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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과거를 기억하는 우리의 방법 '아날로그'와 '슈가맨'

20살의 TTL 임은경 '치외법권'으로 11년 만에 스크린 복귀
아쉽게 막을 내린 '슈가맨을 찾아서', 대중은 또 다른 슈가맨을 기다려

입력 2015-09-0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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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임은경이 과거 출연한 TTL 광고. (사진 제공=SK텔레콤)

‘스무살의 TTL’
1999년 우리나라 최초 티저 광고와 함께 혜성처럼 등장한 소녀가 있었다. 순정만화 주인공을 떠올리게 하는 귀여운 외모에 몽환적 매력을 갖춘 그녀는 당시 많은 사람을 매료시켰다.

 

그녀의 이름은 임은경. 최근 영화 ‘치외법권’으로 오랜만에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과거 CF에서 보여줬던 풋풋함은 사라졌지만 세월이 흐른 그녀의 미모는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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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뮤지션을 찾아 떠나는 과정을 그린 영화 '서칭 포 슈가맨'.(사진제공=판씨네마)

임은경을 최근 유행하는 말로 부르자면 ‘슈가맨’이다.

 

이는 유재석·유희열이 진행한 프로그램 JTBC ‘투유 프로젝트-슈가맨을 찾아서’에서 나온 신조어로 대중의 기억 속에 강한 인상을 남기고 사라진 유명인을 뜻한다.

 

그 유래는 갑자기 사라진 뮤지션을 찾아 떠나는 과정을 따른 다큐멘터리 영화 ‘서칭 포 슈가맨(Searching For Sugarman)’이다. 그 주인공은 팝 역사상 ‘가장 신비로운 가수’로 불리는 가수 로드리게즈다.

1970년대 우연히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흘러온 그의 앨범은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그 노래를 따라 부르는 사람들은 정작 그 가수에 대해서 모른다.

 

그저 앨범의 타이틀곡이자 남아공에서의 애칭 ‘슈가맨’으로 부를 뿐이다. 영화는 자신의 노래가 히트를 기록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살아가는 로드리게즈를 직접 만나 과거의 영광을 전한다.

TV ‘슈가맨을 찾아서’는 2회 방영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유재석의 첫 종편 진출작이자 유희열과 의기투합해 탄생한 프로그램이 앞으로 계속될지는 미지수다.

 

시청자 반응도 MBC ‘무한도전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의 연장선상이라는 평이 잊혀진 사람을 찾는 과정이 즐거웠다는 평가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우리는 잠시 잊었던 가수 박준희, 김준선, 김부용 등을 만날 수 있었다.


 

◇스무살 외치던 'TTL소녀' 임은경… 어느덧 서른한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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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영화 '치외법권'으로 돌아온 서른한살의 임은경.(사진=양윤모 기자)

임은경은 TTL 광고로 단번에 스타가 됐다. 이후 그녀는 제작비 110억원이 들어간 장선우 감독의 대작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2002) 주인공으로 배우에 도전했다.

 

하지만 흥행에 실패하면서 그녀의 배우 생활은 삐끗거렸다. 이후 ‘품행제로’, ‘시실리 2Km’, ‘인형사’ 등 다양한 작품에 출연했지만 관객에게 별다른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임은경은 ‘치외법권’으로 11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했다. 배우 임창정, 최다니엘과 출연한 영화에서 그녀는 사라진 동생을 찾기 위해 홀로 범죄 조직에 맞서는 언니를 연기했다.

 

영화 속 그녀는 안쓰러울 정도로 가냘프다. 영화 홍보차 실제로 만난 임은경은 그동안 자신에게 있었던 일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어린 나이게 갑자기 얻게 된 유명세와 홀로 견뎌야 했던 고통 그리고 앞으로의 각오까지 차분하게 말을 이어가는 그녀에게 더 이상의 망설임은 없어 보였다.

“20대는 많이 힘들었어요. 갑자기 인기를 얻었다가 반대로 그것이 사라지니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죠. 그러다 30살이 지나니 조금씩 변하는 것 같아요. 낯가림도 많이 나아졌고 주어진 작품에도 최선을 다해요. 배우로서는 한 번에 주목받지 않고 단계별로 조금씩 나아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어요. 과거 감당할 수 없는 큰 행운이 왔었고 이제는 스스로 배우의 삶을 만들어 가려고요.”

