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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의칼럼]코끼리 다리처럼 퉁퉁 붓고 움푹 들어가면 나올 줄 모르는 림프부종

입력 2022-09-23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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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기 연세에스의원 원장



림프배액술·미세림프수술·줄기세포주입 복합술로 부종 30% 이상 감소



림프계(임파계)는 면역계의 필수 구성요소이자 ‘제2의 순환계’로 불린다. 우선 감염성 병원체나 암과 싸우는 림프구(백혈구의 일종: T세포, B세포, NK세포 등)를 생성 및 순환시킨다.

전신에 분포하는 얇은 림프관을 통해 체액을 이동시킨다. 즉 소화관에서 흡수한 영양물질을 세포 곳곳에 나르며, 체액 중 노폐물을 정맥을 통해 몸 밖으로 배출하는 중대한 역할을 한다.

선천성(유전성, 1차성) 림프부종은 인구 6000명당 1명꼴로 생기고 림프관이 기형을 보이는 경우가 있어 치료가 더욱 어렵다. 최근 국내 연구진이 우리나라 선천성 림프부종은 서구인에서 별로 발견되지 않는 CELSR1 유전자가 높은 비율로 발견된다고 발표해 주목을 끌었다.

대부분의 림프부종은 후천성(2차성)이다. 암 수술이나 항암 방사선치료에 따른 후유증으로 생기는 게 태반이다. 유방암이나 자궁암 등 암 수술 시 전이를 막기 위해 주위 림프절을 광범위하게 절개함으로써 유발되는 경우가 가장 많다. 유방암은 팔에, 자궁암은 하지에 주로 림프부종을 유발한다. 방사선치료나 외상, 감염으로도 발생한다.

유방암의 경우 수술만 받았으면 2~27%, 방사선치료만 받았으면 9~36%의 환자에서 림프부종이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다. 건강보험공단이 올해 1월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전체 림프부종 진료인원은 2016년 1만8882명에서 2020년 2만8109명으로 9277명 증가했다. 성별로는 남성 7063명, 여성 2만1046명으로 약 1대3의 비율을 보였다.

증상은 선천성이 코끼리껍질 같은 피부를 보이는 경향이 더 강한 반면 후천성은 함요부종이라 하여 부종이 생긴 피부를 누르면 움푹 들어가고 수초 또는 수분이 지나야 함몰이 사라지는 양상이 두드러진다. 함요부종이 만성화되면 피부와 근막조직의 2차적인 섬유변화로 눌러도 피부가 들어가지 않는 비함요(non-pitting) 상태로 악화된다.

림프부종은 의료용 압박스타킹 착용, 소염제·항생제·이뇨제 같은 대증요법적 약물치료, 림프마사지 등이 주로 이용돼왔다. 하지만 증상 악화 방지 차원에 그치거나 효과가 일시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필자도 당연히 이들 치료법을 쓰지만 환자의 상태에 맞게 여러 수술법을 절충하고 복합하는 치료 스타일을 정립해왔다.

예컨대 지방흡입술을 림프부종에 접목시켜 축적된 림프액을 배출하는 방법, 미세림프수술(병든 림프절에 정상 림프절을 이식하거나 연결)로 막힌 림프관의 소통을 촉진시키는 방법, 줄기세포를 이식해 림프관의 신진 교체와 기능회복을 유도하는 방법 등을 복합적으로 시행한다.

이런 복합시술은 세계 최초로 시도된 것으로서 치료 6개월 후 환자 대부분이 평균 30% 이상 림프부종 부피가 감소하는 효과를 얻었다. 1년이 지나 80~100%의 림프부종 해소 효과를 얻은 환자도 상당수다. 부종이 30%만 줄어도 환자는 삶의 질이 개선돼 크게 만족한다. 여기에 최근에는 전기자극치료인 호아타리젠요법(LQ요법)을 가미해 림프슬러지(찌꺼기)가 이온분해되도록 유도해 배출함으로써 수술 전후에 치료효과를 높이고 있다.

이런 성과가 알려져 중동, 유럽, 미국 등에서 다수의 환자가 비행기를 타고 필자를 찾아왔다. 한창 의료관광 붐이 조성되던 차에 코로나19 대유행이 찾아온 게 아쉽다.

선천성 림프부종과 후천성 림프부종 환자를 치료한 경험을 소개코자 한다. 2014년 당시 59세의 여성은 50여 년 동안 복숭아뼈 근처가 부어 고생했다. 1~2년에 한 번씩 다리가 빨개지며 염증반응이 극성을 부려 통증으로 걷기조차 힘들었다. 치마를 입는 게 불편했고 예쁜 신발도 자유롭게 선택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통 넓은 바지와 스타일 나지 않는 운동화만을 입고 신어야 했다. 그녀는 필자로부터 복합시술을 받고 드라마틱하게 좋아졌다. 지금은 스커트를 입고, 구두도 신는다. 6세에 시작된 선천성 림프부종이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사라진 게 신기하다며 완치된 소감을 널리 알리고 있다.

2016년 당시 69세의 가정주부는 20여년 전 자궁암이 찾아와 수술을 받았다. 암을 진단받고 모든 걸 내려놓고 싶었지만 암수술을 통해 암을 이겨내는 듯했다. 하지만 얼마 후 림프부종에 생겨 또 한차례 좌절했다. 그녀는 자다가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른 적도 있고 울며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 때문에 불면증과 우울증약을 복용해야 했다. 언젠가 죽음을 선택할 거라는 불안감이 극에 달했다.

하지만 필자로부터 복합시술을 받은 후에는 상태가 크게 호전됐다. 수술 전 다리 둘레는 정상인과 12cm나 차이가 났지만 지금은 정상에 가까워졌다. 20년간 부종과 싸우며 지냈던 세월이 억울하다며, 가벼워진 다리에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잘 지내고 있다.

어떤 치료든 환자가 의사를 신뢰하고 간절히 기도하면 좋은 성과가 나온다. 환자의 쾌유에 의사로서 보람을 느끼고, 치료법에 더 개선할 게 없는지 연구할 의욕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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