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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에 취하다] 엄마표 도시락… 추억의 입맛 다시다

입력 2015-04-2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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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페스티벌 시즌이다. 도시락 싸 들고 소풍에 나서기 좋은 계절이기도 하다. 

 

식당에 길게 늘어선 줄, 점심시간마다 지체되는 엘리베이터 앞. 반복되는 일상과 사회 생활이 길어질수록 ‘오늘 반찬은 뭐지?’라고 궁금했던 학창 시절이 더욱 그리워진다. 

 

급식이 일반화된 뒤부터 도시락 쌀 일이 없어졌지만 조금이나마 따듯하게 보온이 유지되는 일제 도시락통이 부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시절도 있었고 학년이 올라갈 수록 도시락 개수도 많아졌다. 

 

최근 유난히 눈에 띄게 늘기 시작한 도시락 집들, 그 시절 우리 도시락 이야기는 그렇게 또 트렌드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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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표 도시락은 '학창시절의 SNS'


“지금도 생각나. 난 네 도시락 때문에 너랑 꼭 친구해야겠다고 결심했으니까.”
급식을 먹던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 사귄 친구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했다.

 

그 흔한 소시지 부침, 계란말이, 어묵반찬 등 그 나이 또래 청소년들이 좋아할만한 건 없었는데도 친구들은 지금까지 도시락을 기억한다.

도시락은 언제나 시골 큰댁에서 보내온 쌀, 집 담장을 타고 오른 울타리 콩이나 강낭콩을 밤새 불려 새벽에 갓 지은 잡곡밥이 기본이었다. 그리고 반찬은 엄마가 직접 담근 다양한 종류의 김치와 색깔을 맞춰 막 무친 각종 나물이나 밑반찬이었다.

단 한번도 전날 밤에 지은 밥이나 만든 반찬으로 도시락을 싸주신 적이 없었다. 한소끔 김이 나갈 때까지 뚜껑을 열어 두었다 덮어야 밥이 식어도 맛있다는 엄마의 지론은 4남매 중 막내의 마지막 도시락을 싸는 그날까지 지켜졌다. 그런 엄마의 일상은 이르면 새벽 3시부터 시작한다. 그렇게 엄마는 20년 넘게 새벽밥을 하셨다. 


“너무 어려웠던 때라 좋은 반찬도 못 싸주고… 지금도 자꾸만 마음에 걸려.”
그런데도 엄마는 지금도 가끔 말씀하신다. 풍족하지 못한 살림에 다른 아이들처럼 햄이며 고기반찬을 해주지 못해 미안했다고.

 

하지만 그 도시락을 10분도 안되는 쉬는 시간에 허겁지겁 까먹는 일은 차마 하지 못했다. 철이라고는 없던 열너댓 살 짜리 친구들도 “네 건 둬. 지금은 내 도시락 같이 먹고 네 건 점심시간에 천천히 먹자”고 하곤 했다. 

 

지금도 그 시절 친구들은 여전히 살고 계신 그때 그 단독주택에 찾아와 엄마의 밥을 먹고 가곤 한다. “그래 이 맛이야.” 엄마의 도시락은 그렇게 학창시절부터 SNS였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 엄마표 도시락은 '모성의 대물림'

오랜만에 친정에 가니 그릇장을 정리하는 엄마가 ‘에고. 이런 것도 있었네’라며 웃음을 터트리신다. 거기엔 언니와 내가 서로 싸가겠다고 싸우던 공주 캐릭터가 그려진 양은 도시락통이 있었다. 

 

지금은 칠도 벗겨지고 조잡하기 그지없는 모양인데 그때는 왜 그리 예뻐보였는지…. 지금은 각종 캐릭터가 그려진 예쁜 도시락통이 시중에 널렸지만 그때는 양은으로 만든 통에 밥을 담고 작은 유리병에 담은 신김치가 도시락의 기본 베이스였다. 

 

비엔나 소세지에 케첩이 들어간 날은 횡재한 날이었다. 보온 도시락 가장 아래단에 담긴 국이나 물이 샜을 때의 그 참담함이란…. 

 

3녀 1남이었던 우리집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새로운 도시락통을 쓰고 물려받는 식이었다. 셋째 딸인 내가 받는 보온도시락의 온도는 (당연히) 김이 나지 않는 정도였다. 게다가 야간자율 학습이 필수였던 고3인 큰언니의 도시락 개수는 자그마치 3개였다. 

 

중학생이었던 둘째 언니가 고등학교에 올라가자 막내 동생까지 싸가야 할 도시락까지 합하면 5개는 기본으로 챙겨야 하는 엄마의 아침은 전쟁이었을 터다. 하지만 당시에는 전혀 몰랐다. 그 사실을 깨달은 건 고작 며칠 전이다.

고작 40개월이 된 아들녀석의 유치원에서 가정통신문이 왔다. 곧 어린이대공원으로 소풍을 간다는 소식이었다. 준비물에는 ‘엄마표 도시락’이라고 써 있었는데 워킹맘의 눈에는 ‘동물 캐릭터를 한 화려하고 맛있는 도시락’으로 읽혔다. 

 

출발은 10시인데 새벽같이 일어나 계란으로 토끼 귀를 감싸고, 김으로 눈 모양을 오리는 데만 두시간이 훌쩍 흘렀다. 고작 하루만 싸도 이렇게 고된데 엄마는 몇년의 아침을 모성으로 점철시킨걸까. 도시락은 그렇게 과시욕이자 슬픔의 이중주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 엄마표 도시락은 '재수시절 활력소'

엄마는 예나 지금이나 살림에 서툴다. 남들은 딸내미가 어지르면 살림의 신 엄마가 치운다는데 우리 집은 반대였다. 정리벽이 있는 나는 엄마가 어지르면 잔소리하며 치우기 바빴다. 엄마의 살림솜씨는 도시락에서도 드러났다. 

