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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지 칼럼] 마스크와 싸웠던 대통령

입력 2020-12-10 14:07 | 신문게재 2020-12-11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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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호 GGL리더십그룹 대표

코로나19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마스크는 어떤 의미일까? 이제 생활필수품이 된 마스크는 자신을 보호하는 최소한의 장치를 넘어 타인을 보호하는 배려의 상징이다. 더불어 논란과 불안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지난 11월 27일 기준 미국의 하루 신규 확진자는 20만명을 넘어섰다. 이 와중에도 절대 마스크를 쓰지 않으려 했던 사람이 있다. 바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다.

코로나19에 확진됐음에도 입원 사흘만에 조기퇴원을 강행하고 백악관 복귀 직후엔 노 마스크로 오피스 안팎을 활보하는 것도 모자라 지지자들 앞에서 연설까지 한다. 공식적으로 완치 판정을 받지 않은 상태인데도 트럼프가 이렇게까지 고집스럽게 마스크를 거부하는 이유가 뭘까?

첫째 위험에 관한 인식 차이에서 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 2020년 4월 ABC뉴스와 입소스(Ipsos)의 조사에 의하면 “지난 1주일 동안에 집 밖에 나갈 때 마스크를 썼는가”라는 질문에 공화당 지지자들은 47%만 “그렇다”고 답했다. 반면 민주당 지지자들은 69%가 마스크를 했다고 대답했고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고 한 사람들은 31%에 불과했다. 마스크 착용에 대해 공화당과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는 22%라는 큰 차이가 존재한다.

그런데 여기엔 특별한 원인이 숨겨져 있다. 인류학자 매리 더글러스와 정치학자 아론 윌다브스키는 특정한 집단을 ‘위계-평등’과 ‘개인-집단’이라는 두개의 축을 이용해 4가지 부류로 나눴다. 개인적이고 위계적인 성향이 강한 ‘위계주의자’와 평등적이고 집단적 성향이 강한 ‘평등주의자’는 위험을 인식하는 데 정반대의 성향을 보였다. 위계주의자들은 인간이 자연의 힘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반면 평등주의자들은 자연의 힘이 매우 강력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기후 위기나 원자력 발전 등의 민감한 상황을 두고도 위계주의자들은 ‘위험하지 않다’, 평등주의자들은 ‘위험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흥미로운 건 공화당 지지자들 가운데 위계주의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많고 민주당 지지자들은 평등주의적 성향이 더 많았다. 위험에 대한 이런 인식 차이가 트럼프는 물론 지지자나 시민들의 마스크 착용 여부를 가르는 중요한 원인이었던 것이다.

둘째, 트럼프 대통령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코로나19 사태가 진전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 엉뚱한 행동들을 보임으로써 언론과 대중의 관심을 묶어두려는 목적이 깔려있다. 마스크 거부, 조기 퇴원,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말라리아 치료제인 하이드록시 클로로퀸 복용 등 트럼프가 비이성적인 행동을 할 때마다 큰 논란이 일고 언론과 대중의 관심이 집중되기 때문이다. 코로나19의 심각성을 부각시키는 CNN 등의 언론을 가짜뉴스라고 비난하는 것도 그래서다. 코로나 사태의 진짜 본질인 미국 의료 시스템의 문제, 경제적 문제 등 공론의 장에서 정작 논의해야 할 에너지가 트럼프의 이런 행동에 대해 논쟁을 벌이느라 허비되고 있는 셈이다.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에는 전염병과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이라고 강조한다.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서 최소한의 성실성을 저버렸던 트럼프에게 코로나 확진과 대선 패배는 어쩌면 예정된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정인호 GGL리더십그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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