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