 

운동을 하는 동생의 뒷바라지를 하던 터라 엄마 역시 밤잠이 부족했고 그런 엄마의 피곤을 증명하듯 내 도시락에는 눌어붙은 콩자반이나 국물이 흥건히 샌 김치로 가득했다.

 

친구들이 아기자기한 캐릭터 도시락통에 보기 좋게 반찬이 담긴 도시락을 꺼낼 때마다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나는 늘 게눈 감추듯 허겁지겁 도시락을 먹어치우곤 했다.

꼭 공부 못하는 애들이 공부하기 전에 책상정리를 한다는데 학창시절의 내가 딱 그 꼴이었다. 시험 전날 괜히 책상을 치우다 초치기로 공부하고 시험을 봤으니 성적이 좋을 리 만무다. 결국 재수의 길로 들어선 날 위해 엄마는 3층 찬합을 준비했다.

체력이 국력이라고 했던가. 1층엔 마른 반찬, 2층엔 고기반찬, 3층에는 밥이 한가득 든 3층 찬합은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고 온 학원의 명물로 거듭났다. 

 

물론 엄마의 살림솜씨를 증명하듯 가끔 고춧가루가 붙은 사과가 디저트로 들어있긴 했지만! 다른 친구들은 라면이나 인스턴트 간식을 먹을 때 엄마의 정성을 먹고 독하게 공부한 나는 대학 합격증으로 보답할 수 있었다.

조은별 기자 mulgae@viva100.com


◇ 꾹꾹 눌러 담은 엄마표 도시락은 '그리움'

도시락에 대한 추억은 딱 하나다. 남들은 도시락을 열 때 반찬을 궁금해 하지만 내 걱정은 숟가락이 안 들어갈 정도로 압축된 밥에 있었다. 

 

꾹꾹 눌러 담은 밥은 그 모양부터 다르다. 일반 도시락은 뚜껑을 닫으면 평평하지만 이 녀석은 오목하다. 처음에 밥을 눌러 담느라 한차례 누르면 나중에는 속에서 뚜껑을 빨아들인다.

눌러 담긴 밥은 일단 식감이 별로다. 살살살… 밥 위를 긁어서 숟가락에 얹고 그걸 입안에 넣어야 적당히 공기가 섞여 씹기에 좋다. 반면 숟가락으로 꾹 눌러서 떼어내는 밥은 마치 떡같이 입안에서 끈적인다. 무엇보다 모양새가 나쁘다. 남의 시선을 신경 쓰는 데 온정신을 쏟던 학창시절엔 그것도 나름대로 스트레스였다.

“양이 많아. 그러니 제발, 제발 밥 좀 적당히(보기 좋게)담아줘.”
한 때는 일부러 밥을 남겨 시위도 했다. 그래도 엄마는 변하지 않았다. 

 

여름에 쓰는 플라스틱 도시락은 밥 때문에 모양이 틀어졌고, 겨울에 쓰는 보온 도시락은 너무 튼튼해 힘 좋은 엄마와 만나면 주는 대로 밥을 채워 넣었다. 그렇게 학교에서 급식을 하기 전까지 남보다 무거운 도시락을 들고 다녀야 했다.

집을 떠나 서울에서 홀로 생활한 지 10년이 다 되어 간다. 그러보니 자주 사먹는 즉석밥도 눌러져 담겨 있다. 하지만 별 생각이 없다. 사먹는 밥이고 배만 채우면 되니까. 여기엔 특별한 불평도 애정도 추억도 없다. 

 

가끔은 눌러 담은 엄마의 밥이 그립다. 도시락 뚜껑을 열면 떠오르는 엄마의 뒷모습이 그립다. 아침 일찍 일어나 굳이 새 밥을 안치고 내가 좋아하는 갈비 맛 햄을 굽던 그 모습이 이제는 아련한 추억이 됐다.

김동민 기자 7000-ja@viva100.com


◇ 최근 SNS에 회자 되고 있는 도시락 맛있는 집
 

▲통인시장 도시락 카페 : 서울 종로구 통인시장에는 떡, 나물, 잡채, 분식까지 다양한 음식들을 골라 먹을 수 있는 ‘도시락카페’가 성업 중이다. 엽전을 이용해 5000원이면 원하는 대로 골라먹을 수 있어 다양한 선택권을 중시하는 젊은층의 인기가 매우 높다. 고기연근전, 잡채, 계란말이 등 제대로 된 반찬부터 기름떡볶이 같은 길거리음식까지 취향대로 골라먹을 수 있다. 도시락카페 이용 시간은 매주 화~일요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다. 도시락을 이용할 수 있는 엽전 판매는 오후 4시까지다. 매달 셋째 주 일요일은 시장 전체 휴일이다.

▲ 직접 골라 담는 도시락 반찬 ‘밥도’ : 인스턴트 재료와 화학조미료를 사용하지 않는 수제 도시락 전문점이다. 고슬고슬한 밥과 매일매일 달라지는 반찬을 묶어 판매한다. 인스턴트 재료나 화학조미료 없이 반찬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흡사 집에서 먹는 듯한 반찬을 맛볼 수 있다. 반찬 개수에 따라 5000원부터 9000원 선으로 구성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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