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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지붕, 낯선 세 남자…新 동거시대

[공동체로 성공을 꿈꾸는 사람들] ⑧ 서울 성북동 주거공동체 ‘따로 또 같이’
'프라이버시 존중' 기본원칙 아래서
트위터로 인연 맺은 30대男 셋 입주

입력 2014-11-18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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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로 또 같이'는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는 공동체의 성격답게 입주자 노출을 꺼려해, 이 공동체를 시작한 김동네씨만 인터뷰에 응했다. 집안 내외부가 남자 세 명만 사는 곳 답지 않게 깔끔하게 꾸며져 있다. 김씨는 "향후 임대를 원하는 젊은층과 임차를 원하는 마을 어르신을 조합원으로 한 주거공동체 혐동조합을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윤여홍·허미선 기자

 

 

“고독사하기 싫었어요.”

3호님, 일명 김동네(본명 김기민, 34세)가 서울 성북로 31길 47-7번지에 주거공동체 ‘따로 또 같이’를 시작한 이유는 처절했다.

일인가구 증가, 장기 경기침체, 심화된 청년실직과 고령화, 저출산 등으로 인간관계가 약해져 가는 사회. NHK 특집방송에서 시작된 ‘무연사회’(無緣社會)는 비단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1인 가구 총인구의 20%(통계청), 비경제활동인구로 구분됐던 취업준비생 등을 포함한 ‘사실상 실업률’ 10.1%(기획재정부와 고용노동부, 통계청 11월 17일 발표), 부쩍 잦아진 노인 및 청년 고독사. 한국 역시 빠르게 ‘무연사회’로 내달리고 있다. 그렇게 슬퍼하는 이도 없이 혼자 죽어가는 사회가 코앞이다.

◇사생활 존중하며 함께 하는 1호님, 2호님, 3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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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람한테 의지하면 안돼? 왜 같이 하면 안돼?”

모든 걸 완벽하게 혼자 해야 하고 죽을 때도 폐 끼치지 말아야 하는 사회에 반대로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사생활은 철저하게 존중하면서 함께 사는 주거공동체 ‘따로 또 같이’가 출범했다.

이름도 직장도 개인적인 사연도 묻지 않는다. 호칭도 머무는 방에 ‘님’을 붙여 1호님(30대 후반 회사원), 2호님(34세 프리랜서 요가강사), 3호님(마을공동체 활동가)이다.

2014년 2월 주거공동체를 출범시킨 3호님, 트위터로 인연을 맺은 1호님, 5월에 합류한 2호님이 ‘따로 또 같이’ 하는 삶은 흥미롭다.

면적에 따른 각 방의 월 분담금과 전기세·가스비·공동 생활비·보수 등을 위한 장기수선 충당금이 포함된 관리비 10만원 등이 명시된 계약서에 흥미로운 조항이 눈에 띈다.

‘일주일에 한번, 일요일에는 함께 청소하고 밥해 먹기.’

집안일은 라이프스타일과 성향에 따라 자연스럽게 분배된다. 화장실 청소에 유독 집착하는 3호님은 대부분 사람들이 회피하는 화장실을 도맡았다.

남자 셋이 사는 집치고는 깔끔하고 아기자기한 ‘따로 또 같이’는 2호님의 손길 덕분이다. 2호님은 방문객에게 직접 담근 걸쭉한 레몬생각차를 끓여내고 해독주스를 만들어 마시며 마당에 핀 꽃들로 집안을 아기자기하게 꾸미는 데 남다른 재주를 가지고 있다.

평범한 회사원으로 유일하게 안정적 수입원을 확보하고 있는 1호님은 시간이 하락할 때마다 청소, 빨래, 정원청소 등 남은 집안일에 소매를 걷어붙인다. 누군가 이견을 제기하면 함께 모여 논의하고 문제해결책을 찾는다.

“제 나이 또래가 현실에서 가장 많이 하는 게 일이에요. 옆집 사는 사람에 할애할 정신적, 정서적 여유라고는 없죠.”

3호님은 그런 삶이 이어지면 노년이 피폐하고 외로워진다고 강조한다.

“지금의 삶에 그런 여유가 없으면 평안하고 외롭지 않은 노후는 없어요. 주거공동체는 현재 삶의 개조인 동시에 미래를 위한 준비이기도 하죠.”



◇집 있는 노년과 주거지 필요한 청년의 동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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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하고 함께 하는 관계는 마을에서 분명 가능해요.”

성북동 마을공동체 ‘성북동천’ 총무이자 전(前) 여행카페 티티카카·현(現) 동네공간 운영자, 저소비생활자 공부모임 ‘지역어른센터’ 회원으로 활동 중인 3호님의 확신은 ‘따로 또 같이’로 더욱 명확해졌다.

1·2·3호님이 머물고 있는 집은 성북동에서 나고 자란 80세 어르신 소유다. 원래 결혼이 늦어진 딸들이 살 수 있도록 새로 꾸민 집이었다. 뜻하지 않게 ‘공실’이 난 집을 소유한 마을 어르신과 주거지가 필요한 청년 1·2·3호님이 의기투합한 것이다. 어르신은 시세보다 저렴한 보증금과 월세로 청년들의 저렴한 주거 안정 프로젝트에 지지를 표했다. 

 

“성북동엔 그런 집이 많아요. 은퇴 후 지방으로 내려가면서 집은 처분하고 싶지 않은 분들이나 노후를 위해 마련한 부동산에 공실이 나는 경우들이 잦죠.”


평안한 공간이어야 할 집이 대출금, 공실 등으로 짐이 된 지는 이미 오래다. 전세금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내 집 마련은 꿈도 꿀 수 없는 시대에 탈출구는 없어 보인다.


◇5년뒤 임대-임차인 주거공동체 협동조합 설립

“동네에 답이 있어요. 마을 안 유효공간과 저렴한 비용으로 더불어 살고 싶은 분들만 있으면 되거든요. 물론 부동산을 통해 계약을 하면 좀 더 비싼 월세를 받을 수 있겠죠. 하지만 2년마다 계약에 의해 교체되거나 공실 걱정을 하기 보다는 오래도록 더불어 살 수 있는 사람에게 방을 내어주고픈 어르신들을 발굴하고 설득하고자 합니다.”

이에 ‘따로 또 같이’는 5년 뒤 협동조합설립을 목표로 한다. 임대인 뿐 아니라 임차인까지 조합원으로 끌어들이고 주택을 구입 혹은 임차해 주거공동체에 꼭 맞게 공간을 꾸며 재임대하는 방식으로 진화시키고자 한다.

50대가 70대를, 70대가 90대를 돌봐야하는 공포는 이미 현실이다. 노령화, 극단의 개인주의 등으로 젊은이가 떠난 동네 골목이 활력을 잃은 지도 이미 오래다.

“노인이 노인을 돌봐야하는 공포스러운 사회에서 주거공동체야 말로 어르신과 젊은이들이 더불어 살며 골목에 활기를 되찾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에요. 노인복지와 청년 주거안정은 맞물린 문제예요. 지역 안에서 생태계처럼 맞물려 돌아가야 해결할 수 있거든요.”

그 해답은 마을 그리고 골목의 온기에 있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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