‘치외법권’ 개봉에 맞춰 임은경의 이름이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한동안 오르내렸다. 연관 검색어는 아직도 TTL이다. 그녀에게 ‘임은경이라는 사람 자체가 아날로그의 아이콘이 되어 버린 것 같다’고 물었다.

“어찌 됐건 예전의 저를 기억해 주시는 건 감사해요. TTL 소녀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한 건 저의 문제죠. 대중에게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어요. 앞으로는 배우로서 작품으로 그 벽을 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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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은경이 2002년 주인공으로 출연한 영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어쩌면 너무 앞서 갔던 게 아닐까. 영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임은경이 출연하고 ‘경마장 가는 길’, ‘화엄경’, ‘꽃잎’, ‘거짓말’ 등의 장선우 감독이 연출한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은 제작기간만 3년이 걸릴 정도로 공을 들인 작품이다.

 

당시 쏟아 부은 제작비만 110억원이다. 영화는 현실의 주인공이 성냥팔이 소녀를 구하기 위해 컴퓨터 게임의 세계에 진입하는 내용을 그린 SF 액션물이다.

 

성냥팔이 소녀와 그를 가로막는 시스템의 존재는 3년 앞서 개봉한 ‘매트릭스(1999)’와 비슷하다. 하지만 그 표현 방식과 이야기 전개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차라리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이 B급 정서가 하나의 장르로 인식되는 요즘 개봉했다면 좀 더 나은 평가를 받지 않았을까.  



◇풋풋했던 '여고생 가수' 박준희… 어느덧 애기엄마


프로그램이 찾은 1대 ‘슈가맨’은 1992년 여고생 가수로 데뷔해 ‘눈감아 봐도’를 부른 박준희였다. 혼성그룹 ‘콜라’의 멤버였던 그녀는 곧 활동을 중단했다.

 

박준희는 만삭인 몸으로 프로그램에 출연했고 자신의 히트곡 ‘눈감아 봐도’를 불렀다. 노래가 시작되자 유재석, 유희열을 비롯한 출연자들은 각자의 추억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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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낸 가수 박준희 (사진 제공=JTBC)


박준희를 시작으로 1993년 ‘아라비안 나이트’를 부른 가수 김준선이 2대 ‘슈가맨’으로 소개됐다. 그의 외모는 영화 ‘서칭 포 슈가맨’ 주인공 로드리게즈와 묘하게 닮았다. 자연스레 기른 머리와 콧수염 그리고 안경이 시청자에게 영화 속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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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희·김준선, 잊혀졌던 왕년의 스타를 찾아 나서는 JTBC 예능 '슈가맨을 찾아서'.(사진제공=JTBC 제공)

 

김준선은 1990년대 후반부터는 ‘백설공주’, ‘승부사’, ‘비천무’ 등 영화와 드라마 OST에 참여했다.

 

가수 서영은, 컨츄리꼬꼬, KCM 등 음반 작업을 하며 프로듀서로도 활동 중이다. 육체 노동자로 일하는 로드리게즈에 버금가는 반전을 기대한 시청자는 그런 김준선의 모습에 실망했다.

 

하지만 김준선이 다시 선 무대에서 ‘아라비안 나이트’를 부르는 순간 시청자의 실망은 금세 사라졌다.

 

두 사람을 시작으로 프로그램에는 ‘풍요 속의 빈곤’의 김부용과 드라마 ‘질투’의 OST를 부른 유승범이 출연했다.

 

故최진실·최수종 주연의 ‘질투’ OST는 요즘도 노래방에서 많이 부르는 애창곡 중 하나다. 특히 유승범은 TV 출연이 극히 적은 가수라 더욱 눈길을 끌었다.


대중은 또 다른 ‘슈가맨’을 기다리고 있다. CF, 드라마, 영화, 가수, 스포츠 등 분야는 상관없다. 트렌드는 빠르게 변하고 대중은 예나 지금이나 변덕이 심하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슈가맨’을 찾아나선다.

대중은 ‘아날로그’라는 이름으로 과거를 기억하고 이제는 ‘슈가맨’이라고 부르며 떠나간 사람을 그리워한다. ‘아날로그’는 사라져도 우리의 기억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글=김동민 기자 7000-ja@viva100.com

사진=양윤모 기자 yym@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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