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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문안通] 현실엔 ‘김사부’도, ‘차정숙’도 없다

입력 2023-06-06 15:09 | 신문게재 2023-06-07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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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유명대학병원 응급실에 80대 여성이 실려 왔다. 십이지장 출혈이 심해 위급한 상황이었다. 경과를 지켜보던 3년차 응급의는 “지금 전국적으로 십이지장 출혈 수술을 할 의사가 다들 그만두는 상황이다. 십이지장 출혈 수술을 할 의사가 우리나라엔 한명도 없다”며 “마음의 준비를 하시라”고 했다. 

평소 정기적으로 이 병원을 다니는 환자여서 담당 전문의도 있었고 그날은 전문의가 부재한 일요일이었다. 청천벽력에 보호자는 “담당선생님한테 전화라도 해봐 달라” “어떻게 전국에 십이지장 출혈 수술을 할 의사가 한명도 없을 수가 있냐” “내시경이라도 한번 더 해봐 달라” 애원했지만 응급의에게서는 “소용없다”는 말만 돌아왔다. 결국 간호사가 환자의 담당전문의에게 전화를 걸어 내시경을 해본 결과 출혈은 잡혔고 다른 장기로의 이전도 없어 중환자실을 거쳐 이틀만에 일반병실로 옮길 정도로 호전됐다. 

 

막장 드라마에서 누군가 음모라도 꾸민 건가 싶은 이 상황은 실재한 현실이다. ‘의료대란’ ‘간호사법 개정’ 등 사회적 문제가 떠오르지만 환자를 외면하고 환자 가족들을 절망에 빠뜨린 젊은 응급의의 대처는 이해받기 어려운 것이었다. ‘낭만닥터 김사부’의 돌담병원 식구들 혹은 ‘닥터 차정숙’처럼 헌신적이고 무모할 정도로 환자를 위하는 의료진은 그야 말로 ‘판타지’다. 현실은 ‘퇴근시간’이라며 툴툴거리는 GS 전공의 3년차 장동화(이신영) 선생은 애교수준으로 보일 지경이다.

이는 분명 시스템의 문제다. 하지만 그로 인해 의료진이 환자의 안전, 사람의 목숨을 외면하거나 담보로 하는 순간부터 이는 비난받을 변명이 되고 만다. 그야 말로 ‘100세 시대’다. 하지만 이 지경의 시스템이라면 보호자들이 연락이 안되는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살려보려 애쓰는 김사부(한석규)를 말리던 치매 할머니같은 상황이 발생하거나 “왜 살렸냐”며 차정숙(엄정화)을 몰아붙이는 가족들의 힐난만이 돌아올 뿐이다. 그리고 이는 언제든 내 이야기가 될 수 있는 문제다.  


- 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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