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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흐르는 시간 속에 잊혀졌던 추억… 턴테이블 위 음악여행 'LP'

[아날로그에 취하다] 턴테이블 위 음악여행 LP판

입력 2015-06-2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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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지경제 조은별 기자 = 그 시절, 음악 좀 듣는다는 여드름투성이 더벅머리 소년들은 청계천과 세운상가로 몰려들었다. 수북이 쌓인 해적판(복제판) LP 속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나 팻 매스니, 핑크 플로이드의 앨범을 구하면 세상을 다 가진 듯 팔짝팔짝 뛰곤 했다. 해적판이면 어떠랴. 먼지를 털어내고 턴테이블 위 바늘을 LP판의 갈라진 홈 사이에 얹으면 ‘툭, 툭’ 소리와 함께 흘러나오는 음악에 전율을 느꼈다. 청계천 황학동의 돌레코드나 장안레코드는 온갖 장르의 라이선스 레코드를 구할 수 있는 ‘보고’(寶庫)였다. 10대의 열정을 30Cm짜리 플라스틱 검정판에 바쳤던 ‘LP 키즈’들. 어느덧 세월은 흘러 강산이 여러 번 변했지만 그때 그 시절 ‘LP 키즈’들은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는 말처럼 LP를 향한 애정만큼은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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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회현동 지하상가 리빙사에 가면 다양한 중고 LP들을 만나볼 수 있다. 리빙사 전경.

 


◇LP수집광, 사연도 각양각색

서울 서초구 반포동 서영준한의원의 서영준(45) 원장은 지인들 사이에서 소문난 LP 수집가다. 어린 시절, 비틀즈 앨범을 사오라는 누나의 심부름을 다니다 약 1만장 가량 LP를 수집하기에 이르렀다. 수많은 앨범을 사들였지만 서 원장은 특히 중학교 2학년 때 장장 9개월을 기다려 산 ‘데릭 앤 더 도미노스’의 ‘레일라’ 앨범을 잊지 못하다. ‘데릭 앤 더 도미노스’는 에릭 클랩톤과 올밴 브라더스 밴드의 듀언 올맨이 의기투합한 밴드. ‘레일라’는 조지 해리슨의 전처이자 에릭 클랩톤에게 음악적 영감을 안긴 뮤즈 패티 보이드에게 바치는 노래로 잘 알려져 있다. 서 원장은 “중학생이 사랑을 알면 얼마나 안다고…그 시절 부산지역 최대 레코드 가게인 먹통 레코드를 번질나게 드나들며 9개월의 기다림 끝에 이 앨범을 손에 넣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룹 R.ef 출신 박철우(46)는 연예계 대표 LP수집가로 꼽힌다. 그는 가요계를 은퇴한 뒤 6년 전부터 서울 이촌동에 ‘이촌연가’라는 LP바를 운영 중이다. DJ출신인 박철우는 “어린 시절부터 레코드를 모았고 또 DJ를 하면서 레코드를 틀다 보니 자연스럽게 수집하기에 이르렀다”며 “현재 약 1만 장 가량 모은 것 같은데 좋은 음악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LP바를 차렸다”고 말했다.

그의 가게에서는 수집가들 사이에서 희귀본으로 꼽히는 ‘아름다운 강산’이 수록된 김정미 앨범을 비롯해 박철우가 활동했던 90년대 가수인 서태지와 아이들, 룰라, 듀스 앨범과 R.ef의 PR레코드도 볼 수 있다. 박철우는 “국내 LP생산이 1994년을 기점으로 중단돼 1995년 데뷔한 R.ef는 LP를 내지 못했다”며 “다만 PR을 위한 LP는 제작했는데 이 앨범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박철우의 가게에서 R.ef 노래는 듣지 못한다. 박철우는 “너무 많은 손님들이 이 노래를 신청해 아예 R.ef노래는 틀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정했다”고 양해를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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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회현동 지하상가 리빙사에서 만나볼 수 있는 중고 LP들.

 


흔히 ‘LP’라고 통칭되지만 레코드의 본명은 바이닐(Vinyl)이다. 음악을 담는 양에 따라 크게 싱글, EP, LP로 분류된다. LP는 롱 플레이(Long Play)의 약자다. 음반직배사인 소니뮤직에 근무하다 서울 마포구 동교동에서 김밥레코즈를 운영하는 김영혁 대표는 “흔히 12인치 바이닐을 ‘LP’라고 통칭한다”며 “1~2곡만 담긴 싱글은 7인치 크기라 도넛반이라고 부른다”고 설명했다.

서울 중구 회현동 지하상가는 최근 중고 LP시장에서 가장 핫한 곳이다. 리빙사, 파파게노, LP러브 등 중고 LP가게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특히 리빙사는 이곳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가수 나얼과 장재인이 이곳의 단골. 리빙사 정은경(46)사장은 “대기업 사장님들도 종종 우리 가게를 찾는다”며 “예전엔 장년층이 주로 찾았다면 요즘은 20~30대들이 힙합음반을 찾곤한다”고 말했다.

때 마침 이곳을 찾은 가수 나얼은 “한달에 한 번 정도 리빙사를 찾는데 올 때마다 20~30장 정도 사곤한다. 얼마 전에는 쉽게 보기 힘든 뉴에디션의 앨범을 구해 뛸 듯이 기뻤다”고 말했다. KBS 라디오 ‘나얼의 음악세계’를 통해 LP사운드 음악을 들려줬던 나얼은 LP의 매력으로 ‘수집의 기쁨’을 꼽는다. 그는 “디지털 시대는 물질적인 형체가 없어지는 느낌인데 CD보다 크기가 큰 LP는 손에 잡히는 기쁨을 안긴다”고 설명했다. 뮤지션 출신으로 강남구 압구정동에서 LP바 ‘핑가스존’을 운영하는 김남욱 대표도 “옛 LP판의 경우 앤디워홀 등 유명 작가들이 재킷을 디자인 해 수집가들 사이에서 경쟁이 치열하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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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자의 동백아가씨 앨범 (조은별 기자)

 


◇부활한 LP, 추억의 테두리 안에 가두지 마세요

많은 이들이 LP의 음질은 CD와 다르다고 말하지만 실제 CD와 LP의 소리는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조현일 숭의여대 영상콘텐츠학과 교수는 “디지털화된 CD가 가청주파수 외 대역을 생략하는 반면 LP는 그 대역을 재생해 느낌이 풍부하다고 하는데 실제로 일반인이 느끼기는 어렵다”며 “블라인드 테스트를 해도 CD와 LP 음질을 구분하는 이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대다수 LP마니아들도 “CD와 LP의 음질 구분은 무의미하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LP를 고집하는 이유에 대해 LP마니아들은 ‘따뜻함’과 ‘수고스러움’을 꼽았다. 나얼은 “소리는 비슷하지만 LP특유의 아날로그 느낌이 좋다”고 말했고 박철우는 “LP를 들을 때의 번거로움이 좋다. 재킷을 꺼내 판을 닦고 턴테이블에 올려놓는 수고로움이 음악에 정성을 들이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실제 LP는 보관도 용이하지 않다. 수직으로 빽빽하게 세워놓으면 모를까, 수납공간에 사선으로 세울 경우 판이 휘어 바늘이 튀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 때 적당히 두꺼운 유리에 판을 끼워 햇볕에 말리면 휘어진 판이 복구된다. 마니아들 사이에서 내려오는 일종의 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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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바나 LP

 


일각에서는 LP를 복고열풍의 일환으로 보는 시각에 거부감을 드러낸다. 김영혁 김밥레코즈 사장은 “LP열풍은 최근 갑자기 일어난 게 아니다. 2000년대, 미국 독립 레코드 음반사들이 레코드 스토어데이를 개최하며 붐이 일기 시작했다”며 “이미 해외에서는 수요가 공급을 앞질러 해외 레코드 공장에 주문하며 6개월 이상 걸리곤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과거에 비해 10~30대 젊은 수집가들이 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일보 기자 출신으로 지난해 ‘대중가요 LP가이드북’을 발매한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역시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국내 LP수요가 1000장 정도였는데 지금은 2000장을 내도 금새 품절된다. 시장이 2배 가량 늘었다”며 “서울 레코드페어가 올해 5회를 맞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지 않나. CD시장은 침체됐지만 LP는 단순한 복고 일환이 아닌 매머드 마켓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씨는 특히 지드래곤, 아이유 등 아이돌 가수들의 LP제작에 주목하며 “K-팝 붐을 통해 중고교생들과 해외 10대들도 한정반LP를 수집한다”며 “이제 LP가 고미술품같은 수집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시대가 왔다”고 말했다. 실제로 윤심덕이 부른 ‘사의 찬미’ LP는 1억원을 호가하고 신중현의 데뷔 앨범도 1000만원대에 거래된다. 최씨는 “지금은 LP가 음반 시장을 주도해나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홍대서 회현동까지… LP원정대

 

LP를 수집하는 이들의 취향은 다양하다. 신규 라이선스 LP를 사고 싶다면 홍대로, 중고LP를 사고 싶다면 회현동 지하상가나 황학동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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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앞 

 

김밥레코즈 : 음반레이블이면서 LP매장도 운영한다. 국내 잘 소개 되지 않는 해외 음악 앨범과 김영혁 대표가 좋다고 생각하는 국내외 앨범들을 바이닐 중심으로 판매한다.

 

메타복스 : 홍대 앞에서 17년 역사를 자랑하는 음반전문점. 별도의 LP룸을 구비하고 있으며 재즈, 사이키델릭, 프로그레시브, 포크, 록, 메탈, 팝, 제3세계 월드뮤직, 가요 등 약 8만장에 달하는 신품 및 중고 LP가 구비돼 있다. 

 

시트레코드 : 미국에서 직접 셀렉션해 가져오는 미국 프레싱 음반을 주로 판매한다. 장르는 팝, 클래식, 록, 포크, 소울 재즈 등을 주로 취급한다.

 

토이레코드 : 독일에서 수입하는 일렉트로닉 음반 및 일본에서 발표된 중고 희귀 도넛싱글 등을 만날 수 있다. 

 

-회현동 지하상가 리빙사  

 

국내 최대 중고 LP판매점. 리빙사를 중심으로 LP러브, 파파게노 등이 몰려있다. 

 

-청계천 돌레코드&장안레코드 

 

1980년대부터 해적판과 라이선스 LP를 취급하는대표적인 LP 판매점이다. 지금은 중고CD, LP 판매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서울레코드페어 

 

올해로 5회를 맞는 레코드 애호가들의 축제. 올해는 서울 가양동 한일물류창고에서 열리며 90여개의 판매 부스에서 음반사, 레코드숍, 개인 판매자가 직접 들고 나온 음반들을 판매한다.

 

글·사진 = 조은별 기자 mulga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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